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정재진
미디어 샤머니스트를 꿈꾸며
정재진은 2006년 <바람의 나라>로 뮤지컬계에 입문, 2012년 <서편제>로 영상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잃어버린 얼굴 1895>, <푸른 눈 박연>, <그날들>, <아리랑>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영상디자이너로서의 존재감을 확고히 다졌다. 수작업을 바탕으로 한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 매체에 조화롭게 풀어내는 것이 그만의 색깔. <이른 봄 늦은 겨울>, <헨리 4세-왕자와 폴스타프>에서는 영상과 무대 디자인을 겸하며 특유의 무대 감각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전인권 콘서트 연출과 박노수 미술관 기념 전시의 공간과 영상 디자인을 아우르며,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다재다능한 미디어 아티스트다.
<서편제> 영상 디자인 CONCEPT!
수작업으로 완성한 무대미술
하얀 한지 장막으로 이루어진 <서편제> 무대. 한지는 색이 없기 때문에 영상은 무대의 여백을 채우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 전통을 소재로 한 공연들은 일반적으로 수묵담채화를 가져와 배경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회화를 저공하다 보니 영상이 뻔한 방식으로 쓰이는 건 싫었다. 어떻게 하면 진부하지 않을까? 익숙한 대로 표현하는 기존의 관념을 깨트리고 싶었다. 전통 그래도 가져오기보단 상징을 뽑아내는 것이 재연의 의미를 더해줄 거라 생각했다. 고민 끝에 모던한 스타일의 한국화를 떠올렸다. 그래서 상명대 이세정 교수님께 수묵화를 부탁했다. 2주 동안 교수님이 300장 정도의 그림을 그리고, 나는 이것으로 영상 작업을 했다. 서편제의 영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이미지들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영상에 담긴 한의 정서
<서편제> 영상을 만들며 가장 집중한 것은 ‘한의 정서’였다. ‘소리수련’ 장면의 경우 긴 시간의 흐름을 계절의 변화가 담긴 수묵화로 보여주었다. 계절당 30초 분량의 영상을 만들었는데,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데 며칠을 꼬박 보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그려진 꽃이나 갈대를 하나씩 일일이 3D로 만들어 영상에 담어야 했기 때문이다. 송화의 외로움과 고행은 수묵화의 거친 느낌을 담은 갈대밭과 흔들리는 바람 소리와 폭포 소리에 어울리는 흑백 수묵화로 표현했다. ‘에필로그’ 장면의 경우 동호와 송화가 ‘심청가’를 부르며 막이 닫히면 모든 것이 피어오르듯 수묵화의 꽃이 만발한다. 극 중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 되도록, 절제된 색채감으로 통일하다가 에필로그에서 모든 컬러들을 조합했다. 또한 영상을 자세히 보면 꽃잎 하나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모두 정성스레 그린 한국화에서 하나씩 따와 3D로 만든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더 쉽고 빨리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인위적인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작품의 영상은 담백한 느낌으로 온 힘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INTERVIEW
현대미술과 무용 분야에서 활약하다가 2006년 <바람의 나라>로 뮤지컬에 처음 입문했다. 어떤 계기였나?
대학 전공이 서양화, 부전공이 영화였고, 대학원에서 테크놀로지를 공부했다. 그러다 순간 공연되고 사라지는 무대예술의 특성에 매력을 느껴 무용 쪽에서부터 무대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5년에는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인터랙티브 무용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신체 움직임, 실시간 변화 등을 연구하는 모임 활동을 했는데, 그 인맥으로 <바람의 나라>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첫 뮤지컬 작업은 어땠나?
이전에는 주로 인터랙티브 공연을 했다. 사전 준비 없이 무용수의 움직임에 맞춰 실시간으로 영상을 창작하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생방송 체질이다. 반면 뮤지컬은 큐에 따라 미리 약속된 영상 소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바람의 나라>는 약 200개의 영상 소스가 사용되었다. 또한 인터랙티브 무용이 무용수와 영상 중심이었다면, 뮤지컬은 온전히 배우에게 초점을 둬야 했고, 또 합을 맞춰야 할 다른 요소들이 많았다. 뮤지컬 영상은 무대 모든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2012년 <서편제>는 영상디자이너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서편제>가 터닝 포인트다. 그때부터 확 주목을 받았으니까. 당시 뮤지컬 영상은 대부분 배경으로 쓰였기 때문에, <서편제>처럼 영상을 무대미술로 활용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특별한 작품이다. 2010년 초연 이후 2년 만의 재연에 새롭게 합류하다 보니,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커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올해 재연을 앞두고 다시 <서편제>를 마주했는데, 지난 5년 동안 너무 테크놀로지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영상을 남발하는 추세인데, <서편제>는 중용의 미를 잘 지키고 있었다. 새삼 반성하게 됐다.
<서편제>를 비롯해 <잃어버린 얼굴 1895>, <푸른 눈 박연> 등 주요 작품이 수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서편제> 이후 수작업 느낌이 나는 영상을 많이 만들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당시의 혼란한 느낌을 거친 선으로 표현했고, <푸른 눈 박연>은 렘브란트 에칭 화법의 스케치로 하멜이 그렸을 법한 동판화 느낌을 주었다. 손으로 그린 원화를 3D로 만드는 작업이 흔치 않다 보니 그게 정재진 스타일이 된 것 같다. 종이 위에 그린 그림들은 컴퓨터 그래픽과 달리 하나하나 우연성을 갖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 영상이라는 디지털 매체에도 아날로그 감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관객들에게 공연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영상 디자인을 할 때 영감을 받거나 참고하는 대상이 있나?
색과 대칭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데, 특히 민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민화라면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모던하다. 칸딘스키, 몬드리안의 느낌이 난다. <아리랑>을 작업할 때도 민화를 많이 참고했다. 또한 보자기 전시도 많이 보는데, 그 격자무늬가 아주 모던하다. 색깔 배치에서도 오방색만의 신비로운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전시를 통해 많은 것을 얻는다.
최근 무대에서 흥미롭게 본 영상 디자인은 뭔가?
영국 영상 연출 그룹 1927의 작품을 좋아해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이 그룹의 특색은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지 않고 한 장 한 장 스케치를 이어 붙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 빨리 작업을 해내야 하지만, 이달 내한하는 오페라 <마술피리>는 작업을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스케치를 하면 매 작품 느낌이 똑같을 수도 있지만, 1927 그룹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아날로그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계속 새로운 표현을 하려는 점이 인상적이고 자극이 된다.
영상디자이너의 매력은 뭔가?
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무대미술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판타지와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한히 열려 있다. 때문에 미디어란 도구를 활용한 예술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다. 또한 관객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더욱 새로운 환상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 영상 작업은 흔히 첨단 디지털의 총체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그 안에 아날로그적인 질감이나 정서, 성격을 담아내는 것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결국은 ‘인간’이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하는 거다. 공연이란 인간의 희로애락만이 아닌 삶의 진선미를 담아내는 융복합 장르라 생각한다. 그런 진선미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더 나은 결과물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이자 사명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게 미디어의 속성이다. 현대판 미디어 샤머니스트로서, 세상을 잇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