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국립무용단은 기존 한국 춤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그만큼의 성과도 거두었다. 그런 행보의 중심에는 그들만의 전통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이 시대의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런 의지는 이번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의 신작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2014-2015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 선보이는 국립무용단 <토너먼트(Tournament)>가 그것이다.
한국 춤 작품의 제목으로는 다소 현대적인 느낌의 ‘토너먼트’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대결’ 또는 ‘경쟁’을 기본 컨셉으로 삼았다. 천상을 정복하려는 야심찬 인간들과 이들을 막으려는 천상의 수호자들의 대결이 작품의 주된 설정이다. 컨셉상 대칭적인 구도가 형성되는데, 이때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 등의 이항 대립이 활용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장기와 체스다. 양 진영에서 맞은편을 향해 공격과 수비를 하고 왕을 잡는 쪽이 승리한다는 형식이다. 마치 비보이들의 배틀을 떠올리게 한다. 대개 확실한 서사 구조나 거창한 신화를 기반으로 했던 한국 춤의 전례를 생각하면, 이는 그간의 국립무용단의 행보처럼 파격적인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극단적인 대칭 구조는 배틀 형식을 통한 대중적 접근을 염두에 둔 것만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한국 춤의 장점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장기와 체스, 두 게임의 성격을 그대로 빌려와 각각 16명으로 구성된 두 개의 진영은 장기의 ‘차’, ‘포’, ‘상’, ‘마’, 체스의 ‘비숍’, ‘나이트’, ‘룩’처럼 개별 무용수에 저마다의 캐릭터를 부여한다. 각 말의 역할처럼 무용수가 표현하는 춤의 모습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같은 무용수들의 개성 넘치는 춤이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철저한 대칭 구조가 지닌 단순함의 한계는 양 진영의 풍부한 시청각적 요소들로 보완된다. 체스 진영은 붉은 옷을 입은 여성 무용수들로 구성돼 천계 수호신의 역할을 맡는다. 파가니니의 솔로 콘체르토 등 익숙한 클래식 음악에 맞춘 군무 중심으로 정체성을 나타낸다. 이에 맞서 장기로 표현되는 푸른 옷의 인간 공격자 진영은 우리의 전통 타악을 기본 리듬으로 하며 현악기로 절정을 나타내는 방식을 취한다. 상대 진영과 달리 남성 무용수들이 역동적인 독무로 차별성을 띤다. 화려한 의상과 움직임 못지않은 우리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충돌, 그 가운데 어우러지는 군무와 독무의 조화는 정중동이라고 표현되던 한국 춤의 정의를 확장시키기에 충분하다.
<토너먼트>는 예술감독 윤성주와 <단(壇)>의 안무로 국립무용단과 인연을 맺은 현대무용가 안성수의 공동 안무작이다. 여기에 <단>과 <묵향>의 연출을 맡았던 디자이너 정구호가 다시 한 번 연출가로 이번 작업에 합류했다. 이 세 사람은 사실상 ‘윤성주’호 국립무용단의 삼각 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작업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이번 무대가 어떤 방향을 가리킬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제 확인할 것은 그 파격적인 형식에 담긴 춤의 어우러짐이다. 그동안 국립무용단의 실험에 박수로 화답한 관객들은 이번에는 어떤 반응을 보낼까. 그 결과는 9월 17일부터 해오름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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