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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이제 좀 더 각자인 우리들의 슬픈 신화 [No.88]

글 |김영주 2011-01-26 4,209

친구 K는 <소셜 네트워크>를 보는 동안 주인공 마크에게서 소시오패스 성향이 보이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거나 동료들을 이용하고 효용가치를 다하면 가차 없이 관계 밖으로 떠밀었다. 게다가 딱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왜 남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지 이상하군. 물론 미움을 받거나 소송을 당하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불만에 찬 얼굴을 보다보면 마지막 순간 마크의 변호사가 “당신은 악당이 아니에요.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뿐이지”라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여학생들을 가축에 비유하고도 그들이 분노하는 것에 대해 ‘유머 감각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조정 팀이든 아카펠라 그룹이든 하여튼 제대로 된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낄 만큼 인정 받아본 적이 없는 이 ‘재수 없는(Assh***)’ ‘괴짜(Geek)’가 전 세계 5억 명이 연결되어 있는 가상 세계를 만들었다. ‘몇 명의 적을 만들지 않으면 5억 명의 친구를 만들 수 없다’라는 <소설 네트워크> 미국판 포스터의 카피는 가상 공간에서 5억 명의 친구를 얻은 대신 진짜 친구들을 적으로 돌린 마크 주커버그의 역설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참고로 한국판 포스터의 카피는 ‘5억 명의 온라인 친구 전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이다).
그런데 사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도드라져 보였던 것은 사이버 세계에서 허망한 인간관계를 창조하고 의존하는 현대인의 슬픈 초상이 아니라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자기 현시욕의 그물이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전작 중에 <파이트 클럽>을 특히 좋아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소셜 네트워크> 역시 근본적으로는 <파이트 클럽>과 꽤 겹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어떤 그룹에 속하고, 그 그룹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사내’들의 서열본능, 자신이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공허한 욕망이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Join’과 ‘Log In’에 대한 욕망이랄까. ‘하버드의 신사들’이며 올림픽 대표 팀 조정 선수이고 재벌 아버지를 가진 건장한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들이나, 두뇌와 화술, 매력을 타고났지만 절대로 ‘터프가이’일 수 없어서 괜히 더 허세를 부리는 숀 파커나, 대학 재학 중에 원유 무역으로 떼돈을 벌었지만 비밀 사교 클럽의 정회원이 되기 위해 닭까지 데리고 다니는 왈도나, 머리가 비상하고 잡다한 지식을 많이 알지만 타인의 마음에 대한 공감 능력도 배려도 없는 주인공 마크나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동일하다.
내 상황과 남의 상태를 명시하고, 인간관계를 등급으로 나누어 계량화하거나 수치화할 수 있는 간결한 네트워크 세상에서 디지털화된 관계가 우리가 지난 세기까지 알아왔던 ‘관계’와 같은 것일 리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나누면서 오감에 동일한 자극을 받는 것에 너무나 서툴렀던 한 대학생이 자신의 취향과 편의에 맞는 세계를 하나 창조했는데, 그 만들어진 세계가 우리 시대의 5억 명이 ‘보기에 참 좋았더라’라는 것이 페이스북이고, 그 탄생 신화인 <소셜 네트워크>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관계나 상황 묘사에서 상당히 각색이 된 작품이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국가나 민족에는 건국 신화가 있고, 그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건국 신화, 또는 탄생 신화는 100퍼센트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한 집단의 공통적인 세계관, 또는 의식의 저변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과 아이폰, 아이패드로 무장한 이 세대의 탄생신화라고 해도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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