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태양왕>을 마지막으로 사그라졌던 프랑스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새해 초부터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달 개막한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은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얼마 전 처음 소개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의 감동을 충분히 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오는 9월에는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라이선스 초연이 예정돼 있어서 기대를 모은다. 오랜만에 기지개를 편 프랑스 뮤지컬이 최근 몇 년간 오스트리아 뮤지컬에 내줬던 유럽 뮤지컬의 왕좌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동안 국내 무대에 소개된 프랑스 뮤지컬들의 부침을 통해 그 가능성을 점검해본다.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원동력
프랑스 뮤지컬은 2005년 2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첫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국은 규모와 매출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영미권 뮤지컬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었다. 기존의 브로드웨이식 뮤지컬과는 다른 형식의 프랑스 뮤지컬이 국내에 소개되자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비록 최고의 팀으로 언급되는 1998년 프랑스 초연 멤버 팀은 아니었지만, ‘프랑스 뮤지컬’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에는 DVD로만 접할 수 있었던 뮤지컬을 드디어 국내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국내 관객들은 열광적인 호응을 보였다. 이때의 성공을 토대로 프랑스 뮤지컬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한국 진출에 나섰다. 특히 2006년은 무려 다섯 편의 작품이 잇따라 소개되며 ‘프랑스 뮤지컬 붐’이 일어난 해였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또 한 번 오리지널 팀이 내한해 초연 당시의 감동을 환기시킨 것을 필두로, <벽을 뚫는 남자>, <챈스>, <십계>, <돈 주앙>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뮤지컬들이 잇따라 국내 무대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2007년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와 함께 ‘프랑스 3대 뮤지컬’로 불리는 <로미오 앤 줄리엣>까지 들어옴으로써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시장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프랑스 뮤지컬이 국내에 연착륙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작품 자체에 담긴 낭만적 서정성과 인상적인 안무 등의 외형적 요인도 있지만, 국내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팬덤이 형성돼 있었다는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영상물 제작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미권 뮤지컬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흥행 여부와 관계 없이 대부분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한다. 뮤지컬 마니아 커뮤니티는 DVD를 통해 프랑스 뮤지컬의 진수를 미리 맛볼 수 있었고, 이로부터 프랑스 뮤지컬의 잠재 관객층이 태동할 수 있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지속적인 성공도 프랑스 뮤지컬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시장 형성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이 작품은 2007년부터 라이선스 버전으로도 제작돼 매년 공연됐고, 투어 팀도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이어가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반면 이어서 소개된 다른 작품들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십계>는 인상적인 조명과 음악, 스케일 등을 보여 주었지만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한 까닭에 불편한 접근성과 경기장 공연에 대한 편견 등에 가로막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대형작뿐만 아니라 <벽을 뚫는 남자>와 <챈스> 등 중·소형 규모의 뮤지컬을 라이선스로 공연한 것은 당장의 흥행보다는 장기적인 실험의 의미가 컸다. <노트르담 드 파리> 만큼의 성공을 예상했던 <로미오 앤 줄리엣>은 보다 화려해진 무대와 브로드웨이식의 대규모 출연진을 앞세워 흥행몰이를 했지만 좀처럼 관객 동원에 탄력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 뮤지컬이 집중적으로 소개된 초반 몇 년간 <노트르담 드 파리>와 함께 쌍끌이 역할을 할 작품이 나오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그래도 쇼는 계속된다
당시 프랑스 뮤지컬 팬들에게 아쉬운 것은 프랑스 대중 뮤지컬의 효시로 불리는 <스타마니아>가 들어오지 못한 것이었다. <스타마니아>는 이런 팬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듯 <코로네이션 볼>이라는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소개돼 관심을 모았다.
<십계>와 <태양왕>을 제작한 알베르 코엔과 도브 아띠아가 프랑스에서 2009년 공연한 <모차르트 오페라 락>은 흥미롭게도 공연보다 영화로 먼저 국내 관객들과 만났다. 2011년 공연 실황을 담은 3D 영화로 먼저 국내에 선보인 이 작품은 이듬해 극장에서 정식으로 막을 올렸다. 록 뮤지컬인 만큼, 높은 음역대와 격정적인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캐스팅으로 진행돼 가수 고유진이 참여하는 등 공연 내내 이슈가 됐다. 하지만 ‘천재’보다 ‘인간’ 모차르트를 보여주려는 작품의 메시지를 강조한 나머지 원작의 강렬한 스타일이 일정 부분 반감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엔과 아띠아 콤비가 먼저 제작한 <태양왕>은 2005년 파리 초연에서 성공을 거둔 후 국내 팬들에게도 기대작 리스트의 상단에 있던 뮤지컬이었다.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루이 14세의 뛰어난 가창력과 음모의 위험을 담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 베르사유 궁의 화려함과 어우러지는 춤 등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을 받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 속 인물의 업적에 대한 조명 대신 한 남자로서의 루이 14세를 조명한 것은 이 작품의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국내 라이선스 버전에서는 그런 장점들이 모두 실종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팬들에게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공연 중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태양왕>이나 <모차르트 오페라 락>보다 먼저 만들어졌지만 제일 마지막에야 들어오게 됐다. <로미오 앤 줄리엣>의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이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얻은 대중적인 성공에 많은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인상적인 원 세트에서 진행되는 오리지널 버전을, 이번 라이선스 버전에서는 여러 개의 무대로 나누어 전개하고 있다. 그런 만큼 각각의 장면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도 수정되고 있는 만큼 이 작품이 최종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올해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을 담아 역사의식에 관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도브 아띠아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상황이 오늘날의 사회 문제들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기획했다. 팝 스타일의 보컬과 500여 벌에 이르는 화려한 의상, 발레와 현대무용을 활용한 역동적인 안무 등 기존 프랑스 뮤지컬의 모습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인상을 준다. 또 맞춤 제작된 오토메이션 장치, 다채로운 무대 전환을 섬세하고 웅장한 영상 디자인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늘 그랬듯, 이 작품이 <노트르담 드 파리>의 뒤를 잇는 명작이 될지, ‘프랑스 뮤지컬’ 계보의 한 줄을 차지하는 데 그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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