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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 메리 셸리, 괴물을 만든 십 대 소녀 [No.177]

글 |안세영 2018-07-03 5,557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어떻게 나처럼 어린 소녀가 그토록 
끔찍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쓸 수 있었느냐고. ―『프랑켄슈타인』 1831년 개정판 서문
 


 
1816년,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여름밤.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에 위치한 디오다티 저택에 손님들이 모여 있다. 시인 바이런과 그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 그리고 또 다른 시인 퍼시 셸리와 그의 연인 메리. 이들은 쉼 없이 내리는 비를 피해 독일 괴담을 읽으며 지루함을 달래는 중이다. 그때 문득 바이런이 제안한다. “우리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써봅시다.” 2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즐겨 읽히며 수많은 예술 작품에 영감을 준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그날 밤 모인 사람들 가운데 이 놀라운 이야기를 떠올린 건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나 퍼시가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만 18세의 소녀 메리였다. 
 
메리 셸리는 179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무정부주의를 설파한 급진주의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 어머니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여성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 유명 인사의 딸로 태어났지만 메리의 삶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11일 만에 사망했고, 아버지는 이웃 여성과 재혼했다. 메리는 친모가 결혼 전 다른 남자와 낳은 딸 패니, 계모가 전남편과 낳은 아들 찰스, 딸 클레어와 한 가족으로 자랐다. 복잡한 가족사 속에서 계모와 갈등을 빚었던 메리는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책을 읽으며 위안을 찾았다. 메리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대신 아버지의 지도 아래 수많은 책을 읽었고, 집을 드나들던 문인들의 대화를 어깨너머로 들으며 지성을 쌓았다. 그러다 아버지의 추종자 중 하나였던 시인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당시 퍼시는 이미 결혼해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둘의 관계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결국 메리와 퍼시는 1814년 사랑의 도피를 떠나 유럽을 떠돌았다. 이후 영국에 돌아와 딸을 낳았지만 곧 죽고, 1816년 다시 아들을 낳았다. 그해 메리와 퍼시는 메리의 이복동생 클레어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로 휴양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영감을 얻었다. 


 
메리는 1831년 『프랑켄슈타인』 개정판 서문에서 어떻게 이토록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바이런의 제안에 동의한 후, 혼자만 이야깃거리를 찾지 못해 초조해하던 메리는 어느 날 바이런, 퍼시와 함께 갈바니즘(죽은 동물에 전기 충격을 가하면 꿈틀거리는 효과. 개구리 실험을 통해 이 사실을 발견한 과학자 갈바니의 이름에서 유래)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꾼다. 한 남자가 시체를 기워 만든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꿈. 두려움에 눈을 뜬 메리는 꿈의 내용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다. 
 
완성된 이야기는 1818년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초판은 익명으로 발표되었는데, 여성 작가에 대한 문학계의 편견과 퍼시와의 스캔들에 대한 비난 때문이었다. 이후 1923년 메리의 아버지가 딸의 이름으로 다시 책을 펴냈고, 1831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에서는 초판의 급진적 요소가 대폭 삭제되었다. 이는 세간의 혹평뿐 아니라 메리가 겪은 일련의 비극적 사건이 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 탓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 메리의 신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메리의 언니 패니와 퍼시의 첫 아내 해리엇이 자살했다. 해리엇이 죽은 1816년 메리는 비로소 퍼시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하지만 1818년과 1819년 두 아이가 연달아 죽고, 1822년 남편 퍼시도 항해 중 돌풍을 만나 익사했다. 
 
이후 메리는 남편 퍼시의 유고 시집을 출간하고 하나 남은 아들을 키우며 전업 작가의 삶을 살았다. 오랫동안 메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그의 다른 소설로는 21세기 말 전염병으로 인류가 한 사람만 남고 전멸하는 이야기 『최후의 인간』(1826)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소설 『발퍼가』(1823), 『로도어』(1835), 『포크너』(1837)와 기행문, 전기문 등 다양한 글을 발표했던 메리는 1851년 뇌종양으로 눈을 감았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과학 기술의 발달이 야기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경고했다. 또한 인간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괴물의 입을 통해 남성 및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메리의 작품은 그 혁신성 때문에 당대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작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롱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SF 문학의 선구자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는 『프랑켄슈타인』이 출간 2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잘 알려진 괴물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 괴물을 창조한 십 대 소녀의 위대한 상상력에도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떨까? 
 

 
소설 『이상한 별』(2017)
『프랑켄슈타인』 출간 200주년 기념 소설. 사실과 허구를 섞어, 메리가 『프랑켄슈타인』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는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1816년 손님들이 저택에 모여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나누던 밤, 불현듯 흉터로 뒤덮인 소녀가 나타나 문을 두드린다. 메리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소녀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털어놓는다. 작가 엠마 캐럴은 메리와 퍼시가 1814년 앤드루 크로스라는 과학자의 전기 실험 강의를 들었다는 기록, 그리고 유럽에 있는 동안 아이를 입양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입양이 취소되었다는 기록에 주목해 이 소설을 썼다.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들은 『프랑켄슈타인』 속 인물들과 닮아 있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전기를 이용해 생명을 되살리는 과학자가 나오고, 외모, 성별, 인종 때문에 괴물처럼 편견의 피해자가 되는 인물도 나온다. 이는 메리가 여성과 하층계급에 대한 차별에 영향을 받아 『프랑켄슈타인』을 썼다는 견해를 반영한다. 
 

 
만화 『메리 고드윈』(2005)
『메리 고드윈』 역시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비화에 허구적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다. 메리와 퍼시가 스위스 제네바에 머무르던 시기, 수수께끼 소년 쟝이 새 하인으로 들어온다. 화상 흉터를 이유로 늘 가면을 쓰고 있는 쟝은 메리가 쓰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강력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또 한편으로는 메리의 주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며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실제로 메리의 삶에는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걸 시작으로 다섯 아이 중 넷을 일찍 떠나보냈다. 메리의 언니 패니, 퍼시의 전처 해리엇은 『프랑켄슈타인』 집필 시기에 자살했다. 제네바에서 함께 괴담을 나누었던 바이런, 존 폴리도리, 퍼시 또한 훗날 모두 요절했다. 거듭된 불운과 퍼시와의 스캔들로 인한 세간의 비난은 메리를 상처 입혔다. 『메리 고드윈』은 이처럼 어두웠던 메리의 삶과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그리고 가상의 인물 쟝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2017)
엘르 패닝이 주연한 메리 셸리의 전기 영화. 퍼시와 사랑에 빠진 메리가 집을 떠난 뒤 『프랑켄슈타인』을 발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시기에 메리와 퍼시는 온갖 시련을 겪는다.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빚쟁이에게 쫓기고, 정식으로 결혼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다가 잃는다. 메리의 동생 클레어도 시인 바이런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져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메리로 하여금 펜을 들게 했다는 걸 보여준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영화 <와즈다>(2012)를 만든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의 작품이다. <와즈다>는 열 살 소녀 와즈다가 여자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이슬람 율법에 저항하는 이야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주인공 메리가 여성 작가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에 주목, 관습대로 집 안에 갇혀 사는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 메리의 용기를 조명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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