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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500일의 썸머>는 뮤지컬 영화다 [No.78]

글 |박병성 2010-03-10 6,253

‘<500일의 썸머>는 뮤지컬 영화다!’ 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제외한다면 배우들이 노래를 하지도 않고, 드라마가 뮤지컬의 양식으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톰이 사랑에 빠져 행인들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환상 장면은 뮤지컬 영화다운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1시간 30여 분 중 단지 1분 남짓 뮤지컬적인 양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영화를 뮤지컬 영화라고 우길 수는 없다. <500일의 썸머>를 뮤지컬 영화라고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영화가 뮤지컬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500일의 썸머>는 톰과 썸머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슬픈 브리티쉬 팝과 영화 <졸업>을 보고 사랑을 믿게 된 톰. 부모님이 이혼한 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머리를 잘라도 아무런 고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썸머. 손을 잡고, 키스 하고, 잠자리를 함께하고, 심지어 에로 비디오를 재현하면서도 단지 친구로만 생각하는 썸머와, 사랑을 믿는 톰의 관계가 원만할 수는 없다. 그들은 행복하면서도 (톰에게는 더욱더) 힘겨운 500일간의 만남을 지속한다. 연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며 기쁨을 준 사람이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고통을 톰은 썸머를 만나는 내내 느껴야했다. 그에 반해 순간순간에 충실했던 썸머는 마치 전기 스위치처럼 연인에서 남으로 아무런 갈등 없이 관계를 전환시켰다.


톰의 슬픔은 현실과 기대의 간극에서 오는 것이다. 실제로 톰이 느끼는 슬픔의 본질을 드러내듯 그가 기대하는 만남과 실제 만남을 양분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뮤지컬은 주로 기대 쪽에 시선을 둔다. 대중예술로서 뮤지컬은 대중들의 욕망을 읽고 그들이 기대하는 바를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톰의 슬픔은 바로 자신의 기대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 썸머의 현실로 인해 비롯된다.

 


이상을 꿈꾸는 톰은 뮤지컬적인 인물이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카드에 축하 멘트를 쓰는 일을 하는 그의 직업 역시 뮤지컬적인 속성을 띠고 있다. 결혼이나 생일,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 이런 특별한 날에 보내는 카드 내용엔 온통 사랑과 행복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 그런가. 연인들이 가장 많이 이별하는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하지 않던가. 현실 속의 아픔이나 고통은 쏙 추출하고 행복만 남긴 축하 멘트를 쓰는 일은 이상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톰(뮤지컬)에게 매우 어울리는 일이다.


<500일의 썸머>는 현실과 유리된 뮤지컬적인 기대와 환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사랑에 대해 상반되게 인식하는 남녀의 불운한 이별을 넘어서 그들의 변화에 주목한다. 썸머를 만난 이후 톰은 축하 멘트가 얼마나 가식적이고 인위적인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고 사표를 던진다. 그러고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건축 설계 일에 매진한다. 절대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 같던 썸머도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은 톰의 말에 수긍하고 우연히 만난 운명적인 남자와 결혼한다.

 


세상에는 우연 같은 운명과 운명 같은 우연이 공존한다. 그것을 우연으로 볼지, 아니면 운명으로 볼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어느 한쪽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같이 우연에 포커스를 맞추는 장르가 있는가 하면, 뮤지컬처럼 운명 쪽에 시선을 고정하는 장르도 있다. <500일의 썸머>가 뮤지컬(에 대한) 영화라고 여겼던 것은 그동안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예술이라고 무시받았던 쪽도 긍정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뮤지컬 잡지 기자로서 느끼는 아전인수격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 <500일의 썸머>는 뮤지컬(에 대한) 영화였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8호 2010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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