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과 BBCH홀이 공동 기획한 ‘Korean Musical Creator’ 강좌가 지난 11월 17일 다섯 번째 시간을 마련했다.
7월부터 이어진 시리즈의 마지막 행사였던 이번 강좌는 연극 <죽도록 달린다>로 데뷔한 후 <영웅>, <왕세자 실종사건>, <청춘 18대 1>, <메디아> 등 뮤지컬과 연극, 창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전방위로 극작을 하고 있는 한아름 작가를 초빙해 진행됐다.
예의 조리있고 빠른 말투로 뮤지컬 극작가로서의 실질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들려준 한아름 작가의 강연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마무리됐다.
그 스스로도 ‘15주짜리 강의 압축본’이라고 할 정도로 핵심만 짚어냈던 이날의 알찬 강의를 정리해봤다.
뮤지컬 작가의 기본적인 소양
어떤 대본이든 그것은 기초이지 완성이 아니다. 작가 지망생들이 상상하는 건 어마어마한 작품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작가는 천재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대본을 빛내줄 수 있는 연출가, 작곡가, 배우들을 잘 만나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기보다 그들로부터 아이디어를 하나씩 얻는 게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것이다.
뮤지컬에서 협업은 필수다. 일단 제작자의 기대치가 다르고 창작자들끼리 바라는 것도 다르다. 초고가 나오면 모든 스태프들이 공유해 다듬어지는 과정이 대략 2년 걸린다. 그 기간에 협업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이때 작가의 역할은 마감 기한을 잘 지키는 것이다. 건축의 ‘공사 기간’처럼 뮤지컬도 제작 기간이 정해져 있다. 작가가 원고를 못 쓰면 그 기간이 다 늦어진다. 밤을 새우든 밥을 굶든, 어떤 사정에서든 마감은 최대한 맞춰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원고는 넘겨야 한다. 전화를 꺼놓고 잠적하는 건 최악이다.
메모하는 습관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다. 순간의 아이디어는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지금 당장은 쓸모 있지 않더라도 언젠가 다른 부분에서 반드시 쓸데가 생긴다. 일종의 ‘재활용센터’라고 보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쓸 때는 수학처럼 명료해야 한다. 극작술의 기초적인 상식을 습득한 뒤 특정한 기준에 따라 쓰라는 의미다. 그냥 쓰다 보면 되겠지, 하고 대충 가늠만 해서 쓰면 결코 안 써진다. 강연이나 관련 학과, 또는 독학을 통해 극작술의 규칙들을 숙지해야 한다. 극작술에 ‘내적인 신념’과 ‘외적인 기술’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내적인 신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내공이 쌓인다. 중요한 건 ‘외적인 기술’이다. 예술의 ‘술’은 기술 ‘술(術)’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제작자와 투자자는 자선 사업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창작진들을 보고 투자를 한다. 그 과정이 결코 녹록한 게 아니다. ‘난 예술가니까 타협하지 않겠어’, ‘내 소신대로 쓸거야’라는 태도는 곤란하다. 작품이 실패했을 때 창작진들이 분노하는 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약 백 명의 스태프들이 한 작품에 소중한 인생의 시간들을 쏟아붓는다. 그건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예술적 가치는 작가의 몫이고 책임도 있음을 잊어져는 안 되지만, 뮤지컬은 돈의 원리에 따르는 장르라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또 뮤지컬 작가는 글쓰기 못지않게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 많이 들으면 무조건 도움이 된다. 이 말은 노래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뮤지컬은 말을 음에 실어서 표현하는 장르다. 그러니 음악을 듣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쓸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60~80쪽을 써내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마어마하다. 가히 ‘빈 문서1의 공포’라고 표현할 만하다. ‘공포’라고 할 만큼 창작은 어렵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창작을 하려고 하는 건 욕심이다. 한예종 음악창작과의 기말 독회 제목도 ‘욕심부리지 마’다. 좋아하는 작품들을 가져다 써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서두르면 상처만 남는다. 배우는 연출에게 혼나도 서로 위로하며 상처를 보듬을 수 있지만, 작가는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다. 언젠가 해낼 거라는 생각으로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 모른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선 먼저 훌륭한 관객이 돼야 한다. 영화 볼 때도 취향이 정해져 있듯 작가도 취향이 있다. 배우들도 모든 유형의 연기를 다 잘하진 못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코미디, 추리, 로맨스 등 다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작가가 쓸 수 있는 분야는 정해져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면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답이 나온다.
보편타당하면서도 특수한 이야기가 가장 좋은 스토리다. 익숙한 모티프로 개성적인 캐릭터와 독창적인 디테일을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걸 다 화려하게 쓰려는 욕심이 있다. 하지만 온몸을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보다 평범한 복장에 포인트를 준 사람이 멋있듯이, 보편적인 소재에 특별한 사연이 들어가면 좋은 글이 된다. 그럼 특수함의 기준을 어떻게 판별할까.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유명한 제작사 픽사의 스토리 작가들이 한 말이 있다.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아이디어는 버려라.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도 버려라. 대다수 작가가 생각하고 있다. 세 번째도 버려라. 제작자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필터링을 하면서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뭘 쓰지’라는 고민은 가장 어렵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최악의 경우는 쓰다가 버려야 할 때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어떻게 쓸까
일단 소재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한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거기서 끝나는 글들이 많다. 작가는 배우가 멋지게 보이는 것을 당연히 고민해야 하지만, 그것만 고민하면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는다. 소박한 스토리 안에 그 사람의 진정성이 드러나게 쓰는 게 좋다.
스토리는 심플할수록 좋다. 연극은 관객의 잔잔한 마음에 뭔가를 던지고 나오면 된다. 반면 뮤지컬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토리가 심플한 대신 포커스가 정확해야 하고 그에 맞는 극적 음악이 필요하다. ‘어떻게 쓸까’의 포인트는 ‘대사는 가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글은 음악을 이길 수 없다. 글은 이성이자 논리이고, 음악은 감각이자 직관이다. 평화로운 가족이 등장해도 <조스> 음악이 나오면 잔인한 장면이 없어도 긴장감이 감돈다. 음악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음악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
또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야 한다. 뮤지컬은 ‘쇼’다. 작가는 대사 못지않게 스펙터클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도 중요하다. 작가는 무대의 공간을 채우는 데도 책임이 있다. 가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 쓴 후에는 눈으로만 보지 말고 녹음해서 귀로 들어야 한다. 보통 가사를 시적이고 아름답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귀로 들을 때는 그 의미가 잘 안 들린다. 눈으로 읽는 것과 귀로 듣는 건 다르다. 읽을 때 몰랐던 점들이 들린다.
그리고 거침없이 쓰고 잔인하게 고쳐야 한다. <영웅>은 무려 40고를 썼다. 좋은 대본이 나오려면 계속 고치는 수밖에 없다.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객석에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대본을 다시 만들어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를 빨리 파악하게 된다. 바둑의 복기(復棋)와 흡사하다. 작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부분은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가 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분들은 좋게 봐줄 때가 있다. 이런 복기를 통해 작가가 원하는 것과 그들이 원하는 게 다르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작가에게 재능이란
작가의 재능은 세상에 없는 놀라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것을 평범하게 만들어 이해시키는 것이다. ‘나는 작가로서 재능이 없어’라고 생각하기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얼마나 피 흘리는 전투를 했는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빅 픽처>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가. 둘째, 거부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셋째, 2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딜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통해 자신이 작가적 삶에 부합하는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5호 2014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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