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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허니문 인 베가스> HONEYMOON IN VEGAS [No.138]

글 | 박천휴 작가/ 번역가 사진제공 | Joan Marcus 2015-04-05 5,299

라스베이거스여, 브로드웨이를 유혹하라  



‘라스베이거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나열해 보자. 호텔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밤거리, 일확천금을 위해 카지노 기계 앞에 앉아 열심히 손잡이를 당기는 사람들의 뒷모습, 스트리퍼에 환호하는 술 취한 남자들이 벌이는 총각 파티. 이렇듯 시끌벅적한 라스베이거스의 분위기를 무대 위로 옮긴 뮤지컬 한 편이 올겨울 별다른 화제작이 없어 유난히 조용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브로드웨이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허니문 인 베가스>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사라 제시카 파커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무대에서 살아난 로맨스 코미디

<허니문 인 베가스>의 배경이 되는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도시로 유명하다. 이 도시에서는 실제로 미국의 다른 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언제든 그 자리에서 결혼을 할 수 있다. 시내 곳곳에 자정까지 문을 여는 결혼식장이 있으며, 간략한 양식의 문서만 작성하면 바로 법적 효력이 생기는 결혼증명서가 발급된다. <허니문 인 베가스>는 어머니가 저주처럼 남긴 ‘평생 결혼하지 말라’라는 유언에 프러포즈를 망설이는 남자 잭이 오랜 여자친구 베시를 놓치기 싫어 그녀에게 “지금 당장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결혼을 하자”고 충동적으로 말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간단하게 요약된 줄거리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면, 그건 앞에서 언급했듯 이 뮤지컬이 1990년대 초에 나온 영화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영화 또한 지금까지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코미디 영화가 그랬듯, 도박과 내기를 소재로 하는 익숙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허니문 인 베가스>는 전체적으로 야심이 작은 원작의 이야기와 캐릭터, 유머를 최대한 충실하게 무대로 옮기려고 노력한다. 좋게 보면 확고하고 나쁘게 보면 평면적인 유머가 브로드웨이 무대로 옮겨질 때 성공할 가능성은 50대 50 정도다. 브로드웨이의 평론가들은 현재를 배경으로 한 상업 뮤지컬에서 단순한 성격의 내용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단순한 성격을 고유의 스타일로 풀어내며 개성 있는 질감을 디테일하게 덧입힌다면, 그 가치를 알아볼 평론가 또한 많은 곳이 브로드웨이다. 다시 말해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공연이 되기 위해서는 관객과 평론가 양쪽 모두에게 환영받을 가능성을 지닌 이야기와 그걸 잘 세공할 장인이 필수적이다. 뮤지컬 <허니문 인 베가스>가 내세우는 장인은 우선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다. 



전천후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은 20대의 나이에 뮤지컬 <퍼레이드>로 일찌감치 토니상을 받았고, 2인극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감수성 뛰어난 노래들로 많은 골수팬을 가졌다(이 뮤지컬은 안나 켄드릭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현재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오랜만에 브로드웨이에 복귀해 토니상에서 작곡상과 편곡상을 휩쓸었다. <허니문 인 베가스>에서도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은 그 명성에 걸맞게 흡인력 있는 멜로디와 재치 있는 가사들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1950년대 브로드웨이의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복고풍의 재즈와 블루스, 스윙 느낌의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나 15인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곡은 트럼펫과 색소폰 등 관현악기의 사운드를 강조하는, 거의 파스티슈에 가까운 복고풍의 음악이다. 마치 당장 프랭크 시나트라가 무대 위에 올라와 노래를 한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랄까.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일급 작곡가답게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은 단순히 예스러운 느낌을 잘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뮤지컬에서 음악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캐릭터마다, 그들이 처한 상황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와 리듬으로 변주하며 정체된 느낌이 들지 않게 한다. 또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직접 쓴 가사 역시 유머를 잃지 않는 인상적인 내용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거의 대부분의 뮤지컬이 그렇듯이, 공연 시작 후 30분 동안은 캐릭터와 상황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노래로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허니문 인 베가스>의 첫 30분 동안, 주인공 잭을 포함한 캐릭터와 상황을 굉장히 빠르고 위트 있게 노래로 설명한다. 이 작품에서 코미디 뮤지컬 넘버들은 단순히 웃음을 주는 장치가 아니라 캐릭터와 이야기의 전개를 담당하는 큰 축이다. 예를 들어 잭의 엄마가 죽기 전 유언으로 잭에게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네버 겟 메리드(Never Get Married)’는 관객에게 큰 웃음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잭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관객에게 빠르게 이해시킨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감수성 짙은 음악에 친숙한 관객들이라면, 이 코믹한 노래가 이토록 센스 있게 만들어진 것에 무척 감탄할 수밖에 없다.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얼마나 뛰어난 전천후 작곡가인지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복고풍 감성을 자아내는 무대

음악이 전체적으로 복고풍의 느낌을 만들어내는 동안 이 공연의 다른 모든 요소들 또한 복고풍의 인상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무대디자이너 안나 루이조스(대표작 <애비뉴 큐>, <신데렐라> 등)가 만든 세트는 1970년대가 배경이라고 해도 될 만큼 빈티지한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 의상 역시 핫 핑크와 스팽글, 깃털 장식을 심심찮게 등장시켜 예스러운 느낌을 낸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의 배경이 단순히 라스베이거스인지, 아니면 과거의 라스베이거스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어쩌면 관현악 사운드로 가득 찬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스윙 스타일 음악이 모든 시각적인 스타일을 결정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먼저였든, 전반적으로 1960~70년대 감수성으로 가득 채워진 <허니문 인 베가스>는 스타일 면에서 오래된 브로드웨이 작품들을 성실히 공부한 느낌이다. 


하지만 스타일뿐만 아니라 이야기에서도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건,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주인공 잭은 드디어 용기를 내서 여자 친구 베시와 결혼을 하기 위해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가지만, 그녀에게 반한 유명 도박사 토미의 꾐에 넘어가 큰 도박 빚을 지게 된다. 아쉽게도 이 대목에서 내용은 예상을 전혀 빗나가지 않는다. 토미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잭에게 베시와 자신이 주말을 함께 보낼 수 있게 해주면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잭은 어쩔 수 없이 베시를 어렵게 설득해 토미에게 데려가고, 토미는 그녀를 데리고 하와이로 가버린다. 




2막에서는 배경이 라스베이거스에서 하와이로 옮겨지고, 베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토미와, 그 둘을 쫓아 하와이로 온 잭이 토미의 집을 찾기 위해 벌이는 소동이 펼쳐진다. 진부하지만 그럭저럭 코믹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2막에 들어서 지나치게 산만한 느낌으로 바뀐다. 배우들은 굉장히 분주하게 사건과 또 다른 사건 사이를 오가고, 그러는 동안 관객들에게 던져지는 많은 유머에서도 몰입할 만한 느낌은 별로 없다. 어떤 장면들은 직선적인 유머와 실없는 개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이렇듯 2막에서 작품이 조금씩 방향을 잃어버리는 동안에도 음악은 여전히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 배경에 맞춰 하와이 느낌을 적당하게 덧입힌 노래 ‘하와이 / 웨이팅 포 유(Hawaii / Waiting For You)’, ‘프리키-프리키(Friki-Friki)’가 귀를 즐겁게 한다. 특히 극의 클라이맥스 부분,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낸 캐릭터에 맞춰 쓰인 노래들은 굉장히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동시에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게 만든다. 이처럼 극 중 장면들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훌륭한 음악에 힘입어 거의 지루할 틈 없이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스토리의 전개가 예상 가능할 정도로 진부하다 보니 작품이 별로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배우들은 흠잡을 데 없이 두루두루 호연을 펼친다. 남자 주인공 잭 싱어 역을 맡은 롭 맥클루어(대표작 <채플린>)는 소심하면서도 산만한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 특히 풍부한 표정과 분주한 몸동작으로 코믹한 안무와 노래를 충실히 전달하는 게 인상적이다. 이 공연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중 있는 역할인 도박사 토미 역의 토니 댄자는 1990년대 TV 시트콤으로 미국 관객들이 기억하는 베테랑 배우이다. 폭발적인 가창력은 없지만, 연륜 있는 코미디 배우답게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연기가 돋보인다. 분명한 악역임에도 토니 댄자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멜랑콜리한 매너는 관객들이 이 악당에게 충분히 연민을 갖도록 만드는데, 이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이야기에 조금이나마 갈등을 심어주는 기능을 한다. 이렇듯 가장 성공적인 악당 캐릭터는 관객들이 연민을 느끼게 하고 심지어 응원까지 하게 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엇갈리는 평단의 평가

<허니문 인 베가스>는 영리하게 꾸며진 세트들과 그에 맞춰 재치 있게 짜인 무대 전환과 스테이징, 일류 급의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 무엇보다 동시대 브로드웨이 작곡가들 중 가장 실력을 인정받는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빼어난 음악 등 전체적으로 좋은 뮤지컬이 되기에 충분한 재료들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반전이나 남다른 질감의 드라마 없이 가벼운 유머로 가득 찬 대본이 아무래도 이 공연의 호불호를 나누는 가장 큰 잣대가 될 듯하다. 개막 후 역시나 매체의 평가가 조금씩 나뉘고 있는데, <뉴욕타임스>의 공연 평론가 벤 브랜틀리는 ‘심각한 생각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훌륭한 엔터테인먼트가 되기에는 매우 심각한 공연’이라고 대체로 호의적인 평을 내렸다. 반대로 <버라이어티>는 ‘너무 성급하게 브로드웨이로 왔다’면서, ‘2막의 엉성한 부분들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평했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라스베이거스’가 요즘의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는 아닌 것 같고, 지금까지의 사례를 살펴봐도 라스베이거스를 소재로 다룬 공연이 새침한 브로드웨이의 관객들에게서 흥행을 이끌어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서 <허니문 인 베가스>가 이뤄낸 기술적, 음악적 성과를 생각했을 때 이 공연이 적절한 관객층을 찾기도 전에 너무 빨리 무대 위에서 내려오게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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