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에 던지는 세 번째 출사표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는 2009년 <드림걸즈>부터 꾸준히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와 2015년 <닥터 지바고>의 리드 프로듀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흥행이 좋지 않았다. 두 번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타이타닉>으로 다시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토니상을 받는 게 꿈이라고 말해 왔다. 예전에 그 말이 단순히 꿈의 표현으로 다가왔다면, 근래에 그 말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브로드웨이로 향하는 <타이타닉>
이번 <타이타닉> 한국 공연은 브로드웨이 무대를 겨냥하고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계획된 것인가?
2008년에 모리 예스톤의 <나인>을 제작했다. 그의 대표작이 <타이타닉>이라 작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에릭 셰퍼(2016년 오디컴퍼니가 제작한 <스위니 토드> 국내 공연 연출) 워싱턴의 작은 극장에서 <타이타닉>을 올리는데 와서 봐달라고 했다. 미리 대본과 음악을 열심히 보고 가서 봤다. 내가 먼저 브로드웨이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그날 발전 방향에 대해 두세 시간은 이야기한 것 같다.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권을 확보하는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을 올린다는 것은 새로운 창작 한 편을 올리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혜택도 크다. 물론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별도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리바이벌 프로덕션만의 저작권이 생긴다. 이미 <타이타닉> 재공연을 시도하려는 미국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발전 방향을 명료하게 제시했고, 브로드웨이에서 두 작품을 올린 크레디트가 있다 보니 원작사 측에서 우리 손을 들어 주었다. 모리 예스톤이 “더 발전적인 공연으로 브로드웨이에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나는 당연히 더 발전시켜 올릴 생각이었고 그러겠다고 했다.
에릭 셰퍼가 워싱턴 시그니처 시어터에 올린 공연과 국내 공연은 어떤 차이가 있나?
워싱턴의 극장은 프로시니엄 극장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블랙박스 형태의 작은 극장이다. 한국 무대를 만들기 전에 브로드웨이에서 올릴 만한 후보 극장들을 답사했다. 이번 샤롯데시어터 무대는 미국 공연을 위해 프로시니엄 극장에 맞춘 디자인이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것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만든 버전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도전할 공연은 지금 국내에서 선보인 공연과 차이가 있나?
미국에 가면 조금씩 수정하겠지만 기본적인 디자인은 유지된다. 음향이나 조명 디자인은 변할 것이다. 특히 조명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원 세트 무대인데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무대의 움직임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에릭과 대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본을 좀 더 발전시키고 싶은데 (원작자가 사망해서) 대리인에게 수정 승낙을 받아내는 과정이 어렵다. 그래도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발전시킬 생각이다.
브로드웨이에 공연되기까지 어떤 절차가 남았나?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 공연을 할 수 있는 권리는 확보해 놓았고, 현재 미국에 <타이타닉>을 위한 유한책임회사(LLC)를 설립했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올릴 때는 투자를 받고 자금을 집행할 유한책임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오픈런 시스템이기 때문에 언제 대관이 가능하다는 계획이 없다. 공연 중인 작품이 막을 내리면 순차적으로 대관해 주는데 <타이타닉>은 여러 극장의 차기작 리스트에 상당히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2018년 가을이나 2019년 토니 시즌에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브로드웨이 극장은 매출의 일부를 수익으로 받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은 작품에 대관 기회를 준다. 대관 리스트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극장 대관의 윤곽이 나오면 오디션을 보고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투자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함께하고 싶어 하는 미국의 프로듀서가 서너 명 된다. 중국 쪽도 참여하고 싶어 하는 팀이 있다. 투자는 사전 제작비만 모으면 된다. 사전 제작비에는 예비비라는 게 있는데, 프리뷰 할 동안의 비용이 여기에 포함된다. 리드 프로듀서 이외에 협력 프로듀서(Coproducer)의 중요한 역할이 투자금을 확보해 오는 일이다. 여러 명의 협력 프로듀서가 참여할 것이다. 미국 대 한국 자본 비율을 70대 30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타이타닉> 브로드웨이 공연의 사전 제작비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될까?
보통 요즘은 1,200만 불(약 130억 원) 이상이 든다. 1,600만 불까지도 드는데 우리는 리바이벌 프로덕션이기 때문에 950만 불(약 103억 원) 정도 예상한다. 사전 제작비가 그렇고 주간 비용(Weekly Cost)은 55만 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보통 주간 비용은 60만 불 정도 드는데 약간 낮은 수준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제작비를 생각하면 주간 80만 불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회당 1억 원 이상 팔아야 하는 셈인데 쉬운 일이 아니다.
2015년에 올린 <닥터 지바고>에 비하면 어느 수준인가?
<닥터 지바고>는 사전 판매로 35억 원어치를 팔았다. 사전 제작비가 약 1,400만 불 정도 됐다. 작품의 주간 비용이 65~68만 불이었는데 매주 50만 불 정도가 팔렸다. 딱 거기까지만 팔리고 그 이상으로 판매 수치가 올라가지 않더라. 브로드웨이는 아직도 뉴욕 타임스 리뷰의 영향력이 큰데 평이 좋지 않았다. 토니상 기간이었는데 노미네이트되지 못하면서 내가 먼저 내리자고 했다.
<타이타닉>은 국내에서 평가가 나뉘고 있다.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는 어떻게 평가될까?
한국 관객과 미국 관객의 차이가 있다. 이번 프로덕션은 기존 뮤지컬과는 달리 감정의 군더더기를 빼고 담백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이런 뮤지컬은 다양한 작품을 접한 미국 관객이 좀 더 잘 받아들일 것이다.
열린 시장, 브로드웨이
2009년 <드림걸즈> 리바이벌 공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꿈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국내 공연 환경 때문인가?
공연 일을 시작할 때 누구나 브로드웨이 무대 진출을 꿈꾸지 않나. 진짜 막연한 꿈이었다. 그러다 <드림걸즈>를 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브로드웨이에서 몇 작품의 협력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그런 경험이 쌓여 리드 프로듀서로 두 작품을 올릴 수 있었다. 네트워크가 생기면서 이제는 꿈이 좀 더 구체화됐다. 예전에는 온전히 꿈 때문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 공연 시장의 영향 때문이라도 해외 시장을 바라보게 된다. 브로드웨이는 관객의 60%가 관광객인 오픈런 시장이다. 한국은 제작비는 상승하는데 리미티드 런(Limited Run, 공연 일정을 정해 놓고 올리는 공연) 시장이다. 굉장히 힘든 시장이다. 큰 시장에서 작품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지만 성공하면 그만큼의 성과가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두 작품의 리드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받은 텃세 같은 것은 없었나?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그들이 이방인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그랬다. 내가 브로드웨이에서 작업할 수 있었던 힘은 내 주위의 좋은 동료들이다. 그들이 나를 잘 소개해 줬다. 작품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내가 연출가나 작가냐고 물어볼 정도였는데, 나처럼 작품 개발을 많이 해본 프로듀서가 많지 않다. 그들에게 어떻게 뮤지컬을 시작했고 꿈꾸었는지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런 점이 나이 지긋한 공연 관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두 작품을 실패하고 나서 오디컴퍼니가 받은 충격이 컸다. 다시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타이타닉> 때문에 미국의 관계자들을 다시 만났을 때 환영해 주더라. 이제는 흥행을 이루고 작품성으로 평가받는 작품을 꼭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브로드웨이에서 첫 리드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작품은 투팍의 노래로 만든 힙합 뮤지컬 <할러 이프 야 히어 미>(2014)였다.
이 작품은 워크숍을 올린 후 바로 브로드웨이 극장의 대관 기회를 잡았다. 투팍 음악이 예술성이 있고, 가사에 사회성이 있으니까 기회를 준 것이다. 워크숍 과정에서 대본의 문제가 드러났지만 한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와 연출가와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한국과는 사뭇 다르더라. 한국에서는 프로듀서가 작품 수정에 주도권을 잡고 가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연출가가 예술적인 컨트롤을 한다. 대신 프로듀서는 인사권을 집행할 수 있다. 작품을 좀 더 발전시킨 후 올렸어야 하는데 브로드웨이 극장 대관 기회가 생기다 보니 성급했다.
<닥터 지바고>는 한국과 호주 프로덕션을 거쳐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그만큼 개발 시간이 많았다.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 모두 좋았다. <저지 보이스>의 연출가 데스 맥아너프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운명적인 사랑을 담아내기보다는 혁명과 사회적인 내용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이 작품 역시 대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연출가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한 점들이 다 결과로 나왔다.
두 번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리고 이번 <타이타닉>의 제작 과정은 어떤 점이 다를까?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뜻을 한데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내가 너무 깔끔하게 작업한 것 같다. 그곳은 파트마다 노조가 있고 룰이 있다. 두 번 모두 너무 그곳 상황에 맞춰 작업했다. 이번에는 한국적인 방식을 더 적용할 생각이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열정을 가지고 영감 어린 작업을 해야 한다. 열정을 끌어냈어야 했는데 그런 면에서 소극적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올리는 일 중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대관과 투자를 받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러려면 좋은 작품이 있어야 한다. 좋은 작품으로 극장주를 설득해서 대관을 얻고, 이를 통해 투자를 받는다.
<타이타닉>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미국에서 설문을 했는데 다시 보고 싶은 리바이벌 프로덕션 10위 안에 <타이타닉>이 든다고 한다. 그만큼 관심이 높은 작품이다. 리바이벌 공연이기 때문에 이번 프로덕션의 유니크한 면과 강점을 잘 어필할 것이다. <타이타닉>의 한국 공연에서 관객들이 사실성 있는 이야기와 휴머니즘에 감동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점을 잘 어필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고, 마케팅적으로도 그런 점을 잘 홍보할 것이다.
국내 프로듀서들은 일본과 중국 등 주로 아시아권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뮤지컬은 상업 예술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 성공하면 아시아에서 진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런던, 유럽 어디든 갈 수 있다. 열린 시장으로 가기 위해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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