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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그 노래에는 우리가 없다 [No.84]

글 |김영주 (자유기고가) 2010-09-02 4,641


박지성이 출연한 CNN의 <토크 아시아>를 보았다. 인터뷰어가 이것과 저것을 제시하면 박지성이 그 중 선호하는 쪽을 골랐는데, 페라리보다 포르쉐가, 검은 머리보다는 금발 여인이, 영화보다 책이 좋다는 이야기가 오가다가 재미있는 질문이 나왔다. “비틀즈와 오아시스 중에는?” 박지성은 약간 난처해하더니 “비틀즈는 가수죠?”라고 되물었다. 앵커는 ‘오아시스도 밴드고, 비틀즈는 리버풀 출신, 오아시스는 맨체스터 출신’이라고 알려주었다. 머뭇거리던 박지성은 ‘그렇다면 오아시스’라고 선택을 했다.
사실 이 질문에는 맨유의 전통적 라이벌인 리버풀을 상징하는 비틀즈와, 맨유의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한 오아시스 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약간은 심술궂은 문제가 걸려있다. 진짜 축구밖에 모르는구나 싶게 순진한 소년 같았던 박지성에게는 의미가 통하지 않았지만.


영국인들이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두 가지, 축구와 로큰롤의 관계를 지켜보다보면, 그들의 삶과 저 ‘엔터테인먼트’가 얼마나 가깝게 닿아있는지 실감하게 되는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박지성의 위대한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있는 도시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맨체스터는 거칠고 삭막한 북부를 대표하는 공업 도시이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최악으로 가난한 골목에서 영국의 가장 위대한 록스타들이 태어났다. 그들은 제각각 달랐지만 대체로 거만하고 비딱하고 낭만적인 노래를 불렀다. 그중에서도 오아시스는 1990년대의 영국 록 밴드 중 가장 많은 음반을 팔아 치운 것과,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들 앞에서 단독 공연을 한 것(넵워스, 25만 명)으로 유명하다. 이 밴드의 주축인 갤러거 형제는 어린 시절 절망스러울 만큼 폭력적인 가장 밑에서 자랐는데, 그런 아버지도 주말에는 아들들을 축구 경기장에 데려갔다. 어린 노엘은 일주일 중 6일을 일하는 노동계급 남자들이 메인로드 스타디움에서 한목소리로 부르는 응원가에 매료되었다. 이 거대한 싱얼롱은 후일 그가 만드는 아름다운 송가에 비틀즈의 음악만큼 선명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수천수만 명이 입을 모아 부르는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의 마력은 축구경기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록밴드라고 해도 그들의 노래에는 ‘우리’가 존재한다. 1995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스톤 로지스의 대타로 별 기대 없는 관객들 앞에 선 펄프의 프론트맨 자비스 코커는 특유의 무심하고 살짝 맛이 간 듯한 어투로 읊조리듯 말했다. ‘마음처럼 가치 있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면 정말로 일어날 거야. 오케이?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모두 할 수 있는 거야. 당신도 할 수 있어.’ 이어서 그가 부른 곡은 ‘Common People’,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그리스 출신 상류층 소녀에게 ‘보통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찌르듯이 일갈하는 노래를, 물결치는 8만 명의 관객들이 함께 불렀다. 구질구질하고 별 볼 일 없고 한심한 보통 사람의 삶은 자비스 코커의 노래 속에서 있는 그대로 까발려지면서도 이상한 존엄, 혹은 그저 자존심이라고 할 만한 것을 칼날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21세기 영국 록 신을 열었던 리버틴스의 칼 바랏은 말했다. “노래에 진실을 담지 않는다면, 대체 다른 무엇을 담을 수 있겠어?” 한국의 대중문화 수요자인 나는 그의 의문에 어렵지 않게 답을 해줄 수 있다. ‘넌 정말 Mystery, 오늘도 히스테리, 내일도 비슷하리, 너의 이별드립, 계속 Coming’(제국의 아이들, ‘이별드립’) ‘봐도 봐도 봐도 내가 봐도 봐도 보고 싶어 너 땜에 온종일 미쳐 내 영혼마저 미쳐’(티아라, ‘너 때문에 내가 미쳐’).
송라이터들의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하면 휴대폰 연결음과 벨소리,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많이 팔릴 상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것은 가난보다 더 비참한 일이다. 자신들의 진짜 삶에 대해 노래하는 ‘대중가요’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실 좀 불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그 불행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4호 2010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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