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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11 그리고 12> 쉽고 명확했던 거장의 가르침 [No.82]

글 |박병성 사진제공 |LG아트센터 2010-09-01 4,120

“세상에는 세 가지 진리가 있다. 너의 진리, 나의 진리 그리고 진정한 진리. 진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신비주의 종교 수피즘의 스승인 티에노 보카의 대사다. 세계적인 거장 피터 브룩의 작품 <11 그리고 12>는 염주알 하나에서 파생된 갈등과 반목이 폭력으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삶 속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갈등과 전쟁의 발생 과정이기도 하다. 티에노 보카의 앞선 대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란 부분이지만 많은 이들이 세상에는 세 개의 진리가 있지만 “나의 진리 = 진정한 진리”라고 여기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기도문을 11번 외울 것인가, 12번 외울 것인가’로 시작한 수피즘 내부의 갈등은 결국 부족 간의 갈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그 문제의 씨앗은 매우 작은 해프닝에서 일어났다. 기도문을 11번 외우던 수도승들이 어느 날 평상시보다 늦게 온 스승이 무안할까봐 한 번 더 기도문을 외운다. 그 이후 12번을 암송해야 스승이 말을 시작하자 12번을 외우게 된 것이다. 스승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죽은 후 기도문을 12번 외우는 전통이 고착되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선지자가 오면서 11번을 외우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12번을 외우는 무리들의 반발과 서부 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정치적인 이유가 개입되면서 11번을 외우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는다.
인류사에서 나의 진리를 진정한 진리로 인식하고 너의 진리를 억압하는 상황은 무수히 되풀이된다. <11 그리고 12>는 ‘나의 진리 = 진정한 진리’가 되는 세상의 도그마를 해체하는 연극이다. 그것은 연극적인 형식으로도 드러난다. 피터 브룩이 『빈 공간』에서 추구한 대로 무대는 단출하게 빈 무대에 붉은 천을 깔아 관객들을 서부 아프리카로 초대한다. 간단한 소품들이 그때그때 장소와 상황을 지시하는 기능을 한다. 공간조차도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소품의 변화만으로 고정된 장소의 의미를 해체하고 새로운 장소로 의미를 갖게 된다. 극은 티에노 보카의 제자인 암쿠엘(아프리카어로 ‘작은 이야기꾼’의 의미)이 해설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암쿠엘의 이야기에 따라 서사는 극이 되고 극은 다시 서사의 형태로 전이된다. 서사와 극이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전개되는 동시에 배우들 역시 간단히 천을 두르는 것만으로 캐릭터를 옮겨가며 변신한다. 또한 극 속 인물이었던 이들은 어느 순간 내레이터가 되어 극을 설명하는 해설자가 된다.
무대도 캐릭터도 어느 것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고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마치 숨을 쉬듯이 그 흐름이 편하고 자연스럽다. 작품은 다른 예배법을 하는 두 집단의 갈등을 중심 소재로 하지만 인위적으로 두 집단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암쿠엘을 중심으로 그가 경험하고 겪는 일들을 통해 이 사건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한다.
진정한 진리의 문제는 신의 존재와도 맞닿는다. 암쿠엘이 신에 대해 묻자 티에노 보카는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으로 담고 말로 형언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신 자체가 아니라 네가 인지한 방식의 신으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신은 정의할 수 없는 영역 밖에 계시다”는 가르침을 준다. 신과 진정한 진리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건만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인식 안에 놓아두고 싶어 한다. 그것이 바로 이성의 역사이고 야만의 역사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다.
기도문을 12번 외우는 집단의 스승인 티에노 보카는 프랑스의 지배를 거부하지만 프랑스의 교육을 받으라고 충고하고, 시계를 만든 이를 칭송한다. 어느 것에도 현혹됨이 없었던 그는 11번을 외우는 집단의 스승인 히말라를 만나 그 역시 11번을 외우는 방식을 택한다. 그것은 집단을 배신하는 행위였고 보복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티에노 보카가 11번을 외우기로 선택할 때, 히말라는 “12번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고 한다. 티에노 보카가 11번을 선택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티에노는 11번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12번을 버린 것이다.

이 글은 피터 브룩의 <11 그리고 12>의 감상문이지만 전혀 그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잘못 짚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해석자의 주관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피터 브룩은 심오한 이야기를 매우 쉽고 명확하게 전달해주었는데 이 글은 독자들에게 굉장히 어렵게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게 천재와 범인의 차이겠지.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2호 2010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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