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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도쿄의 밤에 별만큼 필요했던 것 [No.79]

글 |김영주 2010-04-20 4,194

3년 만에 일본을 다녀왔다. 영국 밴드의 투어 공연을 예매해놓은 것 말고는 계획도 없고 목표도 없는, 그러니까 굳이 도쿄를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닌 짧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아가는 도쿄라는 거대도시에서,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느슨하고 나른하게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왼쪽을 보면 훼미리마트가, 오른쪽에는 세븐일레븐이 있어서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 온 게 맞나 헷갈리게 하는 도쿄이지만, 언뜻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자잘한 습속들을 알게 될 때도 있다. 일본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규동집에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길가에 즐비한 작은 식당에 남자 손님만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규동은 그럴듯한 음식으로 여겨지지만, 일본에서는 아저씨들이 싼값에 급히 한 끼를 해결할 때나 먹는, 남자가 첫 데이트에서 선택하면 두고두고 원한을 살 만한 메뉴라고 한다.
반면, 못 따라 오면 떨어뜨려놓고 달려가 버리는 도시의 속도는 여기나 거기나 비슷하다.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한때를 풍미했던 모스버거나 프레시니스버거 같은 수제 버거 매장은 좀체 보기 힘들었고, 그 빈 자리를 도넛 체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고급 오피스 타운인 아카사카부터 한국으로 치면 대전쯤 될 것 같은 시즈오카까지, 어디를 가든 한국 식당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였다.


2000년, 일본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했던 친구는 ‘한국에 대해 일본 대학생들이 갖는 인식이나 관심은 한국 대학생들이 말레이시아에 대해 갖는 그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재패니메이션, J-Pop, 일본 영화 붐에 일본 드라마까지 가세한 때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로 반일 감정과 일본 문화에 대한 선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별다른 관심도 의미도 주지 않았던 셈이다.
그해 일본 유학을 시작했던 동행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던 때를 분명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예상과 달리 그때는, <겨울연가>가 국내에서도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인 2001년 1월 26일, 신오쿠보 역에서 취객을 구하려고 뛰어내린 고 이수현 씨의 희생이 있었던 날이었다.
좋게든 나쁘게든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파시스트적인 속도로 달려가는 현대사회의 삭막함이 맞물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소외가 일반화된 도쿄 한복판에서, 한 젊은 이방인이 자기 생명을 던져 인간이 가진 이타심을 증명했다. 의로운 사람 이수현의 희생이 그의 조국에 대한 인식까지 바꿔놓을 정도로 일본 사회에 큰 울림을 준 것은, 누구보다도 그들 자신이 파편화된 차가운 삶에 지쳐있었음을 말해준다.
어제까지 있었던 무엇이 오늘 사라져버리고, 그에 대한 기억을 추억으로 의미 있게 간직할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떠밀려 가야 하는 만연체의 삶에 누군가 쉼표를, 아니면 느낌표나 물음표라도 던져주기를 바라는 갈망에 대해서라면, 사실 우리 역시 잘 알고 있지 않나.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9호 201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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