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제작사마다 라인업이 발표되고 온갖 기대와 전망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문득 이런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10년 전, 20년 전 뮤지컬 시장은 어떤 사건으로 떠들썩했을까? 그래서 찾아보았다. 그때 그 시절 화제가 된 작품. 타임머신의 시계바늘을 맞출 곳은 유명 뮤지컬이 정식으로 수입되고 기업들도 뮤지컬 제작에 발 벗고 나섰던 1996년, 그리고 국내 최초 뮤지컬 전용극장 개관과 함께 일본 극단의 한국 진출로 시끄러웠던 2006년이다
1996
<블루 사이공> 02.01~03.10
문화예술관 서울 두레 / 극단 모시는사람들
09.25~10.03
문예회관 대극장 / 극단 모시는사람들 1996년 초연한 <블루 사이공>은 백상예술상, 연극 평론가가 뽑은 하반기 최우수 작품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작품성으로 주목받은 창작뮤지컬이다. 한 참전용사의 회상을 통해 베트남전의 실상을 그린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남녀 간의 사랑만 묘사한 것과 달리 주인공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주인공이 앓고 있는 고엽제 후유증 등 역사가 남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블루 사이공>은 이후 2000년·2002년·2004년 재연되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05.21~06.30
호암아트홀 / 삼성영상사업단, 트로이카
1996년은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며 국내 뮤지컬 시장의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했던 해다. 그 선두에 선 업체는 삼성영상사업단. 삼성영상사업단은 미국 뮤지컬 전문 제작사 ‘트로이카’와 <브로드웨이 42번가>를 공동 제작해, 뮤지컬 최초의 한미 합작 사례를 남겼다. 서울과 뉴욕에서 동시 실시한 공개 오디션을 통해 한국 배우 30명과 브로드웨이 배우 5명이 선발되었고, 연출, 무대, 조명, 의상 등 14개 분야 미국 제작진이 한국을 찾아 국내 스태프에게 노하우를 전수했다. 당시 여주인공 페기 역에 무명 코러스 출신 임선애가 발탁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총 제작비 16억 원이투자된 이 작품은 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규모 해외 합작의 포문을 열었다.
<애랑과 배비장> 01.31~02.04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서울예술단
한국에서 본격적인 뮤지컬의 시작을 알린 작품은 1966년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다. 고전 소설 『배비장전』을 각색한 이 작품은 배비장이 제주 기생 애랑의 꼬임에 넘어가 망신을 당하는 이야기. 당시 패티 김이 주연한 공연은 고액의 암표가 나돌 만큼 대성황을 이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6년, 창단 10주년을 맞은 서울예술단이 <살짜기 옵서예>를 <애랑과 배비장>이란 제목으로 다시 무대에 올렸다. 늘어난 해외 수입 뮤지컬에 맞서 우리 정서가 살아있는 무대로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포부였다. 투명 무대막, 물이 흐르는 폭포수 등 혁신적인 무대미술이 돋보였던 이 공연은 실제로 9회 동안 1만 6천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초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고, 같은 해 미국과 일본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살짜기 옵서예>는 이후 2013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개관작으로 다시 한 번 재연되었다.
<레 미제라블> 06.27~07.28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CMI
그렇다면 1996년 가장 많은 관객을 유치한 공연은 무엇일까? 답은 <레 미제라블>의 첫 내한 공연이다. 공연기획사 CMI가 36억 원을 들여 수입한 <레 미제라블>은 총 41회 공연에 7만 2천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국내 뮤지컬 사상 최다 관객수를 기록했다. 이 같은 해외 합작, 직수입 공연의 유행은 유명 뮤지컬을 국내에 소개하고 선진 기술을 인수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대규모 공연이 계속될 경우 국내 단체의 창작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레 미제라블> 공연 당시 한국뮤지컬협회 김성원 이사장은 “국내 뮤지컬이 거대 자본으로 치장한 해외 뮤지컬에 밀려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며 수입업자들에게 “두 편을 수입한 후에 반드시 한 편의 창작뮤지컬을 제작할 것, 컨소시엄을 형성해 뮤지컬 전용극장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2006
<노트르담 드 파리> 01.18~02.26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NDPK
<노트르담 드 파리>는 2005년 첫 내한 공연과 2006년 앙코르 공연을 통해 19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한국에 프랑스 뮤지컬 열풍을 몰고 왔다.2006년 한 해에만 <벽을 뚫는 남자>(02.28~04.02 라이선스), <찬스>(03.03~04.09 라이선스), <십계>(04.11~05.09 내한), <돈 주앙>(11.30~12.17 내한) 같은 프랑스 뮤지컬이 줄줄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작품은 없었다.특히 프랑스 3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대작 <십계>는 초연 오리지널 배우와 스태프진이 그대로 내한해 기대를 모았으나 아쉬운 흥행 성적을 남겼다. 이듬해인 2007년에는 <로미오 앤 줄리엣>이 최초로 내한하고, <노트르담 드 파리>의 라이선스 공연이 올라가면서 프랑스 뮤지컬의 열풍을 이어갔다.
<겨울연가> 02.06~09(프리뷰 01.07~13)
뮤지컬 규모가 커지면서 제작사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겨울연가>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공연을 거치지 않고 일본에서 초연을 올렸다. 드라마 감독 윤석호가 직접 제작하고, 임태경, 고영빈 등이 출연한 공연은 삿포로 초연에 이어 도쿄, 오사카에서 순회 공연을 이어갔다. 창작뮤지컬이 아닌 라이선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3월 13~19일 도쿄 유포트 극장, 22~24일 오사카 NHK홀)가 일본에 진출한 것도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공연에 출연했던 조승우와 류정한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현지 관객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라이온 킹> 06.13~2007.10.28
샤롯데씨어터 / 시키씨어터컴퍼니, 샤롯데극장
2006년의 가장 큰 이슈는 일본 극단 시키의 한국 진출이었다. 그 해 개관한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 샤롯데씨어터가 개관작으로 시키의 <라이온 킹>을 선정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것. 장기 공연이 가능한 전용극장의 혜택이 일본 극단에게 돌아가자 국내 제작사들은 ‘문화 잠식’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2006년 2월 새롭게 결성된 한국뮤지컬협회는 ‘시키 한국 진출 반대 성명’을 내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고, 결국 시키는 1년 만에 36억 원을 적자를 남긴 채 공연을 조기 폐막해야 했다. 한국뮤지컬협회는 이밖에도 2006년 제1회 대한민국 뮤지컬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국내 뮤지컬 발전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삼거리 극장> 11.23 개봉
엘제이필름, 프라임엔터테인먼트
2006년 최초의 국산 뮤지컬 영화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영상 매체와 뮤지컬을 결합하는 시도가 이전에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06년 개봉한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처럼 스스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나선 작품은 처음이었다. 특히 <삼거리 극장>은 노래와 춤이 극 전반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통적인 뮤지컬 형식을 취해 여타 작품과 확연히 차별화되었다. <삼거리 극장>은 밤마다 유령들이 춤과 노래의 향연을 펼치는 기묘한 극장 이야기로, 각본과 감독을 맡은 전계수는 이 작품으로 제 4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신인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두 편의 영화 모두 흥행이 부진하면서 이후 뮤지컬 영화의 부흥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8호 2016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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