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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야구팬과 친구 하는 법, 또는 야구와 친구가 되는 법 [No.91]

글 |성진혁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2011-05-02 4,207

프로야구팬이라면 계절의 순환도 ‘시즌 일정’에 맞춰 생각하게 마련이다. 봄이 오면 야구 정규시즌(페넌트 레이스)의 막이 오르고, 휴가철인 한여름엔 올스타전이 열린다. 올스타전을 전후한 며칠 동안은 야구도 혹서기 휴식기에 들어간다, 이런 식이다.
그리고 가을.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으려면 8개 팀 중 4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포스트 시즌에 오르면 한국시리즈까지 나가 우승할지도 모른다는 꿈을 이어갈 수 있다. 좋아하는 팀이 탈락하면 피차 그걸로 ‘시즌 아웃’이다. 야구가 없는 가을과 겨울은 유난히 어둡고 길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600만 관중을 돌파하리라는 기대가 높다. 분위기는 좋다. 개막전 등 초반 경기들의 입장권이 일찍부터 매진됐다. 한국에서 600만명이라는 관중 숫자는 대단하다. 6개월쯤인 정규시즌에 총 532회 경기가 열리니 600만 관중을 돌파하려면 매 경기당 최소한 1만천이백여명이 들어와야 한다. 야구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네 경기씩 열린다. ‘김연아 아이스쇼’나 그룹 빅뱅의 콘서트 정도가 되어야 관객 1만 명을 모을 수 있다. 야구 관중은 매일 평균 4만5천여명이다.

 


  ▲ 주황색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쓴 롯데 응원단

 

야구도 본질적으로는 대중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다. 물론 여기엔 ‘연기’의 요소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인 만큼, 경기에 ‘연기’가 있으면 곧바로 범죄(승부조작 같은)가 되어 버린다.
야구라는 퍼포먼스의 무대는 야구장이고, 배우는 선수, 관객은 관중이다. 그런데 야구장에선 관중이 조연배우나 마찬가지다. 응원이라는 독특한 문화 덕분이다. 한국 프로야구 경기엔 치어리더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 야구엔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다. 야구장에서 가장 먼저 채워지는 좌석도 치어리더나 응원단장이 자리 잡고 있는 1·3루 내야 쪽이다.
팀마다 응원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부산을 연고로 삼는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이 독특하기로 이름났다. 2만8천5백명이 들어가는 부산 사직 구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다. 경기가 후반에 접어들거나 롯데가 기회를 잡으면 팀 공식지정 응원가 격인 ‘부산 갈매기’가 울려 퍼진다. 신문지로 꽃술을 만들어 흔드는 응원방식도 유명하다. 쓰레기봉투 역시 응원도구이다. 7회가 지나면 사람들이 주황색 비닐봉지를 뒤집어쓴다. 이 봉지는 집에 갈 때 쓰레기를 담는 본연의 목적으로 쓰인다.
야구장에선 음식 소비가 많아 쓰레기도 많다. 영원한 스테디셀러는 ‘치맥(치킨+맥주)’. 테이블 좌석이 아닌 일반 좌석은 음식을 펼칠 자리가 좁아 닭 강정, 김밥, 햄버거처럼 간단한 먹을거리가 좋다. 예전에 사직구장 테이블 좌석에 앉은 분들이 족발과 생선회를 한상 펼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인천 문학구장엔 아예 삼겹살을 구워먹을 수 있는 자리도 있다.


롯데는 사투리 응원구호도 특이하다. 상대 투수가 롯데 주자에게 견제구를 자주 던지면 “마!(하지마)”라고 소리지른다. 누군가 관중석으로 날아든 공을 잡으면 “아 주라(가까이에 있는 애한테 공을 줘라)”고 입을 모은다. 공 잡은 사람한테 아이를 슬쩍 보내는 엉큼한 어른들도 있긴 하다.
‘충성도’로 따지면 두산 베어스의 팬들도 뒤지지 않는다. 두산 팬들이 흰색 응원 풍선을 들고 함성을 지르면 다른 팀을 주눅이 들게 만들만큼 위압적이다. 롯데에 ‘부산 갈매기’가 있다면 인천이 연고지인 SK엔 ‘연안부두’가 있다. 뱃고동 소리가 울리며 노래의 시작을 알리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야구장에선 경기뿐 아니라 남들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응원은 관중과 선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팬은 ‘10번째 선수’라는 말이 있다. 팬들이 선수들에게 더 힘을 내라고 기운을 북돋아주면,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화끈한 플레이로 보답을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은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이루게 되고야구라는 공통의 화제로 뭉친다. 두산이나 LG 같은 서울팀의 경우 남녀 팬 비율을 7대3 정도로 본다. 야구광인 남자친구를 둔 여성이라면 야구를 주제로 대화를 시도해 보시길 권한다. 남자가 얼마나 수다를 떨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재미없는 군대 얘기 듣는 거 보다는 훨씬 낫다고 보장한다.

 

▲ 롯데 자이언츠와 그들의 비범한 팬들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갈매기>의 한 장면

 

특정 팀의 팬이 응원하는 야구팀 얘기를 듣다 보면 증오하는 팀, 특히 라이벌 관계에 있는 팀을 욕하는 말도 듣게 마련이다. SK와 두산은 2007년·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하면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SK가 두 번 모두 이겨 우승했다. 2009년엔 플레이오프에서 SK가 두산을 이겨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우승은 KIA)을 했다.
두산 팬에게 “3년 내리 SK에 졌다면서 무슨 라이벌이냐”라고 말하면 주변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기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두산 팬과의 친목을 위한 추천 단어는 ‘두목 곰(간판선수 김동주)’, ‘허슬 두(Hustle DOO)’.
롯데는 지난 3연 연속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막혔다. 롯데 팬이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아직 우승 못했다”고 자책을 할 때 말을 거든답시고 롯데를 같이 욕했다간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다. “꼴데(꼴찌+롯데·2001년~2004년 꼴찌)”라는 별명은 이제 절대 금기어다.
LG 팬에겐 “6-6-6-8-5-8-7-6”이 불경스런 숫자다. 이건 최근 8년간의 정규리그 순위(꼴찌가 8위)이다. 8년간 ‘가을야구’를 한 번도 못해봤다. 이 숫자를 조합해 전화를 걸어본 LG 팬도 있었다고 한다.
한화는 앞선 두 시즌 내리 꼴찌를 했다. 한화 팬 중엔 성격 느긋하신 분들이 많다. 홈 경기 때 경기 중반을 넘긴 무렵에 “야구장 가 볼까?”하는 타입이다. 한화 팬들은 과거 빙그레 시절의 장종훈을 비롯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에 향수를 갖고 있다. 지금도 ‘괴물투수’ 류현진에 무한 애정을 쏟고 있다. 류현진 칭찬을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KIA 팬과 친해지려면 “명가(名家)”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삼성 팬과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는 이승엽(오릭스)을 화제로 삼으면 무난하다. 넥센 팬에겐 “리빌딩(Rebuilding)”이 뭐냐고 물어보면 좋다. ‘선수팔기’라는 단어는 가급적 피한다.
아직 야구장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올해가 어떨까. 전광판 이벤트인 ‘키스 타임’에 걸렸을 때 ‘입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푸짐한 선물을 탈 수 있다. 남자(여자)친구가 수만 관중 앞에서 프러포즈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1호 2011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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