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오디션에 지원했는데, 일이 커졌어요!!!”
으레 ‘덜컥 붙어버렸다’는 표현이 나오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이 커졌어요!’라며 까르르 웃는다. 이런 맑고 밝은 에너지라니. 인터뷰 며칠 전 참관했던 연습 현장에서도 느꼈던 인상이다.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 속에 언급된 세 명의 아빠 후보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는 소피의 순수한 당돌함은 비단 소피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
박지연에게 2010년은 정말 원래 의미 그대로 ‘맘마미아!’를 외칠 만한 해였다. 지난해 1월 오디션에서 연출가인 폴 개링턴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이 맑고 투명한 음색과 영화 <맘마미아>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느낌을 가진 그를 소피로 일찌감치 점찍었고,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던 그는 1차, 2차를 거쳐 3차까지 올라가면서 ‘점점 커지는 일’에 당황 반, 기쁨 반이었다고 한다. “처음 봤던 오디션이었는데 용기를 얻었어요. 제가 춤을 너무 못 췄거든요. 근데 연출가님이 와서 걱정하지 말고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고. 지금부터 더 열심히 해보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흰 도화지 같았던 신인 배우는 연출가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5월 경기도 이천 공연을 시작으로 지난 4월까지 1년간 23개 도시에서 공연을 마치고 이제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도서관 간다 하곤 ‘방방(트램폴린)’을 타러 다니던 개구쟁이 소녀 박지연은 언니와 늘 방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고, 라디오 진행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녹음하곤 했다. 알 수 없는 사이 빠져든 음악에 대한 열망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의 보컬을 하면서 더욱 깊어졌고, 결국 연극영화과 입시를 결심하게 했다. 대학에 들어가 도서관에서 처음 <지킬 앤 하이드> 영상을 보며 앙상블들의 합창과 루시 역에 매료되었다는 그는 1학년 2학기 ‘제작 실습’ 수업에서 공연한 <레 미제라블>에서 모든 회차에 설 수 있었던 앙상블을 맡아 매일 무대에 오르면서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 없다고. 이렇게 뮤지컬에 차근차근 한발을 내딛고 있던 그를 <맘마미아> 오디션으로 이끈 것은 현재 같은 공연에서 페퍼 역을 맡고 있는 학교 선배 이동재다. 실용음악과 수업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오디션을 권했던 것.
첫 공연 날, 첫 노래를 부르고 극 중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데,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순간을 바로 얼마 전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 영락없는 신인의 모습이지만, 150회 이상 무대에 선 배우로서의 깊은 생각과 여유로움도 느껴진다. “소피는 이미 몇 년간 아담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저도 처음엔 그렇게 해보려고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연출가님은 ‘소피는 스무 살이야. 결혼도 할 거고. 어린애가 아니란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후엔 나 자신이 소피라 생각하면서 내 안에서 필요 없는 것을 빼내며 인물을 만들어갔어요. 그때 연출가님이 소피에 대해 한 단어로 지칭한 것은 ‘몽상가’였죠. 마침 부산, 울산 공연 때 숙소가 부산이라 해운대 바다 앞을 보며 생각할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 바다를 바라보며 ‘여기가 섬이고, 내가 소피라면…. 정말 소피가 이런 바닷가에 앉아서 아빠를 생각했겠구나’ 생각하게 됐고, 동시에 ‘여기에 있는 내가 소피구나’를 깨닫게 됐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녀가 소피가 되어 뮤지컬에 입문하기까진 가족의 영향도 컸다. “엄마, 아빠 모두 음악을 좋아하시고, 언니가 노래를 잘했어요.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 밴드 공연이 있으면 늘 와주셨고, 이과생이었던 제가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꾸겠다 했을 때도 ‘네가 원한다면!’이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어요. 지금도 물론 무척 좋아하시고요.” 게다가 처음 공연을 보러 오신 아버지가 생각지 못한 딸의 키스신에 당황하시며 말씀은 못하시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하셨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잊지 못할 에피소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소피가 아빠를 찾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됐어요. 아빠의 사랑이 얼마나 좋은 건지 느끼게 됐으니까요.(웃음)”
스물넷, 앞으로 자신의 나이에 맞게 차근차근, 오래도록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을 밝힌 박지연은 한동안 지혜롭고도 사랑스러운, 그리고 속 깊은 소피로 관객과 오래도록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소피 역을 하면서 ‘용기’란 단어를 굉장히 많이 들었고, 스스로도 많이 생각했어요. 소피는 굉장히 용기 있는 아이거든요. 그에 비하면 전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일을 저지르는 건 좀 비슷해요. 용기는 없는데, 아~ 모르겠다! 하고 해버리는 점에서 말이에요.(웃음)” 바라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피와 박지연은 동일인물인 듯 보였다. 1년을 소피로 지낸 사이 이미 둘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서로 닮아버린 느낌이랄까. ‘하나의 캐릭터 안에서 여러 가지 색깔을 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첫 발자국을 기대해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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