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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남의 살 먹는 일에 대한 예의 [NO.83]

글 |김영주(자유기고가) 2010-09-01 4,203


이 땅의 닭들에게 구제역, 조류독감보다 두려운 운명의 시험대였을 월드컵 광풍도 문어신 파울의 전설을 남기고 사그라졌다. 그런데 축구의 제단 위에 수천수만의 닭들과 함께 바쳐진 맥주 거품이 꺼지기도 전에 오호 통재라, 초복이 닥쳐왔으니 잔혹한 시절이 아닐 수 없다. 운 좋게 초복을 넘기고 살아남은 닭들이라고 안심할 틈이 없는데, 초복이 지났다는 것은 아직 중복과 말복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닭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당연한 만큼 슬프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극지방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분포해 있는 닭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에서 4000여 년 전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지에서 처음 가축화한 가금류이다. 펭귄, 타조와 함께 날지 못하는 새이고, 한반도에서는 예부터 혼례식이나 귀신을 쫓는 신성한 의식에 사용되었다. 닭은 인간에게 해로운 독을 가진 다섯 가지 생물 - 전갈, 뱀, 지네, 도마뱀, 두꺼비를 쫓는다고 믿어졌고,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 다섯 가지 덕을 가진 동물로 칭찬 받았다. 그러나 현대에서 닭과 관련된 가장 흔히 쓰이는 표현은 지적 능력이 별 볼일 없음을 비아냥거리는 닭……. 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를 일이다. 


동과 서를 막론하고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여성을 어린 닭에 비유하는 점잖지 못한 은어가 있는데, 필자가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양자간에 어떤 이형동질성이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닭과 관련된 가장 슬픈 노래는 신해철이 치킨을 먹으면서 썼다는 ‘날아라 병아리’일 것인데, 그 노래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나서 자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저 노래의 작사가와 같은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생명의 덧없음을 깨쳤기 때문일 것이다. 네모난 종이 상자 안에서 꼼지락거리던 어리고 연약한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생각하면, 그 병아리가 커서 내 입안의 닭이 되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미묘해 진다.
자연에서도 토끼나 사슴으로 태어나지 못한 이상, 남의 살과 피를 먹고 산다. 여기 죄와 벌의 문제를 갖다댈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이종의 생명을 빼앗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비도덕적인 일인가.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훌륭한 재료로 공들여 만들어낸 코코뱅과 삼계탕은 참으로 근사한 음식이고, 자랑할만한 문화의 일부가 아닌가.
문제는 닭 가슴살을 대량으로 얻기 위해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을 만큼 가슴 부위만 비대해지게 ‘계량’ 당하고, 서로에게 흠집을 낼 수 없도록 부리를 잘려 2주간 굶주리면서 계란을 낳다가 도살당하는 닭들의 고통일 것이다. 달리 야만이 먼 옛날 문명화 이전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나고 자라는 생명에게 이런 부자연스러운 고통을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일이 모두 야만이다.
살아있는 것을 먹기 위해 죽이는 일을 도축업자도 아닌 기계가 대신해주다보니, 인간들은 육식의 전 과정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점점 잊어간다. 살아있는 것을 제대로 살게 하고, 그 삶의 결과물을 감사히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면, 먹히는 동물들이 생전에 느낀 고통과 분노는 그대로 인간의 삶을 공격해올 것이다. 조류독감, 광우병, 그 다음이 무엇일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때는 얄리를 추억할 때처럼 아련하게 노래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3호 2010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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