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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솔직함으로 무장한 이상한 나라의 정인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0-05-17 4,862


정인은 자신의 이름보다 흑인을 방불케 하는 독특한 목소리와 개성 넘치는 창법으로 더 유명한 뮤지션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호소력 짙은 그녀의 음색은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아련하게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2002년 힙합 그룹 리쌍의 객원 보컬로 참여한 이후 바비 킴, 박선주, 드렁큰 타이거, 김진표, 하림, 정재형 등 여러 실력파 가수들의 음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주목받은 정인이 데뷔 8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미니 솔로 앨범 「정인 from Andromeda」를 발표했다. 리쌍의 길이 프로듀서를 맡은 그녀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은, 타이틀곡 ‘미워요’의 작사·작곡·편곡 등에 참여한 가수 이적을 비롯해 리쌍의 개리, 에픽하이의 타블로, 클래지콰이의 알렉스, 주얼리 출신의 박정아 등 화려한 뮤지션들이 팔 걷고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홀로서기 두 달째를 맞고 있는 가수 정인은 그동안의 바쁜 스케줄을 마감하고 친구들과 함께 떠날 여행을 계획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앨범 나온 지 한 달 좀 지났죠? 라디오나 카페에서 정인 씨 노래가 들려오면 기분이 어떤가요?
음, 좋은 것보다는 감사하더라고요. 신청해주신 분들에게도, 틀어주신 분들에게도. 앨범을 처음 손에 받았을 때도 설레고 좋은 것보다는 도와주신 분들이 먼저 생각이 났어요. 그동안 제 이름으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낸 건 없었지만 그래도 제가 뭔가를 계속 해왔다는 걸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셨거든요. 음반 하나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감사한 마음만 들었어요. 마냥 좋아하기에는 제 나이가 이제 어리지 않잖아요.(웃음)

 

「정인 from Andromeda」라는 앨범 제목을 가수 김C가 지어줬다죠?
네. 한 3초 정도 고민 끝에. 하하. ‘네 목소리가 여기의 것이 아니라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 같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보다는 귀엽고 재미있었어요. 이번 앨범에서는 정인이라는 가수에 대한 선입견에서 오는 어떤 무게들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왠지 어울리는 제목 같더라고요.

 

실은 앨범 속지 그림을 정인 씨가 직접 그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림 말고 가사 글씨를 직접 썼어요. 제가 바른글씨 상까지는 받았는데 그림은 참 못 그리거든요. 오죽하면 미술 시간에 정밀 묘사할 때 샤프심을 그려냈겠어요.(웃음) ‘미워요’ 가사가 쓰인 지면의 그림은 길 오빠가 그린 거예요. 사과를 반으로 쪼개는 그림이라고 하면 모두 놀라긴 하지만요. 아래 그림은 저승사자고요. 아, KKK라고 했던가. 하하. 이런 질감의 종이 재킷을 택한 거나 손글씨를 택한 것도 더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가수 정인으로는 처음 선보이는 음반이라 그런지, 수록된 곡들이나 전체적인 앨범 컨셉이 대중성에 맞춰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초점을 맞추고 작업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앨범에는 다섯 곡밖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솔로 앨범을 준비하는 3년 동안 스무 곡 정도를 작업해뒀거든요. ‘미워요’를 처음 듣자마자 앨범 타이틀로 결정해 놓고 다른 곡을 선정했는데, 마침 힘을 빼던 시기에 작업했던 곡들이었어요. 그때 주위 분들이 저더러 ‘개성과 장점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는 가수가 되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저 스스로도 너무 힘을 주는 게 방해될 것 같았고요.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렇게 됐더라고요. 그래서 길 오빠하고 너무 부드러운 거 아니냐는 고민을 나누기도 했어요. 오빠를 믿으라고 했지만 지금의 솔직한 제 심정이기도 했고, 센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도 없을 것 같았어요.

 

‘리쌍의 연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나보군요. 
네. 솔직히 저는 파워풀한 보컬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리쌍과의 무대에서 잠깐씩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나 봐요. 그런 것들을 덜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파워풀한 보컬로 봐주시면 좋기도 하겠지만 사실이 아니니까. 좀 더 솔직하게 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럼 정인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요? 
파워풀하기보다는 음, 이상한 사람이 맞는 것 같아요. 싸우는 거 싫어하고 서운한 마음이 있으면 그때그때 풀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해서 눈도 못 맞춰요. 직설적인 편이지만 남들 앞에서 제 마음을 드러내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애교는 많지만 보이는 데서는 표현하지 않고, 주목받는 것도 즐기지 않고요. 음색이 부드럽지도 않고 파워풀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절절하잖아요) 그 절절함이 주는 감동도 이상한 것 같지만 그래도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과 어떤 공감대가 겹쳐지는 것만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한 인터뷰에서 ‘내 이름으로 된 음반을 꼭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 없었다’는 얘기를 했어요. 10여 년을 음악에 빠져 살았고, 리쌍을 비롯한 다른 가수들과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동안 ‘나만의 음악’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플라(G-Fla)가 있어서 괜찮았던 건가요? 
지플라 음악을 제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20대의 전부거든요. 하지만 음반이라는 것이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 이야기고 제가 노래하는 것은 맞지만 프로듀서도 그렇고 연주자들도 그렇고 모두가 함께한 작업이죠. 이번 앨범도 타이틀이 필요하니까 정인을 달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음악을 하는 것이 자유로웠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또 모르죠. 제 세계에 더 책임감을 갖고 음악을 하게 될지.

 

그래도 피처링이나 OST 작업에 비하면 내가 원하는 만큼을 담아낼 수 있는 개인 앨범 작업이 더 자유롭지 않았어요?
운 좋게도 지금까지 다른 가수들과의 작업에서 저는 제약을 그리 많이 받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밴드 활동을 할 때도 제 의도를 충분히 담아서 작업했고, 피처링 할 때도 곡에 대한 제 생각을 많이 물어봐 주셨거든요. ‘네가 이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하시면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하면서요. 대부분 친분이나 음악적인 이유, 의미 있게 작업했던 시간들이라 즐거웠어요. 물론 일처럼 했던 작업도 있었지만요.

 

프로듀서 길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저는 길 오빠를 100퍼센트 신뢰해요. 정말 카리스마 넘치고 지휘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도 넘치는 분이거든요. 뮤직 비디오든 음악이든 컨셉을 잡고 구성을 짜는 데에  능력이 뛰어나서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대신 그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도록 설득시키는데 가끔은 천재가 아닐까 싶다니까요. 함께 작업하는 동안 한 번도 섭섭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노래를 할 때 감정을 어디까지 가져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한 편인데 그때마다 큰 힘이 되어 주세요. 제가 살가운 성격이 못 돼서 평소에 사적인 얘기를 특별히 나누지는 않지만 이제는 표정만으로도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고요.

 

‘미워요’는 그 곡을 프로듀싱한 이적 씨가 학을 뗄 정도로 녹음을 많이 했다죠? 어떤 부분이 그렇게 부족했던 거예요?
이적 오빠한테 곡을 받고서 가사 없이 가이드를 부른 게 있었는데 길 오빠도 저도 그것만 일 년 반을 들었어요. 길 오빠는 부산에서 술 마시면서 그거 듣고 눈물 흘린 적도 있었고, 저는 낙엽 떨어지는 거 보다가도 센티해질 정도로 그 곡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있었어요. 근데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해보니까 그때 그 정서만큼 나오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녹음했던 것 같아요.

 

앨범에 실린 곡은 그때 그 느낌을 담아낸 건가요?
제 생각으로는 근접 정도. 스스로 100퍼센트 만족하는 곡이 얼마나 되겠어요. 녹음을 하다보면 잘 될 때도 있지만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감정이 꼬여서 산으로 가기도 하고, 열세 살 감정으로 불러야 하는데 서른 살의 여자가 나오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길 오빠가 녹음실 안에 들어와서 몸 연기로 필요한 감정을 노래해주셨어요. 밖에서 보면 웃길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슬프고 즐겁고 그랬어요. ‘미워요’ 같은 경우는 길 오빠를 가사 속의 남자라고 생각하고 부르니까 감정이 잘 잡히더라고요. 다음 앨범 녹음할 때는 아르바이트라도 써서 남자 한 명씩 데려다 놓고 노래할까 봐요.(웃음)

 

정인 씨의 독특한 음색이나 가창력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분석적으로 들어가서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제가 생각해도 너무 칭찬해주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파워풀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봐주시니까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 보완해가고 있어요. 곡 해석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왜,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붓질을 이렇게 할까, 물감을 던져서 할까 하는 그런 결정은 좀 잘하는 편인 것 같아요.

 

가사를 직접 쓴 5번 트랙 ‘고마워’는 어떤 터치를 한 거예요? 말랑말랑한 가사가 특정인을 향해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하하. 가사 쓸 당시에 한 3분 정도는 남자친구(정인의 남자친구는 SBS ‘초콜릿’ 밴드의 기타리스트다.)를 생각하면서 썼는데 곧바로 모든 친구들로 바꿨거든요. 남자친구한테 참 고마운 건 데뷔 이후로 8년 동안 음악을 하면서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주고 저만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여러 사람에게 푸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둘 다 음악을 하지만 같이 일하지 않아서 잘 지내온 것 같아요. 5~6년째까지는 음악 얘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싸우지 않고 음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요새는 같이하는 작업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어요.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인 약점에 좌절하지 않고 음악으로 극복해낸 정인 씨를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양쪽 귀가 다 들리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소리만 느낄 수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으니까 어떤 제약을 느끼고 고민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한 가지, 나이를 먹으면서 남은 청력까지 잃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있죠. 밴드를 하고 합주를 하다보면 사운드가 크니까 아무래도 귀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예민해질 때가 있거든요. 가끔 센티해질 때면 ‘만약 나머지 귀까지 다치면 뭐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건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생각 아닌가요?

 

음악에 빠져들었던 것은 언제부터였어요?
고등학교 올라갈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학력고사 끝나고 수고했다며 아버지가 미니 콤퍼넌트를 사주셨거든요. 그래서 한동안은 ‘그때 그거 사준 게 한이 된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어요.(웃음) 그때 알앤비 여성 3인조 그룹 TLC의 노래에 꽂혀서 흑인음악을 열심히 찾아 듣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90년대 알앤비부터 70년, 60년 소울 알앤비까지.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어요?) 글쎄요,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는 그게 진짜 같았어요. 다른 음악을 들을 때 느끼지 못한 어떤 감동이 있었어요. 지금이야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땐 다른 세계를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 음악만 죽어라 들었어요. 어느 순간 흑인음악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어떤 정서가 문화적으로 저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말이에요.

 

요즘 호기심 있게 듣는 음악이 있나요? 
장르에 대해서는 개념 자체가 없어졌는데, 요즘은 어떤 세련미가 음악의 한 장르가 된 것 같아요. 작년에는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음반에 미쳐 있었는데, 요즘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4번, 5번 트랙, 산울림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를 즐겨 듣고 있어요.

 

단독 콘서트 계획은 없나요? 
다음 앨범을 내고 저만의 레퍼토리를 좀 더 쌓은 후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무대에서 한두 곡 노래하고 녹음하는 건 저한테 일이 아니라 놀이거든요. 근데 공연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노래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관객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연출력도 필요하고. 어제 EBS 공감 녹화를 했는데 진짜 공연하듯이 진행을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공연도 빨리 놀이처럼 느끼고 싶은데 아직은 부담스럽고. 관객들이 돈을 지불하고 보는 공연이니까 그만큼 상품성 있게, 세련되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언젠가는 아무 말 없이 노래만 하면서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엠넷 A-Live처럼 편안한 분위기, 관객들이 누워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공연을 하거나요.


곧 다시 만나게 될 음반에서는 어떤 곡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여름을 타깃으로 한 여름 노래가 있는데 제 욕심으로는 여름에 미니 앨범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지난 가을에 리쌍 오빠들과 함께 작업한 곡도 소개하고 싶고요. 하림 오빠, 브라운 아이즈의 윤건 오빠 등 너무 많은 분들이 곡 작업을 도와주셨는데, 모두 관심을 고루고루 받아야 하는 노래들이라 한 장의 앨범으로 한꺼번에 담을 수가 없어요. 아깝고 고마워서. 하지만 언젠가는 꼭 공개하려고요. 제가 쓴 곡들 중에 요즘 욕심나는 곡은 ‘정말 가끔만’이에요. 나보다 잘 살아가는 너이지만 진짜 가끔은 그냥 내 곁에, 나만이 너를 보석으로 알아봐줄 수 있게끔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내용인데요, 그래서 요즘 길 오빠를 열심히 설득 중이에요.(웃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0호 2010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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