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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동양적 세계관으로 완성한 <템페스트> [No.97]

글 |박병성 사진제공 |LG아트센터 2011-10-10 3,697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 작품들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들은 <햄릿> 같은 비극이거나, <리차드 3세> 같은 역사극, 또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낭만 희극류 중 어딘가에 속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템페스트>는 원한을 화해로 승화시키는 비희극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다양한 <템페스트>가 소개되었지만 이번 극단 목화의 공연만큼 독자적이면서도 명확한 작품 해석을 보여준 무대는 없었다.

 


오태석은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언어는 해체하고 이야기의 기본 골격만 가져온 후 여기에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덧입혔다. 주술법을 연구하던 군주 프로스페로가 왕권에 눈먼 동생에게 쫓겨 세 살 딸과 함께 무인도로 유배당한다. 술법에 능해진 프로스페로는 무인도의 정령들과 섬의 원주민이었던 캘리반을 종으로 부린다. 마침 무인도 앞을 지나가던 동생의 배에 풍랑을 일으켜 무인도에 표류하게 만든다. 기본적인 캐릭터나 이야기 구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적으로 번안된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캐릭터이다. 프로스페로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장난스러우며, 그의 딸 미란다는 산발한 머리를 하고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모양새로 섬을 돌아다닌다. 섬의 정령 에어리얼은 7살 소년처럼 장난기 많고 능청스런 캐릭터인데, 섬으로 밀려온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것을 즐기는 눈치다. 이들은 서로 투닥거리지만 애정이 느껴질 만큼 정으로 뭉쳐 있다. 섬의 원주민인 캘리반은 개성 강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앞뒤로 붙은 샴쌍둥이처럼 두 사람이 하나로 붙은 인물로, 아이 같고 새침한 앞의 아이와 무식하고 막무가내인 뒤의 아이가 서로 붙어서 쿵짝을 맞춰 만담을 하는가 하면 사사건건 다투는 흥미로운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거의 빈 무대에 약간의 소품만으로, 그것도 장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소품이 아닌 연극적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소품 사용으로 공간을 창출한다. 부채와 빗자루, 천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소재인데도 아무런 문제없이 공간 이동을 이루어냈다. 빈 무대에 무한한 공간을 담아내는 전통극적 무대 전환은 정교한 세트보다도 여유롭고 극을 이끌어가는 데 부담이 없었다.
장구, 북 등 국악기의 사용, 전통 옷을 기반으로 한 의상, 한국적 정서가 느껴지는 말투. 목화의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완벽하게 한국적으로 번안해냈다. 표현 방식은 매우 다르고, 완전히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지만 오태석이 해석하고 연출한 <템페스트>를 통해 셰익스피어가 말년에 표현하고 달성하고픈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그동안 그려온 세계는 아버지의 원수를 복수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였다. 그의 낭만 희극에서도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이성적으로 정리함으로써 해피 엔딩에 이르게 된다. 말년 작품인 <템페스트>에서는 복수를 복수로 갚지 않고 결혼을 통해 화해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이성적인 논리가 극을 지배하고 있어 프로스페로의 용서가 충분히 납득되지 않았다.
반면 목화의 <템페스트>는 옳고 그름도 분명치 않고 선과 악도 경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문명과 원시의 세계가 확실한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은 세계를 창출했다. 현세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술법을 공부하려는 프로스페로라는 인물 설정부터 여유가 생겼다.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프로스페로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대목은 장구의 변죽만 울린다고 악사를 나무라자 프로스페로가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야”라고 하는 애드리브성 대사이다. 프로스페로는 알론조에게 자식 잃은 슬픔을 경험하게 해서 복수를 하지만 목화의 <템페스트>에서는 그 복수가 화해로 가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전히 왕권을 노리는 동생들의 계속되는 암살 시도를 벌하지 않고 부정하지 않은 채 화해의 세계 한편에 남겨둔다. 목화의 <템페스트>는 그들의 행위를 그대로 인정하는 가장 큰 용서를 통해 화해에 이른다. 애초부터 갈등이나 원한이라 부를 것도 없이 손만 대면 풀리길 기다리는 간단한 매듭을 놀이하듯 서서히 풀어간다.
셰익스피어가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목화의 이러한 연극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살아오고 배워온 세상 안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세계를 어렴풋이 그는 감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몇 백 년 후 동양의 한 연출가가 완성했다.  

 

* <템페스트>는 2011년 에딘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헤럴드 엔젤스상을 받았다. 지난 백성희장민호 극장 공연에 이어 9월 27일부터 10월 6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재공연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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