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반 호프의 작품 세계
NT Live <강박관념> , <헤다 가블러>
지난 2014년 출발해 국립극장의 간판 프로그램이 된 NT Live 시리즈.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에 선정된 여섯 편의 상영작 가운데, 오는 5월 이보 반 호프의 최신작 <강박관념>과 성공작 <헤다 가블러>가 연달아 상영된다.
아찔한 탐미주의자
이보 반 호프의 작품 세계를 국내 관객이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은 2012년 LG아트센터에서 올라간 <오프닝 나이트>를 통해서다. 이후 지난해 봄 5년 만에 2014년 네덜란드에서 초연된 <파운틴헤드>로 그가 직접 한국을 찾았는데, 당시 공연 종료 후 로비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반 호프가 이끄는 토닐 그룹의 본거지인 암스테르담에 가서 그의 공연을 봤으며, 그게 자신에게 어떤 깊은 감동을 남겼는지 사랑 고백에 가까운 경험담을 늘어놓던 한 관객의 들뜬 목소리, 그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처럼 누군가의 어떤 공연을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보 반 호프의 공연을 보기 위해 기꺼이 다른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만큼 그가 현재 유럽 연극계에서 잘 나가는 연출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58년 벨기에 출생으로 암스테르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최대 특징으로 꼽는 것은 심미적인 무대로, 무대디자이너 겸 조명디자이너인 얀 버스웨이벨드(Janesweyveld)는 그의 무대 미학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다. 반 호프가 하는 모든 작품의 세트와 조명 디자인을 담당하는 버스웨이벨드는 그의 실제 인생 파트너이기도 하다는 사실. 두 사람은 1980년 브뤼셀에서 이십 대를 보내던 중 여름 방학용 현대 무용 수업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후 40년 가까운 시간을 줄곧 함께해 왔을 만큼 각별한 사이를 자랑한다. 반 호프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들이 바로 세상에 소울 메이트가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1981년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한 첫 작품
이보 반 호프가 선보인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1950년대에 쓰인 아서 밀러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강렬하게 재탄생시켰다고 평가받았는데, 그가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반열에 우뚝 선 데는 이 한 작품으로 연극사에 남을 화려한 수상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2015년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올리비에 어워드 연출상을 손에 넣었을 뿐 아니라, 뉴욕으로 건너간 이듬해엔 미국 공연계 시상식의 양대 산맥인 토니어워즈와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연출상과 최우수 리바이벌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것. <안티고네>(2015)의 줄리엣 비노쉬, <시련>(2016)의 벤 위쇼. <강박관념>(2017)의 주드 로 등 최근 반 호프의 작품에 출연하는 스타들의 면면만 봐도 그의 현재 입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현재 준비 중인 신작 <올 어바웃 이브>의 주인공으로는 일찌감치 케이트 블란쳇이 거론됐는데, 스케줄 문제로 최근 무산됐다).
<강박관념>
지난 2017년 4월,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된 연극. 인기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신작, 각각 자기 도시를 대표하는 토닐 그룹 암스테르담과 바비칸 센터의 첫 공동 프로덕션, 여기에 할리우드 스타 주드 로가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반 호프가 이십 대를 영화관에서 보냈을 만큼 영화광이었다는 것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사실인데, <강박관념>은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적인 영화로 꼽히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1942년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제임스 M. 케인의 소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가 영화의 원작으로 남녀의 불륜과 살인이 기본 플롯. 우연히 만나 금지된 사랑에 빠진 후 비극을 향해가는 커플의 모습을 그린다. 반 호프의 설명에 따르면, 살면서 낯선 누군가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이유를 우린 결코 알 수 없는데, <강박관념>이 바로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사랑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분석한 작품이라는 게 런던 언론의 평가였다.
5월 18, 19, 23, 24, 25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헤다 가블러>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여겨지는 『인형의 집』(1879)을 쓴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중 하나로, 1890년에 발표된 이후 오늘날까지 무수히 많은 극단과 연출가에 의해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품. 이보 반 호프 버전의 <헤다 가블러>는 영국을 대표하는 극장 내셔널 시어터가 제작을 맡아 2016년에 초연됐다. 반 호프가 말하는 연출가로서 그의 사명은 다름 아닌 연극을 통해 지금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것. 따라서 19세기 중산층 사회를 그린 <헤다 가블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가블러 장군의 딸 헤다를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스스로 만든 감정 감옥에 갇혀 공허함에 시달리는 자기 파괴적 인물로 부각시킨 것이다. 결혼으로 불행해진 페미니스트의 아이콘 헤다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도 이보 반 호프 버전의 흥미로운 점. 지난 2014년 미드 <디 어페어>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루스 윌슨의 헤다 가블러 열연 역시 볼만하다.
5월 20, 22, 26, 27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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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THEATER] 이보 반 호프의 작품 세계 [No.176]
글 |배경희 사진 |an Vesweyveld 2018-05-15 6,000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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