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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PREVIEW]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No.140]

글 |송준호 사진제공 |LG아트센터 2015-05-22 4,001

최고 광대와 떠나는 동심 여행




짙은 콧수염과 뒤뚱거리는 걸음, 그리고 지팡이와 중절모. 찰리 채플린을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그가 창조한 캐릭터 ‘리틀 트램프’다. 이 어리숙한 광대는 사람들을 마냥 웃기는 존재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공허한 눈망울이 자아내는 아련한 슬픔이 채플린을 마임 아티스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편, 스크린에 찰리 채플린이 있었다면 무대에는 마르셀 마르소가 있었다. 그 역시 우스꽝스러운 광대(Clown)보다는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광대(Pierrot) 캐릭터 ‘빕’을 통해 마임을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광대 예술의 계보를 잇는 이가 <스노우쇼>로 유명한 슬라바 폴루닌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광대극의 대가 폴루닌은 1979년 마임 컴퍼니 ‘리체데이’의 예술감독을 맡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전통 광대극과 다양한 국적의 마임을 예술적으로 결합하며 그의 광대 예술은 러시아를 넘어 세계로 알려졌다. 그리고 1993년 그는 대표작의 주요 장면을 모아, 노란 옷을 입은 광대가 주인공인 <옐로(Yellow)>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지금의 <스노우쇼>로 이름을 바꿔 에든버러 페스티벌 비평가상, 로렌스 올리비에상 등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상을 연거푸 석권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노랗고 펑퍼짐한 옷을 입은, 크고 빨간 코의 광대는 그 자체로 만화 캐릭터 같은 인물이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와 기대감을 자아낸다. 잠시 후 그가 이끄는 동화적이고 초현실적 세계는 느린 듯 빠른 전개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일곱 명의 광대들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시하며 자유롭게 객석에 뛰어들어 관객들에게 장난을 친다. 종이 꽃가루를 객석에 뿌려대는가 하면, 커다란 거미줄 같은 천으로 공연장 전체를 뒤덮어버리기도 한다. 한바탕 정신없는 난장판이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정적 속에서 섬세한 팬터마임으로 다시 시선을 집중시킨다. 한마디 대사도 없는 무언극이지만 이들의 표정이나 작은 몸짓 하나에서는 인간사의 다양한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겨 있다.


원제 <옐로>가 <스노우쇼>가 된 이유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야 하는 ‘옐로’는 출발을 알리는 기차의 기적 소리와 함께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애잔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던 그는 이윽고 눈물을 떨구고, 순간 편지는 거센 눈보라로 변해 객석으로 휘몰아친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웅장한 선율과 함께 연출되는 이 장면은 공연 내내 웃음과 익살에 숨겼던 광대의 슬픔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다. 강한 조명과 거센 눈보라는 관객에게 물리적 압박과 광대의 정서를 동시에 전달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한다.
모든 공연이 끝나면 가슴이 먹먹해 있던 관객들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형형색색의 거대한 풍선들이 객석으로 던져진다. 성인 관객들이 아이처럼 서로 공을 쳐내며 즐거워하는 순간 공연장은 그대로 유쾌한 축제의 현장이 된다. 시각, 청각, 촉각까지 감각을 고루 자극하며 감동을 주는 이 미학적 성취 덕분에 <스노우쇼>는 지난 네 번의 내한 공연에서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5월 14일 ~ 30일    LG아트센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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