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이 일인다역을 맡아 제작한 <치어걸을 찾아서>가 3월부터 홍대에서 대학로로 공연장을 옮겨 새 출발을 시작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이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로 입성하는 꿈 같은 일이다. 뮤지컬 배우이자 대중 음악계에 해적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외치는 인디 레이블 ‘해적’의 선장 송용진은 어쩌다 이런 뮤지컬을 만들게 됐을까. 왜 하필이면 ‘치어걸’을 찾는 건지, 또 왜 ‘이상한’ 뮤지컬이라고 부르는지, 송용진에게 물었다.
스태프 회의 때문에 인터뷰 시간을 늦췄던 송용진은 카페에 먼저 도착해 블루베리 버블티를 마시고 있었다. 세 편의 공연 일정(출연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과 정규 앨범 작업까지, 요즈음 세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며 시작부터 볼 멘 소리를 했지만 정작 그의 얼굴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오늘 회의를 하다가 아이디어가 ‘삥’ 떠올랐어요. 해적선에서 벌어질 만한 일은 다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부분이 있었던 거죠. 에피소드를 하나 더 추가하려고요. 내용은 비밀이에요!”
송용진은 자신이 연출한 ‘이상한’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에 대해 ‘컬트’와 ‘B급 스타일’, 이 두 단어를 질리도록 반복해 가며 시종일관 달뜬 마음으로,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인디 레이블 해적(음악창작단 해적은 2009년 그가 새롭게 벌인 일 중 하나다)에 소속된 뮤지션들의 음악을 엮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 의상과 소품 등등의 모든 제작을 맡아 탄생시킨 <치어걸을 찾아서>는 ‘B급 스타일의 새로운 뮤지컬을 꿈꿨던’ 그가 내놓은 첫 번째 결과물이다.
뮤지컬이 자신이 하는 가장 상업적인 활동이라고 말하는 데뷔 12년 차의 뮤지컬 배우이자 로커 송용진. 그가 뮤지컬 제작의 꿈을 갖게 된 건 2년 전 창작뮤지컬 <온 에어>에 출연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드라마틱한 계기는 없어요. 전 그냥 원체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에요. 뮤지컬을 오래 하다 보니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겠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로맨틱 코미디는 너무 뻔하잖아요. 새로운 걸 만들고 싶었어요.”
2009년 5월의 봄날, 송용진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KT&G 상상마당이 인디 밴드들에게 34일간 무료로 대관을 제공해준 것이다. 그게 <치어걸을 찾아서>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공연 기회를 얻은 송용진이 해적의 소속 밴드 딕펑스와 합동 콘서트를 기획하던 중에 좀 더 재밌는 공연을 구상하다 ‘우리 음악을 엮어서 뮤지컬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떠올리게 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치어걸을 찾아서>다.
“뮤지컬을 제작해보고 싶은데 이 기회를 전초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팀원들이 모두 재밌겠다고 하더라고요. 딕펑스가 <록키 호러 쇼> 밴드도 했었거든요. 대본도 쓰고 편곡도 다 할 테니까 시간을 달라고 했죠. 근데 그게 공연 2주 전이었어요.” 발상은 간단했다. 레이블 이름이 해적이니까 해적과 관련이 있어야 했고, 딕펑스의 앨범 타이틀곡이 ‘치어걸’이었으며, 밖에는 신종 독감이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해적, 치어걸, 신종 독감… 신종 독감, 치어걸, 해적… 아하! 이렇게 된 거죠. 신종 독감으로 지구의 모든 여자가 전멸해 치어걸들이 산다는 원더랜드로 모험을 떠나는 해적선!”
<록키 호러 픽처 쇼>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컬트물에 열광하는 그는 자신의 취향대로 정통 뮤지컬보다는 <헤드윅>, <록키 호러 쇼>, <펌프 보이즈> 같은 공연에 출연해왔고 이때의 경험들이 이 작품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이지나 선생님(앞서 말한 세 작품 다 그녀의 연출작이다)은 공연을 할 때 원하는 게 분명하시거든요. 그런 것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공연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어떻게 풀어갈지 그림만 잘 그리면 연출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쉽진 않지만.”
그는 이 작품을 풀어가는데 있어 잘 짜여진 방식 대신 거칠게 가는 스타일을 택했다. 컬트적인 특성을 살리기 위해 관객들의 드레스 코드도 정하고 공연 중에 욕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실컷 욕을 할 수 있는 이른 바 ‘욕 주문 타임’과 ‘해피 오르가슴 댄스’ 같은 코너도 준비했다. 상상마당에서의 공연은 관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당일 공연을 보러온 롤링홀 대표에게 홍대 롤링홀에서 공연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럼 부담 없이 공연이 없는 월요일에 하자고 했어요. 어느 순간 관객이 오지 않으면 하지 말자고 그렇게 시작했죠. 하루는 송한샘 대표(쇼팩 대표)가 공연을 보러 와서는 이거 대학로에서 합시다! 그러시는 거예요. 이렇게 금방 그런 기회가 올 줄 몰랐어요.”
하지만 이번에 그가 도전해야 하는 무대는 대한민국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하던 것을 매일 매일 공연해야 한다. 송용진은 이번 공연에 대해 의상도 제작하고 무대적인 요소를 보완할 예정이지만 공연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어걸을 찾아서>를 뮤지컬로 분류하기에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부족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답했다.
“이건 어차피 콘서트형으로 기획한 공연이니까 꼭 드라마가 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펌프 보이즈>도 그렇잖아요? 그리고 음악에는 정말 자신 있어요. 노래가 좋은데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첨가했으니 얼마나 재밌겠어요. 만날 뻔한 걸로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보다 억만 배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엔.” 도대체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되묻고 싶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가 확고하게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건, 누구나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대단히 새롭진 않겠지만 최소한 국내에서는 신선한 무대를 소개하고 싶었다”는 그가 이번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 역시 그런 신선함이다.
“상업적 성공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 공연을 통해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그저 재밌고 자유롭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음, 그게 메시지일 수도 있겠네요. 사실 대의명분은 이거예요. 관객들에게는 즐거움을, 공연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을 환기시켜주고 싶어요.” 그리고 웃으면서 덧붙였다. “뮤지컬 팬들은 이게 무슨 뮤지컬야, 하고 욕할지도 모르죠. 전 그걸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별난 애가 이런 짓도 하는구나 그렇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8호 201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