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을 놓쳤다. 근처 분식집에 가서 김밥을 주문하니 피곤해 보이는 아저씨가 물 한 컵과 단무지를 내왔다. 아주머니는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이로 보이는 꼬마가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공책을 펴놓고 숙제를 하고 있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며 나는 무심하게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 아이가 엄마를 돌아보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역활’이 맞아, ‘역할’이 맞아?”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역활’이 맞을걸?” 하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는 아~ 하더니 공책에 ‘역활’이라고 썼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여기서 ‘역할’이 맞다고 끼어드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니까. 부모의 권위는 이런 작은 역할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아이는 아무래도 미심쩍었는지 몇 번 갸우뚱하다가 내 쪽을 힐끔 본다. 내 생각도 들어보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정답을 알려주면서 아주머니를 향해 미안한 듯 덧붙였다. “원래는 ‘역활’이었는데 맞춤법이 바뀌었거든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푸념했다. “우리 때는 그렇게 배웠는데. 먹고 사느라 바쁘니 그런 것도 모르고 사네요.”
난관을 넘긴 아이는 다시 열심히 숙제에 몰두했다. 아주머니는 김밥을 썰었고 아저씨는 그걸 접시에 담아 내왔다. 늦은 식사였던 까닭에 김밥은 맛있었다. 그렇게 식당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피곤한 얼굴의 아저씨는 아내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래도 두 사람은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봤다. ‘역활’인지 ‘역할’인지 고민하는 아이를 위해 이들 부부는 새벽부터 나와 늦은 밤까지 김밥을 말고 라면을 끓였을 것이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니까.
사실 자기 한 몫만 하며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늘 드는 생각은 모두가 자기 역할만 제대로 해준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상상이다. 물론 현실은 자기 몫은커녕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투성이다. 내 역할을 못하면 누군가 그걸 대신하게 되고, 모든 고통과 번뇌 또는 만성피로는 거기서 시작된다. 특히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제 몫을 해내지 못하면 그 일에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 전에 그런 일을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역시 ‘기본’을 지키는 일이다. 자기 역할을 분명히 알고, 그걸 해내기 위해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 말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범해 보이지만 은은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늦은 저녁, 분식집 주인 부부의 소소한 일상에서 느낀 울림도 아마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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