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서울예술단 가무극의 진화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공연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re)이다. 이머시브 공연이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작품을 완성하는 공연을 뜻한다. 지난 2011년 뉴욕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도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는 <슬립 노 모어>가 대표적이다. 이 공연은 관객이 5층짜리 호텔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맥베스』와 관련된 춤, 상황극, 설치예술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국내에서도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천사-유보된 제목> 등이 기존의 무대, 관객의 개념을 해체하는 색다른 공연을 선보였다.
전통무용을 접목한 창작가무극으로 한국형 뮤지컬 양식을 탐색해 온 서울예술단도 이 새로운 흐름에 합류한다. 9월 초연하는 <꾿빠이, 이상>은 서울예술단이 공공예술단체로서 예술적 실험에 앞장선다는 취지로 기획한 이머시브 공연이다. 단체 역사상 가장 과감하고 혁신적인 공연을 목표로 서울예술단이 선택한 소재는 개성 있는 발상과 표현으로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 시인 이상. 김연수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꾿빠이, 이상>은 이상이 남겼다는 ‘데드마스크’의 진위를 중심에 놓고 스물일곱에 요절한 그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극은 이상이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뜨며 시작한다. 이상은 자신을 둘러싼 채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자신이 누구이며 왜 여기 누워 있는지 궁금해한다. 답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헤매던 그는 평생 이상의 삶을 흉내내며 살아온 서혁민, 평생 이상의 글을 연구하며 살아온 피터주 등 자신과 관련된 수많은 인물을 만난다. 하지만 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상은 점점 더 자신의 존재가 모호해짐을 느낀다.
이상의 다양한 면모를 담은 이야기는 무대와 객석의 구조 변형이 자유로운 블랙박스 극장에서 펼쳐진다. 배우들은 공연장 곳곳에서 음악에 맞춰 춤과 연기를 펼치고, 관객은 계단형 구조의 공연장에 자유롭게 자리를 잡아 다양한 각도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이 야심찬 프로젝트를 위해 공연계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창작진이 한데 뭉쳤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연출 오세혁이 각색과 작사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음악감독 김성수가 작곡과 편곡을, <록키 호러 쇼>의 연출 오루피나가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 동아연극상, 한국뮤지컬대상,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무대상을 휩쓴 무대디자이너 여신동, 벨기에 세드라베 무용단에서 활동했던 무용수 겸 안무가 예효승이 힘을 합쳐 신선한 예술적 체험을 안겨줄 예정이다.
탄탄한 무용 실력을 자랑하는 서울예술단 단원들의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춤은 물론 노래와 연기 실력까지 겸비한 서울예술단의 대표 단원 최정수와 신예 김용한, 그리고 2007년 <바람의 나라> 이후 10년 만에 서울예술단과 조우한 김호영이 객원으로 출연해 이상이라는 모호한 인물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표현한다. 이 밖에도 이상과 관련된 실존 인물 금홍, 변동림, 박태원, 김유정 등을 단원들이 연기한다.
9월 21~30일
CKL스테이지
02-523-0986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8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