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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At the End] 틀린 건 노랫말이 아니라… [No.96]

글 |김영주 2011-10-04 3,980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됐던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를 놓고 ‘투표율이 33.3퍼센트를 넘기지 못하면 무승부…!’라고 주장하는 한 국회의원을 보면서 이거 아무래도 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콜럼부스의 계란 세우기 뺨치는 발상의 전환에 배를 잡고 웃으면서도 어쩐지 자조감이 드는 이 복잡한 기분을 또 어디서 느꼈더라, 한참 고민을 하다가 머릿속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스팸어랏>이었다. 아서왕과의 결투에서 팔과 다리를 차례로 잃고 몸(과 입)만 남은 채로 ‘우린 비긴 거야, 비겼어. 비겼다고 인정하고 가. 그냥 가면 내가 이긴 거다?’라고 외치던 흑기사. 아, 정말이지 ‘너 바보, 나 바보, 우린 모두 다 똑같이 바보 얼간이, 그래서 우린 다 같이 행복하다네!’라는 주제 의식이 반짝반짝 빛났던 <스팸어랏>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한 사람이었던 그 흑기사를 현실에서 보게 되다니.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코미디는 코미디언들에게 맡기는 것이 건강 사회의 첫걸음일 텐데, 일부 고결하신 분들은 웃음이 쓰나미처럼 넘치는 복된 세상, 더 밝은 대한민국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크신 나머지 본인의 직분마저 잊고 기발한 언행으로 연일 매체들을 잠식하면서 큰 웃음을 주고 계신다. 노래 가사에 술이 나오니까, 담배가 나오니까, 사랑에 실패했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좌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백지처럼 순수한 우리 아이들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는 전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기 전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위험한 것들에 빨간 딱지를 붙여서 격리시키자는 선량하고 세심한 배려가 왜 희대의 코미디가 되고 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허황되고 얼토당토 않은 것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웃음의 사회적인 기능 중에는 잘못 사용된 권력의 권위를 빼앗음으로써 그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도 있다.
대한민국은 텔레토비 동산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미성년자들도 자애로운 파파 스머프의 위대한 영도 아래 살아가는 개구쟁이 스머프가 아니다. 비록 한국인들이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평생 안고 간다지만 ‘이건 무승부!’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아, 무승부인가보다’ 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만큼은 아니다.
또한 문화를 개인적인 가치와 신념에 입각한 잣대로 재단해서 공공으로부터 분리하겠다는 발상은 정말로 위험하다. 사회를 유지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 이상을 법제화하려고 하면 이런 희대의 코미디를 진지하고 정확한 앵커의 목소리로 들어야 하는(그래서 더 큰 웃음으로 번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국의 관객들이 한없이 가벼운 코미디가 지닌 풍자와 해학의 무거운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는 문화계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대중들에게 깨우침을 줄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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