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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프로즌> [No.176]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Deen van Meer 2018-05-11 5,967

<프로즌>  Frozen

같지만 또 다른 이야기

 


 

기대와 부담을 얹고
 

스크린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 무대화될 땐, 언제나 기대와 부담이 따라온다. 게다가 그 영화가 전 세계에서 13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낸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제작하는 만화는 훨씬 더 단순한 전개와 캐릭터만으로 충분히 내용 전달이 가능하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대다수가 어른 관객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뮤지컬화하는 과정은 성인 관객의 기대에 맞춰서 캐릭터들의 감정선과 배경을 추가해야 하고, 무대의 특성에 맞게 내용도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프로즌>(한국에서는 <겨울왕국>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은 ‘애니메이션의 대가’ 디즈니가 그동안 받았던 강력한 기대와 부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작품은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주목받았는데, 전 세계에 ‘Let It Go’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엘사의 테마 외에도 다양한 삽입곡이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 <프로즌>에서도 ‘Let It Go’와 안나와 한스가 함께 부르는 ‘Love Is An Open Door’, 올라프가 여름을 그리며 부르는 ‘In Summer’, 한스의 가족 같은 존재들인 트롤들이 안나에게 한스의 매력을 어필하는 노래인 ‘Fixer Upper’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가 무대에서 구현된다. 사실 <위키드>의 초록마녀 엘파바로 ‘Defying Gravity’를 부른 이디나 멘젤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영화 속 ‘Let It Go’를 부른 만큼, 뮤지컬 <프로즌>에서 그녀의 뒤를 잇는 배우를 찾아야 하는 디즈니에도, 엘사를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꽤 큰 부담감이 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으로 다시 풀어낸 디즈니의 신작 <프로즌>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 구성은 엘사와 안나를 통해 그린 걸 파워와 자기애, 자매·가족의 사랑 그리고 로맨스를 아우르며 포괄적인 의미의 진정한 사랑을 그리는 원작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했다. 여기에 원작의 창작진을 재기용해 미처 풀어내지 못한 주요 인물들을 설명하는 노래들을 새로 추가했고, 그 결과 인물들의 감정이 깊어졌다. 특히 관객들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인 엘사의 마법은 조명과 무대장치들을 이용해서 나름 잘 구현해 냈다. 이런 요소들이 이 작품이 지난 3월 말 정식 오픈 이후 <해밀턴>,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와 함께 브로드웨이의 가장 뜨거운 공연 중 하나로 큰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
 

<프로즌>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우애 깊고 발랄한 자매인 엘사와 안나가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엘사의 마법에 안나가 다치고, 이로 인해 둘 사이가 멀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마법을 두려워하는 엘사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여왕이 된다. 안나는 엘사의 여왕 대관식에서 우연히 만난 한스와 결혼을 하겠다고 엘사에게 승낙을 구하지만, 엘사는 스스로 마법을 조절하지 못하고 나라 전체를 얼리고 만다. 이후 안나는 도망친 엘사를 찾아 나서다가 크리스토프를 만나고 함께 여행하면서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엘사의 마법에 다시 안나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한스의 정체가 드러난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오해를 푼 안나와 엘사가 화해하고,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엘사도 자신의 마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원작과 동일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지만 뮤지컬에서는 조금의 변화를 주긴 했다. 엘사, 안나, 그리고 한스와 크리스토프까지 주요 인물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입혀 원작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이들의 깊은 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엘사에게 주어진 신곡 ‘Monster’는 2막에서 엘사가 그녀를 잡으러 온 병사들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다. 엘사는 이 노래를 통해 그들과 싸우고 온 나라를 겨울왕국으로 만들어 놓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잡혀가서 자신의 실수를 되돌려놓을 방안을 찾을 것인지 고민한다. 즉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는 그녀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엘사가 지닌 고민에 공감할 기회를 준다. 안나는 ‘True Love’를 부르며 작품의 주제를 말한다. 한스가 권력을 노리고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며 부르는 노래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원했지만, 자신이 그려둔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고 자책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사랑이 뭔지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외친다. 또 크리스토프도 안나가 엘사의 마법에 다쳐서 심장이 얼어갈 때, 그녀를 고칠 수 있는 트롤집단(뮤지컬에서는 원작과 달리 돌무더기가 아니라 산속 깊이 사는 유목민으로 그려졌다)을 찾아가는데, 안나가 쓰러진 사이에 잠시 부르는 노래 ‘Kristoff’s Lullaby’를 통해 그녀를 향한 마음을 관객에게 드러낸다.
 

특히 인상 깊은 노래는 한스가 자신을 소개하며 부르는 뮤지컬 넘버였다. 원작에서는 그가 권력에서 한참 먼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12명의 형이 있다고 에둘러 말하는 정도로 그친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안나를 처음 만난 한스가 ‘Hans of the Southern Isle’를 부르며 자기에게 12명의 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긴 노래도 아니고, 그의 깊은 마음을 드러내는 가사도 아니지만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한스가 마냥 선한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암시해 준다. 무대 앞쪽에 선 한스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대 뒤쪽으로 비추는 어두운 조명 아래 12명의 남자 앙상블이 한스의 뒤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가 마음에 짊어지고 있는 부담을 형상화했다. 또 그의 노래는 왕궁에서 귀족을 소개할 때 연주하는 음악을 연상시키는 트럼펫 소리로 시작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단순한 멜로디와 악기 구성으로 초라하게 끝이 나, 원작보다 더 진지하게 한스의 처지를 다뤘다.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의 연출
 

이외에도 이번 뮤지컬을 위해 새로 쓴 노래들은 전반적으로 발라드풍의 느린 곡이 많다. 이로 인해 <프로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겁고 진중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더 진지해진 것은 초기 제작 당시 이야기가 나왔던 알렉스 팀버스(<블러디 블러디 앤드루 잭슨>, <피터 앤드 더 스타캐쳐>, <록키> 등에 참여했다)가 프로젝트를 떠나고 대신 그 자리를 맡은 영국 출신 연출가 마이클 그랜데이지의 영향이 컸던 게 아닌가 싶다. 그는 <프로즌>의 연출을 맡기 전까지 2012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던 <에비타>를 제외하고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프리드리히 실러의 <메리 스튜어트>, 존 로건의 <레드> 등의 연극 연출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의 이전 작품들을 훑어보면 <프로즌>이 어른들의 이야기로 발전된 것에는 그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마이클 그랜데이지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프로즌>에 담겨 있는 큰 질문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진중한 작품에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롭 애시퍼드의 안무와 해피 바이러스를 뿜어내는 안나와 올라프의 존재다. 일단 롭 애시퍼드의 안무는 마을 사람들의 축제 장면과 엘사의 대관식 군무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특히 마지막에 안나를 찾는 엘사, 엘사를 찾는 한스, 그리고 크리스토프를 찾는 안나가 그다지 크지 않은 무대 위에서 서로를 찾아다닐 때, 흰옷을 입은 앙상블 배우들이 열을 맞춰 바람인 듯 얼음인 듯 그들의 동선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효과적으로 다가왔다.
 

안나 역할을 맡은 패티 뮤린은 브로드웨이 경력이 많지는 않지만, 안나의 에너지를 그려낼 때 움직임이나 목소리 그리고 다른 인물들과의 케미스트리가 좋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프로즌>의 가장 큰 백미는 안나도, 엘사도 아닌 바로 올라프였다. 울라프는 <라이온 킹>의 인형을 제작한 마이클 커리가 만들었고, 배우 그레그 힐드레스가 연기와 조작을 맡았다. 그는 한 손으로는 팔을 작동하는 막대를,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와 입을 작동하는 막대를 이용해 올라프의 밝고 따뜻한 특징을 잘 살려냈다. 특히 올라프의 명곡 ‘In Summer’를 부를 때는 마치 그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무대 위에서 겨울왕국 만들기
 

<프로즌>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한 부분은 무대와 조명이었다. 원작에서 엘사의 손짓만으로 만들어낸 얼음 궁전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다들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프로즌>의 창작진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노르웨이에도 직접 가보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시도하며 공을 쏟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조명과 영상, 무대의 도구만으로 얼음 궁전을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Let It Go’를 부르는 장면에서 엘사가 퀵체인지를 통해 드레스를 벗고 반짝이는 여왕 옷으로 갈아입을 때나, 그녀의 손짓에 따라 무대 바닥과 옆면 심지어는 객석 양옆까지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 선들이 크게 투영되는 순간에는 엘사의 마법을 원한 관객들의 탄성이 들린다. 또 엘사의 궁전엔 반짝이는 수정이 박힌 커튼이 무대 천장에서 내려와 있고, 엘사가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과 싸울 때는 엘사의 손짓에 따라 무대 아래 공간에서 사람의 키만 한 수정 기둥들이 올라오며 그녀의 마법을 구현해 낸다. 이렇게 조명과 영상 그리고 무대장치를 통해 엘사가 지닌 능력을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준 것은 제작진에게는 최선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작품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던 마법 구현 장면이 많이 아쉬웠다. 
 

이러한 아쉬움을 더욱 키운 것은 캐이시 레비가 부르는 ‘Let It Go’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 속 노래에 비해 어딘지 빈 듯한 느낌이었다. 원작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았던 스티븐 오레무스가 뮤지컬 <프로즌>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았음에도 말이다. 기본적으로 90대의 악기가 동원되었던 원작의 사운드트랙에 비해 20대의 악기가 동원된 뮤지컬의 오케스트라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캐이시 레비의 노래는 이러한 악기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성량과 감정의 깊이에서 이디나 멘젤의 엘사를 따라가지 못했고, 이는 ‘Let It Go’로 끝나는 1막 마지막의 감동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원작보다 더 깊어진 <프로즌>
 

원작과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한 뮤지컬 <프로즌>은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고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뮤지컬 <프로즌>이라는 자체만으로 볼 때, 넓은 범위의 진실한 사랑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동화 같은 작품이라는 점이 어른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노래들을 통해 인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누군가는 불필요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이야기가 깊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원작의 이야기에 또 다른 내용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건넬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답은 엘사와 안나 복장을 하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극장에 와서 뮤지컬을 재밌게 보고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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