시국이 혼란스러웠던 1986년, 시인이자 기자였던 이윤택은 실천되지 않는 글에 위선을 느끼며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길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당시 그는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유랑극단 형태의 연극 집단을 조직하길 꿈꿨다. 그러던 중 부산의 어촌 대변마을에서 동해안 별신굿을 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한국 연극의 원형이 굿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목격한 것이다. 한국 전통연희의 연극성을 만나게 된 그는 별신굿 무대 공연 기획으로 성공을 거둔 뒤, 극단 조직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 연극의 원형이 연희와 거리굿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극단 이름을 ‘연희단거리패’라 지었다
연희단거리패는 현재 우리 연극계의 대표적인 극단 중 하나다. 이들은 서울, 밀양, 김해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연극적 공동체를 실천하기 위한 행동에도 힘쓰고 있다. 27년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극단이 배출한 실력 있는 창작자와 배우들도 상당하다. 특히 올 연말에는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다양한 무대에서 연희단거리패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극단의 상징적 인물인 이윤택의 신작 <혜경궁 홍씨>.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전통연희의 연극성을 집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무대다. 현재 극단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배우 김소희가 혜경궁 홍씨로 출연해 절묘한 앙상블을 보여줄 예정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차세대 주자 김지훈도 신작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를 발표한다. 그의 개국신화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거침없는 상상력을 통해 거대한 담론을 펼치는 그의 장기에 정점을 찍는 작품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창단 멤버 김광보가 연출을 맡은 것 또한 특별한 하모니를 기대하게 만든다.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괴물 작가 김지훈이 <원전유서>, <풍찬노숙>에 이은 개국신화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를 공개한다. 지난해 <그게 아닌데>로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미니멀리즘한 무대로 각광받은 김광보가 연출을 맡았다. 이야기는 나라를 새롭게 창업하고자 하는 도련님과 그의 군대, 화전민 여인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도련님과 군대는 전쟁과 살상을 자행하며 먹을 것을 축내는 반면 화전민 여인들은 양식을 나누고 가족을 만들며 다음 세대를 위한 원초적인 삶을 추구한다. 작품은 상반된 두 그룹의 삶을 통해 남성 중심의 개국신화라는 허상과 위선 속에 가려진 겸허한 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호재, 길해연, 오영수 등 배테랑 배우들의 열연이 기대되는 작품.
11월 27일~12월 8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혜경궁 홍씨
<문제적 인간, 연산>, <조선선비 조남명>, <궁리> 등을 통해 남다른 통찰력으로 역사 속 인물들을 재조명했던 이윤택. 그가 이번에는 혜경궁 홍씨의 삶을 무대 위에 조명한다. 이윤택 작?연출의 <혜경궁 홍씨>는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를 왕위에 올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인고의 세월을 되짚는다. 이윤택은 혜경궁 홍씨가 쓴 조선여성 최초의 집필서 『한중록』을 그녀의 힘의 원천으로 보고, 철저히 『한중록』에 따라 대본을 집필했다. 이번 무대 또한 이윤택의 전작들처럼 연희와 가무가 녹아 있는 총체극 형식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이윤택이 자신의 연극적 페르소나라고 지징한 김소희가 혜경궁 홍씨를 연기하며, 전성환, 차희, 한갑수, 박지아 등이 출연한다.
12월 14~29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3호 2013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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