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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놀라웠던 10년, 무엇이 달랐나 - LG아트센터 [No.78]

글 |김영주 사진제공 |LG아트센터 2010-03-25 5,064


인구 천만의 거대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공연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파리의 가르니에 궁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런던의 코벤트가든, 밀라노의 라 스칼라, 도쿄의 신국립극장처럼 이론의 여지없이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극장 한 곳을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서, 공연문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연초 발표되는 기획공연 일정에 대해 가장 큰 관심과 기대를 나타내는 극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답은 조금 더 쉬워진다.

 

LG아트센터의 자랑이자 저력의 근간인 뛰어난 프로그래밍은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재정구조에 힘입은 바 크다. 국공립극장들이 앞 다투어 ‘수익성 강화’를 외치고 있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이 ‘해외 유명 공연장, 페스티벌에 직접 가야 볼 수 있었던 독특한 작품들, 동시대에 살면서 우리 관객들이 꼭 보아야 할 작품들, 다양한 문화적 세계관을 넓히는 공연들을 소개하는 것’을  공연장 운영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은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실제로 LG아트센터는 지난 10년 간 자신들의 목표를 충실히 수행해 오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왔다.
지난 10년간 관객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레프 도진과 로베르 르빠주, 네크로슈스, 피나 바우쉬와 매튜 본, 사샤 발츠, 오하드 나하린,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과 파비오 비온디, 팻 메시니와 소니 롤린스, 마이클 나이먼, 탄둔과 같은 거장들과 만날 수 있었다. 다분히 영미권과 서유럽에 치우쳐 있는 국내 공연계에 리투아니아 연극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퍼포먼스, 이스라엘 무용단과 세르비아, 세네갈의 월드 뮤직, 포르투갈의 파두 가수를 소개하여 새로운 물길을 열기도 했다.
주요 국공립극장들이 이미 검증된 클래식 단체 및 아티스트와 고전 레퍼토리 위주로 기획 공연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LG아트센터는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예술에 대한 아쉬움을 채워주고 있다. 수차례 내한 공연을 거듭하면서 국내 팬들 사이에 진가를 인정받은 단체들의 경우에는 수익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공연들도 많다. 아티스트나 작품이 아직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적자를 감수하는 공연도 있다. 카마 긴카스의 <검은 수사>와 탈리아 극장의 <단테의 신곡 3부작>, 데레보의 <신곡>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객석을 모두 비우고 무대 위에 관객석을 새로 만든다든지 하는 식으로 극장 안의 경계를 모두 허물고 파격적으로 공간을 사용했던 이 작품들을 공연할 때는 좌석을 200석까지 줄이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당연히 50퍼센트가 넘는 적자가 났지만, 공연 한 편을 위해 무대 바닥 전체에 물을 채우는 대공사를 해내고 마는 LG아트센터에 대한 지지는 더욱 공고해져 갔다.
LG아트센터 측은 극장의 운영에 대해 “세계 유수의 공연장 운영 사례를 참고하여 30퍼센트에서 50퍼센트 사이로 재정 자립도를 맞추고, 부족한 사업비는 기본 재산의 이자 수입과 직접 지원으로 충당한다”고 밝혔다. 애초에 극장에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원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시대를 살면서 우리 관객들이 꼭 보아야 할 작품들’에는 당연히 국내 아티스트들의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LG아트센터의 기획 공연에서 특히 연극계 인사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어왔다.
초창기에는 극작가 겸 연출가 장진과 제작한 <박수칠 때 떠나라>(2000)와 <웰컴 투 동막골>(2002)이 흥행과 비평 면에서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 2004년과 2009년에는 <환>과 <페르귄트>를 연출한 양정웅, 신작 <이아고와 오셀로(2006)>를 올린 한태숙, 그리고 2007년에는 화제작 <필로우맨>을 무대화한 박근형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공연한 <페르귄트>는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대상과 연출상, 무대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LG아트센터는 2,000석 이상의 대극장이나 400석 이하의 소극장 중 택일을 해야하는 창작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조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LG아트센터의 합리적인 티켓 가격이나 패키지 티켓 할인 등 시어터고어에 대한 섬세한 배려도 칭찬할 만한 일이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또 하나 환영받고 있는 정책은 ‘초대권 없는 공연장’이다. 티켓 값을 지불하지 않고 공연을 보는 것이 대우받는 것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관행은 공연을 직접 만들거나 가르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미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감행한 LG아트센터의 엄격한 초대권 제한은 초반에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을 지나온 지금, 이 정책은 LG아트센터라는 극장의 자부심을 상징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간 LG아트센터가 해온 일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안타깝지만 한국 공연계에서는 상식을 지키기만 해도 혁신이 된다). 극장은 대관과 티켓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백화점이 아니라, 관객들을 세계의 예술과 연결시켜주는 통로이자 문화의 산실이다. 이러한 기본원칙을 분명히 인지한 이들이 운영하는 극장은 관객들이 먼저 알아보는 법이다. 극장이 좋은 공연을 꾸준히 발굴하고 제작해서 무대에 올리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관객들이 극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티스트의 작품에도 호기심을 보인다. 소속 극단이나 오케스트라, 발레단이나 오페라단이 없는 사설 극장이지만, LG아트센터는 한국의 어느 국공립 극장보다도 분명하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전통 있는 극장이 되기 위해서 긴 역사 못지 않게 반드시 가져야할 필수적인 미덕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8호 2010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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