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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스프링 어웨이크닝> SPRING AWAKENING [No.145]

글 |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 Kevin Parry 2015-10-16 9,024

청각장애인 극단이 선보이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2007 토니상 8개 부문에서 상을 거머쥐며 브로드웨이에 얼터너티브 록 뮤지컬과 네온 조명 시대를 열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다시 돌아왔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처럼 단기간에 재공연이 올라가는 작품은 드물다. 토니상 수상 연혁을 뒤져보더라도, 초연의 성공으로 장기 공연을 이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최우수 뮤지컬상을 받은 후 10년이 채 되지 않아 재공연이 성사된 적은 지금껏 없었기 때문에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브로드웨이 컴백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극단 Deaf West Theatre

‘당신이 봤던, 들었던, 상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새로운 프로덕션’이라고 홍보하는 이번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확실히 일반적인 뮤지컬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청각장애인이 함께하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이 공연을 제작한 데프 웨스트 시어터(Deaf West Theatre)는 청각장애인의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 할리우드에서 설립된 극단으로, 청각장애 배우가 출연하는 고전 작품을 선보여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데프 웨스트 시어터의 이름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브로드웨이에서 청각장애인이 참여하는 프로덕션으로 <빅 리버>를 재공연했을 때부터이다. 당시 공연은 장애를 지닌 배우와 장애가 없는 연기자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원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담긴 인종 차별적인 내용을 깊은 울림으로 전해 주었다. 또한 특정 언어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장애가 없어도 소통이 안 되는 사회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1890년대 독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종교와 사회적 관습에 갇혀 아이들을 억압하는 위선적인 어른들과 이제 막 자신들의 신체 언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아이들 간의 단절을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 멜키어는 똑똑한 모범생으로 소위 말하는 엄친아 같지만, 억압적인 사회의 분위기에 반발해 무신론자가 된 후 사회에서 퇴출된다. 그의 친구 모리츠는 학교에서 낙제를 받아 자살을 선택하는 사회 시스템의 패배자로 그려진다. 멜키어와의 하룻밤 관계로 임신을 한 후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낙태 수술을 받던 중 죽음에 이르는 벤들라는 사회의 희생양을 상징한다. 
성교육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고 엄마에게 묻는 딸에게 “여자가 남자를 아주 특별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폐쇄적인 사회’가 아이들에게 어떤 폐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실제적인 언어의 단절이 일어나는 청각장애인의 존재가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합하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 출연하는 뮤지컬은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청각장애가 있어서 잘 듣지 못하는 것도 넘어야 할 장벽이지만, 청각장애로 인해 언어능력의 발달이 더디기 때문에 대화를 하거나 노래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데 작품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감정 표현의 합을 맞춰 연기할 수 있을지, 무대 진행을 위한 음악 큐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함이 앞설 것이다. 데프 웨스트 시어터 프로덕션이 선보이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 전반에서 수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수화는 자연스럽게 안무에 녹아들기도 하고, 수화만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도 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 위 소품을 이용해 무대에 자막을 쓰거나, 대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오는 등 연극적인 기법을 적절히 살려낸 무대 기술이 돋보인다. 



장애의 드라마투르기

앞서 얘기했듯이 이번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무대에 출연하는 작품이다. 벤들라, 모리츠, 마르타, 테아 등 주요 배역을 청각장애가 있는 배우들이 소화하는데, 청각장애 배우들이 맡은 역할은 각각의 목소리 역할을 해주는 배우들이 따로 있다. 청각장애 배우들은 모두 극 중 배경이 되는 시대의 의상을 입고 있는 반면 목소리 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현대적인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노래를 부를 뿐 아니라 악기도 연주한다. 실제 역을 맡은 배우와 목소리 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연기를 동시에 하지 않는데(에른스트의 목소리 역할을 맡은 배우가 에른스트와 한센이 함께할 때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을 제외하면), 벤들라와 모리츠의 목소리는 마치 두 사람의 또 다른 자아 같은 역할을 한다. 벤들라가 ‘Mama Who Bore Me’를 부르기 전, 벤들라와 벤들라의 목소리(케이티 보엑) 배우는 타원형 틀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서서, 서로 옷과 기타를 주고받는다. 벤들라가 벤들라 목소리 역을 하는 배우에게 기타를 건네주면 노래가 시작된다. 공연 내내 벤들라는 수화로 얘기하고, 그 수화로 전달되는 대사를 목소리 역할의 배우가 연기하는 방식이다. 멜키어와 벤들라가 처음으로 서로의 몸을 경험하는 장면에서도, 벤들라의 목소리가 그들 가까이에 있다. 벤들라 역할을 하는 산드라 메이 프랑크의 목소리는 벤들라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낙태 시술을 받으러 들어가면서 비명을 지르는 장면에서 딱 한 번 나온다.
모리츠 역시 모리츠의 목소리(알렉스 보니엘로)가 청각장애 배우의 수화 대사를 연기하는데, 벤들라와 달리 모리츠는 첫 등장 신인 라틴어 수업 교실 장면에서 라틴어를 더듬더듬 어렵게 읽는 것을 보여준다. 모리츠의 첫 곡인 ‘Bitch Of Living’이 시작되면 무대 소품인 칠판 뒤로 모리츠의 목소리 역할을 하는 배우의 실루엣이 비치고, 그 앞에서 모리츠가 수화로 노래를 한다. 현대적인 의상을 입고 기타를 연주하는 모리츠의 목소리도 모리츠의 또 다른 자아처럼 모리츠 역의 대니얼 듀랜트와 서로를 인지하며 연기한다. 그에 반해 오스틴 맥킨지가 연기하는 멜키어는 수화와 대사가 가능한, 말하자면 이중 언어 구사가 가능한 인물로 그려진다. ‘의사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청각장애인과 비청각장애인의 세상을 소통시킬 수 있는 존재로 그리려 한 의도가 보인다. 



아쉬움을 남기는 연출

지난 2003년 <빅 리버>에서 주인공 톰 소여를 맡았던 마이클 아든이 이번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연출을 맡았는데, 그의 연출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아든의 연출이 가장 효과적이었던 장면들은 앙상블 없이 한두 명의 주조연에게 집중되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여러 앙상블 배우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에, 앙상블 장면에서 연출의 한계가 도드라졌다. 어떤 역할은 두 명의 배우가 함께 연기하기 때문에,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배우들이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배우들이 목소리와 손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앙상블이 함께하는 장면은 무대 위에서 들리는 ‘언어’가 너무 많아 어딘지 부산스럽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 대표 장면 ‘Totally Fucked’는 앙상블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 에너지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 또한 암전으로 장면 전환이 이뤄지는 신이 많아서 노래 종료 후 암전과 함께 극의 흐름이 끊기는 것도 작품을 보면서 아쉬운 점의 하나였다. 어쩌면 청각장애 관객을 위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큰 드럼 소리는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좋은 의도의 작품은 좋은 작품일까

필자는 9월 27일 정식 개막에 앞서 올라간 프리뷰 이틀째 공연을 봤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다만 브로드웨이의 모든 공연들이 그렇듯이 프리뷰 공연에서 수정, 보완되는 부분이 많으리라 예측해 본다. LA에서 시작해 뉴욕으로 오면서 새롭게 캐스팅한 배우들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덕션이 완성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작품에 내재된 드라마적인 결함에 있을 수 있다. 마이클 아든이 『플레이 빌』에 쓴 연출의 말처럼,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시간이나 장소적인 배경이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로 등장인물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징성과 대표성을 지닌 우화적인 존재들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작품의 개념적인 성격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시적인 언어로 표현했던 작품의 이야기가 수화로 번역이 되었을 때 개념이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것이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 프레이밍 장치를 넣은 연출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커튼이 올라가 있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흰색 속옷을 입고 있다가 이야기가 시작될 즈음에 각자 의상을 입는다. 그리고 공연이 마무리되면 무대 뒤 벽의 중간이 열리면서 마치 에덴동산 또는 미지의 파라다이스가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공연 의상을 벗고 속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엔딩곡을 부르며 그 공간으로 사라진다. 마치 천사들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두운 무대에 남은 어른들이 닫힌 문을 바라보는 것으로 공연이 끝난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지닌 이야기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고 작품에 내재한 한계를 극복하려 한 마이클 아든의 노력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브로드웨이에 새로 올라간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다소 아쉬운 점들은 있지만, 이번 공연이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번 공연 덕분에 처음으로 브로드웨이 무대를 밟은 젊은 배우들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 같다. 올 하반기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선전을 기원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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