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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죽은 선비와 호랑이 가죽 [No.86]

글 |김영주 2010-11-25 4,512

2009년 1월, 뮤지컬 <드림걸즈>의 안무 작업을 위해 한국에 와 있던 안무가 셰인 스팍스와 인터뷰를 했다. 친구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눈앞에서 볼 만큼 위험천만한 빈민가에서 자라난 그의 사연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모타운 영웅들의 수난기, 또는 성공담과 다르지 않았다. 춤에 대한 열정과 재능밖에 없던 그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유캔댄스>의 심사위원으로 명성을 얻은 후 린제이 로한을 위해 안무를 하고, 에이미상 시상식에서 톰 행크스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시절,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모타운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드림걸즈>는 그에게 특별한 작품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셰인 스팍스는 모타운의 검은 영웅들을 숭배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마이클 잭슨을 사랑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과 똑같이 춤을 출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 중요한 것은, 그 춤을 췄을 때 마이클 잭슨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마이클 잭슨밖에 없다는 것이다.”라고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셰인 스팍스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도 마이클 잭슨이 어둡고 긴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는 일도 5개월 후에 끝난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그의 추문을 함께 접했다. 그는 성장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해서 피터 팬이 사는 네버랜드를 동경하고, 소년들을 위험하게 사랑하는 괴물이었고, 자신의 검은 피부를 콤플렉스로 여겨 온몸을 하얗게 표백하는 외계인이었다. 끝없는 재판과 파파라치, 타블로이드의 집요한 모욕 앞에 발가벗겨진 그의 수치심과 분노와 절망감을 헤아려줄 사람은 없었고, 그 모든 어두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행동들은 단지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워서 조롱하기 좋은 빌미가 될 뿐이었다. ‘세상에, 재판정에 잠옷을 입고 나왔다니. 완전히 미친 거 아냐?’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DJ들은 라디오에서 그의 음악을 틀기 전에 ‘논란이 되는 문제들은 잠시 잊고,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변명처럼 덧붙여야 했다. 그의 음악을 그의 문제들과 연결시키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음을 방증하는 이야기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잭슨이 겪었던 어떤 직접적인 박해보다도 더 슬픈 일은 그의 음악에 덧씌워졌던 어둡고 음습한 추문의 그림자가 아니었나 싶다.
<슈퍼스타 K 2>에서 참가자들에게 마이클 잭슨의 곡을 커버하라는 미션이 떨어졌을 때, 누가 저런 어리석은 결정을 했냐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분’은 신인데,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한낱 인간에다 아마추어일 뿐인 참가자들에게 그분의 노래를 부르게 하다니! 인간의 부족함과 신의 절대성이 대비될 뿐이라는 호들갑스런 목소리들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위대했지만, 살아있는 동안 영광과 같은 크기의 고통을 받았고, 그가 비극적으로 살해당한 후에는 영광만 남아서 그의 음악은 다시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것으로 공인 받게 되었다. 이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마지막은 더더욱 아니다. 아주 먼 옛날의 예수로부터 오늘날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르기까지 왕으로, 구원자로, 혁명가로 떠받들어지다가, 바로 그들의 손에 찢겨 죽음을 당하고, 역시 같은 자들의 후회와 자탄 속에서 부활하는 영웅 신화는 수천수만 번 반복되고 있다. 인간은 왜 이런 것일까, 라는 질문에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훌륭한 선비를 사랑하는 것이 호랑이 가죽을 탐하는 것과 같아서, 살아있을 때는 반드시 죽이려 안달하다가, 죽고 난 후에는 아름답다고 칭송하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억울하게 사사당하는 것을 본 남명 조식이 남긴 싯구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6호 2010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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