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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국내 뮤지컬 백델 테스트 해보기 [No.173]

글 |안세영 2018-03-05 5,257
2015년 토니어워즈 베스트 뮤지컬상을 차지한 <펀 홈>은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앨리슨 벡델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연재만화 <경계해야 할 레즈비언(Dykes To Watch Out For)>이 있는데, 그중 1985년 발표한 에피소드 ‘법칙(The Rule)’에 유명한 장면이 있다. 한 여성이 자신은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영화만 본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만화 속에 언급된 세 가지 조건은 이후 영화의 성평등 지수를 가늠하는 척도로 널리 활용되었다. 이 테스트는 앨리슨 백델의 이름을 따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라고 불린다.
 
조건 1.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조건 2. 
그들이 서로 대화할 것 
 
조건 3. 
그 대화가 남성에 대한 내용이 아닐 것
 
 
 
 
2017년 뮤지컬 흥행작 벡델 테스트
벡델 테스트를 국내 뮤지컬에 적용하면 어떤 성적이 나올까? 지난해 티켓 판매 순위 10위권 안에 든 뮤지컬(인터파크 판매 매수 기준)에 벡델 테스트를 적용해 봤다. 그 결과, <시스터 액트>, <마타하리>, <시카고> 세 작품이 백델 테스트를 통과했다. <시스터 액트>는 수녀원 합창단, <시카고>는 여성 교도소 죄수들의 이야기로 여성 캐릭터끼리 부딪히거나 힘을 합치는 장면이 나온다. <마타하리>에는 주인공 마타 하리와 그의 의상 담당 안나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나가 마타 하리의 스파이 활동을 걱정하며 부르는 ‘조금 더 큰 일’, 안나가 마타 하리를 통해 살아온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너를 통해’가 그것이다. 
 
열 작품 가운데 <헤드윅>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작품은 모두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웅>의 설희와 링링, <광화문 연가>의 수아와 시영, <빌리 엘리어트>의 미세스 윌킨슨과 데비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캣츠>의 경우 암코양이들이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있으나, 고양이를 의인화한 송스루 뮤지컬의 특성상 대화로 간주할 만한 장면을 찾기 힘들다(다만 암코양이들이 코러스로 등장해 제니 애니 닷을 소개하는 ‘The Old Gumbie Cat’이나, 그리자벨라와 다른 암코양이가 함께 노래하는 ‘Memory’ 리프라이즈를 대화에 준하는 장면으로 해석해 볼 여지는 있다). <벤허>에는 노예 에스더, 벤허의 어머니 미리암, 동생 티르자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지만, 대화 내용은 예수와 벤허에 대한 것이다. 함께 부르는 노래 ‘그날의 우리’ 역시 남주인공 벤허를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레베카>의 여주인공은 집사 댄버스와 남편의 죽은 전처 레베카에 대한 대화를 여러 번 나누지만, 여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나(I)’로만 표현되어 아쉽게 탈락했다. 
 
 
 
 
2018년 뮤지컬 기대작 벡델 테스트
올해 공연될 뮤지컬은 어떨까? 공연 전문 포털 사이트 플레이DB가 관객 1,0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년 기대작 상위 15개 뮤지컬(창작 초연 제외. 단, 플레이DB가 재연으로 분류한 <레드북>은 포함)에 백델 테스트를 적용해 보았다. 그 결과, <마틸다>와 <레드북>만 백델 테스트에 통과했다. <마틸다>는 천재 소녀 마틸다가 폭력적인 교장에 맞서는 이야기로 주인공과 조력자, 악역 모두 여성 캐릭터다. <레드북>은 성차별적인 사회에 맞선 여성 작가의 이야기로, 주인공 안나와 여성 문학회 회원 도로시가 글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 밖에도 대부분 작품에 이름을 지닌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찾기 힘들다. <프랑켄슈타인>의 경우 엘렌과 줄리아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지만, 대화 내용은 남주인공 빅터에 대한 것이다. <엘리자벳>에도 엘리자벳과 소피 대공비가 부르는 노래 ‘황후는 빛나야 해’가 있으나, 이는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벳의 결혼 생활을 두고 말다툼하는 내용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와 키티가 부르는 ‘그때 그걸 알았다면’, <닥터 지바고>의 라라와 토냐가 부르는 ‘It Comes As No Surprise’ 역시 남주인공과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라 탈락했다. 뮤지컬 장르 특성상 대화 여부를 판단하기 애매한 장면도 있다. 뮤지컬에는 두 여성이 직접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와 루시가 부르는 ‘In His Eyes’가 바로 그 예다. 하지만 이는 여성 간의 상호작용으로 볼 수 없는 독백조의 노래일뿐더러, 듀엣의 내용이 남주인공에 대한 것이어서 탈락했다. 
 
백델 테스트가 성평등을 판가름하는 완벽한 지표는 아니다. 위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지표일 뿐, 백델 테스트에 통과했다고 해서 성평등을 이룬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백델 테스트에 통과한 <마타하리>는 여주인공 마타 하리가 사랑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백델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차별적인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키다리 아저씨>는 남녀 2인극이라는 이유로 백델 테스트에 탈락했지만, 작가를 꿈꾸는 독립적인 성격의 여주인공이 등장해 여성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헤드윅> 역시 성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백델 테스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유사한 테스트가 고안되었다. 영화 <퍼시픽 림>의 마코 모리 같이 독립된 여성 캐릭터인지 알아보는 ‘마코 모리 테스트’, 작품 속 여성을 예쁜 전등으로 대체해 봄으로써 들러리 역할만 하지 않는지 알아보는 ‘섹시한 램프 테스트’,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어도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은지 알아보는 ‘앨런 윌리스 테스트’, 여성 창작자의 참여 여부까지 고려한 영국 배스 영화제의 ‘F등급(F-rated)’, 성소수자가 평등하게 다뤄졌는지 알아보는 ‘비토 루소 테스트’ 등이 그것이다. 
 
위의 테스트는 대부분 영화계의 남성 편향을 고발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렇다고 이 테스트를 뮤지컬에 적용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대사보다 노래 위주로 전개되는 뮤지컬에 적용하기 애매한 점도 있지만, 이러한 점을 보완해 ‘뮤지컬을 위한 성평등 지표’를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스웨덴 영화계처럼 ‘성평등 테스트 통과’ 인증 마크가 붙은 뮤지컬을 보게 될지 모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3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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