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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우형과 함께한 <너와 함께라면> [No.85]

사진 |박진환 정리 | 배경희 2010-10-11 5,305

진한 웃음으로 채운 하루

 

“아, 여유롭고 진짜 좋네요.” 우리가 함께한 네 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김우형이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해 미안하다면서. 오늘은 7개월 동안 장기 공연된 <미스 사이공>이 끝난 지 이틀째 되는 날. 그 마음이 충분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짧은 휴식 후 <미스 사이공>의 지방 공연과 연말에 공연되는 <아이다>의 공연 연습이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 맘껏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오죽할까. 오직 재밌게 웃고 싶어서 골랐다는 <너와 함께라면>을 보고 “정신없이 웃느라 즐거웠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로를 찾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더욱이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환한 저녁 시간에 말이다(길에서 동료 배우들을 여럿 마주쳤는데 다들 네가 왜 대학로에 있는 거냐며 낯설어 했다). 지난 7개월 동안 매일 전쟁을 치르던 시간에, 여유롭게 대학로를 걷고 있는 기분이 어떨지 짐작이 되는지. 들뜬 마음에 하늘은 예뻐 보이고, 음악이 흐르는 것도 좋고, 거리 자체가 아름다워 보이더라. 아, 이곳이 낭만이 있는 동네였구나, 잊고 지냈던 걸 새삼 깨달았다. 학창 시절 크루로 참여해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점프>나 (김)도현이 형이 출연하고 있는 <웃음의 대학>도 보고 싶어 세 작품 중 뭘 볼까 고민했는데, 대학로 공연을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함께라면>은 일단 설정부터가 재밌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딸의 남자 친구라니. 줄거리는 이렇다. 가족 행사를 위해 모처럼 네 식구가 모인 주말 아침, 큰딸의 남자 친구가 불쑥 집으로 찾아온다. 근데 그 남자 친구가 일흔 살의 노인이다. 집에서는 꽃미남을 떠오르게 하는 ‘켄야’라는 이름 때문에 그를 건실한 청년 사업가라고 믿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빠와 두 딸은 엄마가 충격으로 쓰러지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데,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간다. 인물들이 각각의 목적을 위해 얽히고설키는 상황을 재밌게 그리면서 웃길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아주 잘 짚어내 줄거리를 알고 봐도 웃는 데 지장이 전혀 없다. 그리고 아무리 대본이 뛰어나다고 해도 코미디는 타이밍 싸움이라 그 순간을 놓치면 절대 웃길 수 없는데 배우들은 탄탄한 대본을 제대로 살려낸다. 서현철 선배님과 송영창 선생님의 생활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들 연기를 잘해서 쉴 틈 없이 웃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만약 나중에 내 딸이 그런 사람을 데리고 온다면…, 말도 안 돼. 절대 허락 못 한다. 누나나 여동생이 그런다고 해도(실제로 누나는 동갑내기 매형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당연히 안 되고. 물론 내가 남자 친구의 입장이라면 어떻게든 승낙을 받으려고 하겠지. 근데 나는 좀 현실적인 사람이라 과연 내가 그런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열 살 정도까지는 괜찮을 것 같지만 그 이상은 글쎄. 연예인들, 특히 할리우드 스타들 보면 엄청난 나이 차가 나는 커플이 많지 않나. 그런 커플을 보면 신기하고, 솔직히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아는 사람 중에도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 있었는데 그들을 보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도 ‘저 커플은 정말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어떤 야망이 있나?’하는 의문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를 대입해 보기는 어려운 작품이었는데 작품 속 ‘거짓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순간순간 대처를 했던 것이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하는 게 나쁘다 안 나쁘다의 문제보다는 거짓말을 하는 본질적인 목적이 중요한 것 같다. 의도가 나쁜 거짓말이라면 지적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거짓말은 알면서 속아주기도 하고, 믿고 넘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좀 다른 얘기로, 점점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돼가는 것 같다. 너무나 열려있고 사생활 보장이 안 되는 세상이 됐달까. 특히 요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트위터 많이 하지 않나. 어디선가 나를 목격한 사람이 목격담을 인터넷 매체에 올리고 그게 쭉쭉쭉 퍼져나가 그대로 나의 동선이 파악되는 것이다. 주위에서 이것 때문에 거짓말이 들통 난 경우도 많이 봤고. 세상이 빨라져서 편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워지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세 작품 중에서 <너와 함께라면>을 골랐던 이유는 다들 이 작품이 진짜 웃기다고 해서였다. 정말 아무 생각 안 하고 재밌게 웃고 싶었으니까. 쉴 틈 없이 웃기다가 공연 후반 갑작스럽게 감동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서 감동 아닌 감동을 주려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를 툭툭 깨면서 결국 웃음으로 빠져나가더라. 이 작품에서 주제는 간단명료하게 ‘웃음’이었던 것 같다. 내 경력 중 유일한 코믹물 <나쁜 녀석들>을 재밌게 공연하던 때 생각도 났고, 많이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5호 201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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