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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남윤호 [NO.172]

글 |배경희 사진제공 |RADA 2018-01-30 3,873

끝없는 자기 계발자

남윤호   


 


지난 2017년 6월 연극 <보도지침>을 마친 후 잠시 한국을 떠난다는 깜짝 소식을 전한 남윤호. 영국의 로열 홀러웨이 대학과 미국의 UCLA 대학원 수료라는 화려한 배움의 이력을 지닌 그가 왕립연극학교에서 다시 배움의 길에 도전한다는 게 그 이유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왕립연극학교는 1904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곳으로, 지금까지 비비언 리, 앤서니 홉킨스, 톰 히들스턴 등 무수한 명배우를 배출한 명문. 2012년 데뷔 이래 차근히 스펙트럼을 넓혀온 남윤호가 재정비를 위해 떠난 곳에서 어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지 런던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가을 한국 배우 최초로 왕립연극학교(Royal Academy of Dramatic Art, 이하 RADA)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화제를 모았죠. 진학 준비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우선 혹시 모를 오해를 위해 분명히 해두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RADA의 학부, 석사 과정을 통틀어 저희 학교에 들어간 한국인이 제가 처음은 아니에요. RADA에는 배우 양성 과정뿐 아니라 테크니컬 시어터 아츠라고 무대 미술이나 의상, 조명 등 공연 예술 전반에 관련된 코스가 있거든요. 거기 다닌 한국분들은 예전에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다만, 배우로서 연기 공부를 위해 석사 과정 MA 시어터 랩(MA Theatre Lab)에 들어온 건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영국 석사 과정은 보통 9월에 시작되고, 일 년 전에 원서 접수를 하거든요. 제가 원서를 썼던 게 재작년 10월이었는데, 그 시기 즈음에 스스로 정체되고 있단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해 겨울에 연극 <페리클리스>를 하면서 거기서 벗어나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당시 부상 문제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여러 일을 겪으면서 현재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제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싶었죠.


이십 대 끝자락에 데뷔를 했으니까 시작이 빨랐던 편은 아닌데, 공백을 갖는 데에 대한 망설임은 없었어요? 

그런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볼까 싶었어요. 사실 활동 초반엔 빨리 뭔가를 이루고 싶단 조바심이 있었거든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캐스팅은 안 되니까 여러모로 불안했죠.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 앞을 멀리 내다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직업에는 정년이라는 게 없잖아요. 길게 따져보면 여기서 보낼 일 년이 저한테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될 것 같진 않겠다 싶었죠. 지금은 일 년 후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단 마음이에요. 이게 다 저라는 배우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RADA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엔 RADA와 LAMDA(런던 아카데미 오브 뮤직 앤드 드라마틱 아트), 로열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드 드라마, 이렇게 세 군데에 지원해 볼 생각이었어요. 로열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드 드라마는 로렌스 올리비에나 주디 덴치처럼 걸출한 배우들을 배출한 곳이고, LAMDA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온 곳으로 잘 알려졌죠. RADA 출신으로 유명한 배우 중엔 앤서니 홉킨스가 있고요. 셋 중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건 RADA였는데, 워낙에 전통이 깊은 학교인 데다 커리큘럼이 제가 접해 보지 못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있어 흥미로웠거든요. 사실 서류를 쓸 때만 해도 결과에 큰 기대는 안 했어요.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자가 몰리는 치열한 곳이니까요. 그래서 오디션 콜을 받은 것만으로도 얼떨떨했죠.


입학 오디션은 어떻게 치러졌나요?

에세이 시험, 워크숍 오디션, 개별 인터뷰, 이렇게 세 가지 테스트를 거쳐요. 워크숍 오디션에 대해선 세 시간가량 진행된다는 기본 정보만 주어지기 때문에 거의 현장에서 상황을 맞닥뜨려야 하죠. 사전에 공지가 된 건 고전극과 현대극에서 독백을 하나씩 준비해 오라는 거였어요. 고전극은 예전에 UCLA 대학원에 들어갈 때 <리어왕> 에드먼드를 했던 기억이 있어서 쉽게 정했는데, 현대극을 뭐로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내 장점을 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동양인으로서 잘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고른 게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양순 독백이었어요. 사실 예전에 외국에서 공부할 땐 동양인이라는 프레임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젠 저의 그런 정체성을 이점으로 삼아보자 싶어요.   


수업은 어때요? RADA 수업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저희 과 이름 ‘시어터 랩’을 한국어로 바꾸면 극 연구소 정도가 될 텐데,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실험적인 수업들이 많아요.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완벽한 연기를 가르친다기보단, 학생들 개개인에게 많은 부분을 열어두고 수업이 진행되죠. 물론 스타니슬랍스키 연기 이론 같은 정통 이론도 배우지만요. 저희 선생님들이 자주 쓰시는 말 중의 하나가 프랙티셔너(Practitioner)인데, 기술을 닦아 자신 고유의 것을 만들어가는 게 저희 수업의 목표라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론 한국에서 활동할 때 배우로서 몸에 밴 습관들을 떨치고 싶단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 때문에 정체기에 있다고 느꼈고요. 예를 들면, 무대 위에서 어떤 동작을 해야 할 때 저도 모르게 몸에 익숙한 대로 움직이게 되는 거예요. 대사를 할 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런 습관을 거둬내는 작업이라 새롭게 환기되는 기분이에요.




한 학기를 마친 소감은 어떤가요? 특별히 인상에 남은 수업이 있나요?

학기 마지막 발표로 드래그 퀸 쇼를 한 게 기억에 남아요. 정식 코스에 포함된 과정은 아니고 별도로 주어진 과제 같은 거였는데, 이런 발표를 하기 시작한 게 올해로 삼년째래요. 각자 자신의 드래그 퀸 또는 드래그 킹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곡 선정부터 음악 편집, 안무까지 직접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쉽진 않았지만, 무척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준비 과정에서 쉽게 풀린다면 그건 길이 아닐 수 있다고, 자신과 타협해서 쉬운 길만 가려 하면 안 된다고요. 단순히 예쁜 여장 쇼를 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가장 개인적인 부분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을 통해 많은 걸 느꼈죠. 자신 안의 벽을 깨고 부끄럼 없이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이런 도전 과제를 준 게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남은 학기 동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요?

일단, 학기 끝에 올리는 졸업 공연까지 잘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저희 졸업 공연은 학생들끼리 주제를 선정해서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 하는데, 일반 대중에게도 티켓을 판매해요. 그래서 무엇보다 그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으면 하죠.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새로운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이번 석사 과정 인원이 남자 아홉, 여자 아홉, 이렇게 열여덟 명인데, 미국, 프랑스, 그리스, 페루 등 여러 나라 학생들이 섞여 있거든요. 영국 친구들 또한 런던뿐만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고요. 다들 입학 규정상 3년 이상의 활동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라 배울 게 참 많아요. 그 외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쓰자는 게 저의 가장 큰 목표예요. 런던에 있는 동안 제가 흡수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제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마음이죠. 앞으로 어떤 일 년을 보내게 될지, 그리고 일 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스스로도 정말 기대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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