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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발트에서 발칸까지]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순간들 [No.95]

글 |김일송 사진 |김일송 2011-08-31 3,864

농담 투로 말했지만 반쯤은 진담이었다. 이번 여행이 현실도피라는 말은. 마치 도망자라도 된 듯 여권을 갱신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는 등 여행을 준비하기까지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명색이 도피인데 관광지를 갈 수는 없는 노릇. 도피처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되도록 숨어 있기 좋은 곳으로 정했다. 발트 3국이었다.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 발트 해 연안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첫 번째 피난처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이 첫 도시가 되었다.
아마도 에스토니아는 귀에 익다 하더라도 탈린은 금시초문일 것. 에스토니아의 소개를 위해 당시 문교부가 교과서에 지면 한 장이나 할애했을라나. 사실 에스토니아는 아직까지 겨우 그 존재만 알린 나라에 불과하다. 그조차도 발트 3국이라는 시리즈로 묶여 설명되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위치조차 알 수 없는 나라이다. 숨기에 이보다 좋은 곳도 없다 싶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걸까? 뭉그러뜨려 답하자면 모든 것, 모든 이들로부터였다. 익숙한 일, 매일 마주하는 사람, 변하지 않을 거리, 그 모든 풍경들. 그것들은 대체로 평화로웠고 대체로 지루했다. 매일 다른 작품을, 매달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매번 다른 세상을 만났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든 만남이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웃음도 울음도 없는 날들이었다. 하루하루 그저 견뎌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진저리나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지루했던 건 역시 삶이었다. 내일도, 한 달 뒤에도, 그리고 일 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듯 지루하고 비루한 삶. 모두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그토록 도망치고 싶던 것은 실은 스스로로부터였다. 존경하는 시인은 그런 느낌에 대해 이렇게 썼다.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이어지는 행에서 시인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본다’며 삶을 껴안았다. 그러나 시인의 포용력을 닮기에 이 그릇은 참으로 작았다. 대책 없이 모든 생업을 작파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때마침 한참 잠자던 생의 역마 또한 기지개를 켰다. 본성이 성가신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평온한 길을 버리고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성미가 차는 걸 어쩌겠는가. 처음에 현실도피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반쯤 진실이라 했는데, 남은 절반의 진실에 이름을 붙이면 자아 도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피할 때가 되었다.

 

그러고는 마치 통과제의라도 치르는 듯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사람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휴대폰도 정지시키고, 인터넷도 하지 않을 거라고. 사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내리고픈 행동 강령이었다. 말하자면 관계의 정리라고 할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다녔던 ‘정서상의 분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고 여겼으니까. 새로운, 그러나 본래 내 것이었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동안만이라도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문자 그대로의 방 ‘정리’도 했다. 작정하고 달려들지도 않았는데, 일개 방 정리는 이내 집 안 대청소가 되어버렸다. 수년간 온갖 짐들을 집 안 여기저기에 늘어놓은 탓이다. 구석구석에서 온갖 잡지에 리플릿, 프로그램 북, 책, 그 밖의 종이 더미들이 튀어나왔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선별하는 데만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고이 간직해온 고교 시절 시험지도, 손때 묻은 대학 시절 노트도, 차곡차곡 모았던 공연과 기타 자료들과 인터뷰를 채록한 수첩들도 과감히 폐지함에 넣었다. 그때 무언가 툭 떨어졌다. 이제 막 한 귀퉁이가 빛바래기 시작한 사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탈린 공항에 내리기까지는 두 번의 경유지를 거쳐야했다.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공항의 규모는 작았다. 수도라지만 탈린 또한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단 하루면 올드타운을, 이틀이면 도시 전체를 둘러 볼 정도로. 하지만 골목골목을 방황하며 돌아다니니 나흘도 모자라더라. 하루는 한때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살았다는 고지대에 올랐다. 오랜 수명을 자랑하는 것들은 죄다 카메라 프레임 속에 구겨 넣으며 혼자 구석구석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그 길의 끝에서 멈추었다. ‘The Times We Had’,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앞에서 한참을 서성댔다.
아련했다. 청소 도중 우연히 사진을 발견했을 때, 흐릿하게 지워졌던 얼굴이 선명해지면서, 그날들이 그리워졌다. 그리웠던 건 ‘그’만이 아니었다, 그 순간을 함께했던 ‘우리’였다. 그때의 그가 아니라, 그 시절의 우리가 그리워졌다. 환기하자면 추억이란 추억은 죄다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 속에 있다. 돌이키고 싶은 추억이건, 돌이키고 싶지 않은 추억이건, 그곳에는 늘 누군가가 함께 있다. 누구와도 함께이지 않았던, 오롯하게 혼자였던 시간은 추억되지 않았다. 기억하니 혼자였던 시간들마다 듬성듬성 빈자리다.
아찔하다. 한 인간의 일생이 결국 그가 기억하는 추억의 총체로 환산된다면, 이번 생은 얼마나 빈곤할 것인가. 잃어버린 삶을 되찾겠다고 길을 떠나왔건만, 잃어버린 것이 정녕 삶은 아니었다니. 사람이었다니. 하니 되찾아야 할 것도 사람이다. 그동안 무심함과 무정함으로 인해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구나. 그런데 멀리, 그리고 오랜 길을 떠난 가난뱅이 탕자를 기다려줄 이 있을까? 설령 기다려준다 한들,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세심함과 다정함은 대체 어디에서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깨달음은 언제나 늦고, 원론은 각론을 설명하지 못한다.
아, 아득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다행이다. 적어도 파산은 면했으니까. 

 

 

글쓴이 김일송은 플레이빌의 편집장으로 일상을 툴툴 털고 발자국이 적은 곳을 골라 여행 중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5호 2011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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