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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이 시대 연상녀들의 연애 [No.140]

글 | 송준호 2015-06-08 6,061

요즘 연상녀와 연하남 커플은 흔하디 흔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이 존재했다. 

‘연상연하’라는 표현도 커플 중 여성이 연상인 경우로 한정된 성차별적인 용어였다. 
자신보다 어린 남자를 만나는 여성을 가리키는 ‘쿠거’ 역시 그런 시절의 잔재다. 

이 용어는 사냥감을 서서히 노리다가  단숨에 포획하는 고양이과 동물 쿠거의 습성을 빗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바뀌면서 ‘쿠거’는 능력과 자신감을 갖춘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변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입지 변화는 다양한 장르의 픽션에서 나타나고 있다. 



누나들의 나이는 죄가 없다 


1994년부터 10년 동안 전 세계 청춘들을 즐겁게 했던 드라마 <프렌즈>. 그 주인공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갈까. <쿠거 타운>은 당시 레이첼 역의 제니퍼 애니스톤과 함께 인기를 양분했던 커트니 콕스가 마치 40대가 된 모니카의 현재를 보여주는 듯한 드라마다. 지난 3월 시즌 6을 끝으로 종영한 이 드라마는 무능한 남편과 이혼하고 가족 부양에 청춘을 바친 끝에 뒤늦게 쿠거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렸다. 시트콤의 형식을 띠긴 했지만 여기서 비치는 40대 싱글 여성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드라마의 오프닝은 카메라가 주인공의 늘어진 뱃살과 주름, 탄력 없는 피부를 비추는 데서 시작하는데, 이는 주인공이 연하남과의 연애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예상하게 하는 장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싱글 여성의 욕망과 현실을 오롯이 담아내며 그에 대한 공감을 유도한다.


국내에서도 연상녀와 연하남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은 수년 전부터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방영된 <밀회>와 <마녀의 연애>. 특히 <밀회>는 극 중에서도 실제로도 스무 살가량의 나이 차가 났던 김희애와 유아인의 조합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부유하지만 공허하고 불안한 삶을 사는 상류층 여성이 가난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동정남과 만난다는 비현실적 설정은 예상 밖의 파괴력을 만들어내며 내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여기서 김희애는 특유의 우아하고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유아인의 스타성을 압도하는 중년 여성의 농밀한 매력을 보여줬다. 반면 <마녀의 연애>는 불혹을 앞둔 잡지사 기자와 아르바이트 대학생의 연애담을 다뤘다. 남자 친구와의 어긋난 인연과 워커홀릭 성향 때문에 혼기를 놓친 주인공의 모습은 실제 현대사회 여성들의 모습을 반영한 듯 현실적이었다. 게다가 프로페셔널한 직업관을 내세우며 신데렐라를 거부하는 독립적인 모습은 달라진 여성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TV에서 연상녀들의 왕성한 활약은 기존의 가부장제에서 표현됐던 남녀 관계의 상투성을 벗어나 다양하고 색다른 에피소드를 끌어내고 있다. 또 이런 설정은 단지 판타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상승과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자유로운 연애가 보편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 표현이 분명하고 욕구에 솔직한 존재로 그려지는 이 시대 연상녀들은 기존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달리 스스로 목표를 이뤄가며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얻는다. 즉 연상녀들은 이제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거나 최소한 평등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남자들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강한 여성상’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연상녀 캐릭터의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다. 20대 중후반 캐릭터들이 장악하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30~40대로 연령이 올라가고 있다. 한때 ‘노처녀’, ‘아줌마’ 또는 ‘이혼녀’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불리던’ 중년 여성들은 이제 당당하고 매력적인 개성으로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천차만별 연상녀의 사랑


뮤지컬 <쿠거>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중년 싱글 여성들이 등장한다. 쿠거 바의 사장인 메리-마리는 쿠거를 자처하는 당당한 이혼녀. 방송국 PD인 클래리티는 독신주의자로서 쿠거족을 천시했지만 자신도 로맨스를 경험하며 생각을 바꾼다. 남편에게 이혼당한 릴리는 자존감이 낮은 여성이었지만 친구들의 도움과 연하남과의 연애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 


이처럼 연하남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가 ‘쿠거’라는 키워드로 특화돼 나온 것은 그동안의 남녀 관계가 오랜 시간 연상남-연하녀의 구도로만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연상녀의 연하남에 대한 욕망은 종종 불온한 것으로 보이기 일쑤였다. 스크린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떡볶이집 아줌마가 대표적이다. 순진해 보이는 고등학생 권상우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김부선의 노련함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그 프로그램에서 활용될 정도로 깊은 인상과 충격을 남겼다. 한동안 ‘센 언니’의 이미지로 어필했던 이미숙의 <정사>도 연상 유부녀와 연하 미혼남의 불륜으로 당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영화는 불륜이라는 윤리적 시선보다 사랑이라는 대명제에 방점을 찍으며 상영 내내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사랑 지상주의는 일본 영화 <도쿄 타워>에서도 이어진다. 20대 청년과 30~40대 유부녀들의 연애를 다룬 이 영화는 여성들의 멜로 판타지를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젊은 남자와의 연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히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꾸준히 만들어지는 ‘쿠거 영화’에서 일관되게 전하는 메시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다. 뮤지컬 <쿠거>에서도 “용기(Courage)라는 말에 쿠거(Cougar)가 들어 있다”라는 대사로 사랑 앞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뒤 상담사에게 치료를 받는 <프라임 러브>의 주인공도 같은 상황에 처한다. 상담사는 연하남과의 관계를 두고 고민하는 이혼녀에게 새로운 인생을 즐기라는 격려를 해주고 주인공은 용기를 낸다. 물론 그 연하남이 상담사의 아들이라는 상황이 밝혀질 때 이들 앞에 펼쳐질 현실은 결코 순조롭지 못할 테지만. <서른아홉, 열아홉>의 주인공은 불순한 의도로 스무 살 아래의 연하남과 로맨스를 시작한다. 잡지사에서 점점 입지가 밀려나는 그녀는 편집장에게 ‘잇 아이템’으로 인정받은 ‘쿠거 로맨스’로 반등을 노리는 것. 그녀에게 쿠거는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지만, 결국 연하남과의 사랑에 뛰어듦으로써 잊고 있던 여성의 행복까지 되찾는다는 점에서 <쿠거>와 비슷한 결말을 맞는다. 


쿠거는 성 역할의 변화 과정에서 등장한 과도기적 현상이다. 결혼이 인생의 목표였던 기존 여성들의 가치관은 이제 일과 사랑으로 바뀌고 있고,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충족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쿠거’를 소재로 한 픽션들이 반드시 해피엔딩을 맞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럽다. 이제 연상녀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은 해피엔딩 자체라기보다는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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