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초에 기획 회의를 한다. 어떤 코너에서 어떤 토픽을 다루고, 어떤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어떤 작품에 어떤 기사거리가 있을지 이야기를 해서 정리하면 그때 정해진 기획안이 대체로 진행되는데, 가끔 방향을 틀거나 완전히 엎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달 기획 관련으로 애초에 이야기가 나왔지만 진행 초반에 접었던 기사는 ‘직접 해보는 뮤지컬 각색 작업’이었다. 기획 기사로 뮤지컬 각색에 대한 총론, 그리고 각색 경험이 많은 창작자 및 프로듀서의 이야기와 함께 더뮤지컬 팀의 실전편이 실리면 재미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나온 안이었는데, 몇 가지 한계가 드러나서 초반에 변경되었다.
비록 제대로 들어가 보기도 전에 엎어진 아이디어지만, 마감이 끝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혼자 재미삼아서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돈이 되지도 않을 일이고, 이미 기사화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일이지만,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
몇 년 전인가 최 모 배우와 인터뷰를 하다가 더뮤지컬 팀도 직접 공연을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뭐든 직접 경험을 해보는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었다. 그 얼마 후 회식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와서 <더뮤지컬> 기자들이 다 같이 좋아하는 <갈매기>를 가지고 가상 캐스팅을 하면서 놀았다.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편집장 박 모 선배에게 갈매기 역이 주어졌던 건 확실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니까 이게 ‘나이가 들수록’의 문제인지 ‘세상이 변할수록’의 문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확실하지 않다만- 돈이 되지 않을 일, 실용적이지 않은 일, 여봐란 듯이 자랑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그건 해서 뭐 하냐, 어디다 쓰냐는 핀잔을 들어도 그냥 내가 좋아서 신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넘쳐나는 시기는 인생의 몇 년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 걸까.
하긴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서클 활동이라고 모여서 악기도 배우고 연극도 하고 합창 대회도 나갔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된 후로는 모두 아득히 먼 옛날 일처럼 되어버렸다. 사실 그게 그렇게 하기 힘든 일도 아닌데, 누가 하라고 시켜주지 않으면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건 기계적인 교육제도 탓인가 먹고 살기 팍팍한 현실 탓인가 그냥 내가 게으른 탓인가.
하면 뭐가 생겨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하면 좋은 일, 잘해서 좋은 게 아니라, 좋아서 잘하고 싶은 일, 그리고 그 잘한다는 것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면 할 수 있는 만큼 잘하는 것인지가 중요한 어떤 일은 살아가는 시간들을 좀 더 기쁘게 해준다. 세상에 잘나고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잘나고 잘하는 사람들이 굳이 순위까지 매겨가며 ‘치열하게’ 경연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는 것도 좋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너무 남 잘하는 걸 보고 그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해 품평하는 데 열을 올리는 동안, 우리 각자가 타고난 내 몫의 창조성은 아무도 찾지 않는 우물처럼 서서히 말라가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된다. 마감이 끝나면 <갈매기>를 뮤지컬로 각색해봐야겠다. 말도 안 되게 이상한 뭔가가 나올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재미있을 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3호 2011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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