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칼럼] "나를 알아주세요" [No.87]

글 |김영주 2010-12-24 4,654

1950년대에 발표된 심리학 이론 중에 ‘욕구의 5단계론’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 Maslow)가 정리한 이 이론의 핵심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갖게 되는 욕구가 기초적인 것부터 고차원적인 것으로 계단을 밟듯 나아가게 되고, 상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성취감은 더욱 커져간다는 것이다.
1단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생리적 욕구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충족될 수 있는 이 욕구는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이 단계의 욕구가 충족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과제는 2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는 생활 보전 욕구, 또는 안전에 대한 욕구라고 불린다. 외부적 위험 요소로부터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소방관이나 경찰관처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보통 이 욕구가 강한 타입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전의 비극을 겪은 세대가 안보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것 또한 이 욕구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지 못할 만큼 강렬한 정신적 상흔을 입은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3단계는 사회적 수용에 대한 욕구다. 나라는 존재와 타자 사이에 연결 고리가 만들어지고, 그 관계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상태인데, 이 욕구가 충족되면 집단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를 원하게 된다.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같이 놀 때 ‘우리 편’을 만들어서 그 일원이 되고 싶다는 것이 3단계의 욕구이고, 그다음에는 놀이에서 멋진 활약을 해서 ‘우리 편’이 이겨서 다른 친구들의 박수를 받고 싶어지는 것이 네 번째 단계, 자존감과 존중 취득의 욕구인 것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에서 외부로부터의 안전,  그리고 사회적 소속감과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까지 모두 충족된 상태 다음, 마지막 관문인 5단계가 남아있다.  최종 단계인 5단계는 아주 익숙한 말인데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이 자아실현은 어느 대학에 합격한다거나 어떤 회사에 입사하는 것, 어떤 직책을 얻는다는 정도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기준이나 외부의 승인을 얻어서 해결되는 욕구가 아니라, 내면에서 원하는 진정한 자기실현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충족시켜서 고유의 개별성을 획득해야만 완성될 수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2010년 11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벤트’이자 ‘미션’이었던 G20을 둘러싼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개인으로 치환해서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에 대입시켜보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을 겪으면서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다수였던 시기를 벗어났고, 안보 문제 역시 어느 정도는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천안함 사태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터질 때면 대한민국이 종전 상황이 아니라 휴전중이라는 사실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한다. 이 공포심은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흔드는 위험한 뇌관과 맞닿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단계 욕구인 수용에 대한 욕구를 전 세계적인 규모로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듯하다. 국제 사회에서 ‘왕따’ 상태인 북한과 비교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네 번째 단계인 존중 취득의 욕구는 어떤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에게 리포터가 ‘한국 관객들만의 특별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다. 비딱하고 까칠하기로 유명한 록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대체 한국과 일본에서는 왜 이런 질문에 집착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게. 우리는 왜 이처럼 집요하게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 달라’고 묻는 걸까.
먹고살 만하고, 당장 전쟁이 날 것 같지도 않고, 한 집 건너 한 집씩 강도의 위협을 받는 치안 부재 상황도 아니고, 국제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지도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전통 사회와의 단절을 겪어서인지, 중고등학교에서 국사가 필수 과목이 아닌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G20을 둘러싼 웃지 못할 해프닝들의 많은 부분이 저 네 번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현실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지난 11월, 세계가 정말 우리를 주목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존중과 존경이라는 것이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거나, 하던 짓을 갑자기 못하게 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살아봐서 알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7호 2010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