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시장, 어느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2014년 1월 <더뮤지컬>은 신년을 맞아 ‘한국 뮤지컬 미래를 전망한다’를 기획했다. 당시 공연계 전문가에게 공통의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어보았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이야기할 때 관용구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이후로 매해 20% 이상 꾸준히 성장”이라는 문구였다. 실제 2000년 1백4십억 원 정도로 추정되던 시장은 2010년대에 3천억 원대에 진입했고 현재는 대략 3천5백억 원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10여 년 사이에 20배가 넘게 성장했다. 2013년까지만 해도 한국 뮤지컬은 비교적 꾸준히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오며 3천억 원대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2014년 1월 몇몇 적신호는 있었지만 가파른 성장을 유지하던 시기에 한국 뮤지컬 시장의 안정기에 이르는 규모를 질문한 것이다. 2014년 연초만 해도 해마다 성장해 온 시장이 갑자기 정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몇 가지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우세했다. 한국 뮤지컬 시장 5천억 원대, 3만 불 국민소득 달성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8천억 원까지 성장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직 한 전문가만 3천억 원대에서 한동안 정체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했다. 실제 2014년 뮤지컬계의 풍경은 비관론 쪽으로 기울었다. 개런티 미지급으로 인해 공연 직전 공연 취소를 알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 제작사의 대표는 공연이 끝나자 잠적했다. 뿐만 아니라 인기 레퍼토리를 보유한 견실한 중견 제작사인 뮤지컬해븐이 법정관리를 신청해 충격을 주었다. 2014년은 한국 뮤지컬 시장 발전의 한계를 드러낸 해이다. 여러 차례 뮤지컬 시장의 위기설이 감돌았지만 이전과는 질이 다른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런 위기감에도 한국 뮤지컬 시장은 조금씩 성장해 오다가 최근 2~3년은 3천5백억 원 규모에서 정체되어 있다. 그렇다면 3천 5백억 원 선이 한국 뮤지컬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일까? 이제는 좀 더 풍부한 주변 데이터를 토대로 정밀한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 이후 한국 뮤지컬 시장은 꾸준히 두 자릿수대 성장을 유지했다.
4천억 원 안에서 시장 유지
최근 2~3년의 추세로는 한국 뮤지컬 시장은 정체 국면에 들어간 것이 확실하다. 올해 역시 이제 중반기 시점이라 정확한 예측은 힘들지만 작년 정도의 시장이거나 근소한 정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 뮤지컬 시장이 안정기, 내지는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한국 공연 시장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관광객이 점유하는 시장이 아닌 자국 관람객 위주로 형성된 시장이다. 결국 공연 시장의 규모는 국민의 소득 수준, 인구수, 그리고 뮤지컬의 애정도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뮤지컬 티켓은 고가의 상품이다. 대극장 뮤지컬의 R석 좌석이 13만 원 정도, 일본이나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제 수준이 낮은 한국에서 뮤지컬 관람은 앞선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되는 일이다. 한때는 국민소득이 3만 불 시대가 온다면 그만큼 뮤지컬 소비도 증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3만 불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눈에 띄는 성장 변화는 없다. 소득 수준이 지금과는 다른 속도로 오르지 않는 한, 그래서 티켓 가격의 부담이 현격히 줄어들지 않는 한 소득 수준 상승에 따른 공연 시장 증대는 기대하기 힘들다.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시장이 커진다. 5천만 명 정도의 인구에서 상대적으로 고가인 뮤지컬 시장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성장할 수 있을까.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면 대략적인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5천억 원 정도다. 2008년 6천7백억 원대에서 정점을 찍었다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4천3백억 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서서히 회복해 5천억 원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인구수는 1억 2천만 명이 넘는다. 경제 규모도 우리보다 더 크고 인구수도
2배 이상 많은 일본의 뮤지컬 시장이 5천억 원대에서 안정되었다. 일본과 비교하면 현재 3천5백억 원대의 한국 뮤지컬 시장은 굉장히 발달한 수준이다. 일본 시장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적은 인구와 낮은 경제 규모에도 뮤지컬 시장이 지금과 같은 규모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들의 뮤지컬에 대한 애정도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은 소수 집단 위주로 뮤지컬을 향유한다면 한국은 좀 더 폭넓은 대중이 뮤지컬을 향유하기 때문에 여러 모로 조건이 나쁜 상황에서도 일본 시장에 근접한 규모까지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뮤지컬 관람은 대중들에게 매력 있는 문화생활이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뮤지컬 관람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2010년대 초중반으로 넘어오면서 레저나 여행, 스포츠 등 활동적인 문화생활 소비가 늘어나면서 뮤지컬에 대한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뮤지컬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뮤지컬 전용 극장의 증가, 작품 수의 증가, 아이돌을 비롯한 스타 캐스팅 등의 공급 과잉으로 성장을 유지해 갔다. 하지만 2014년 이후로는 과잉 공급으로 시장 규모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한계에 이르렀고, 그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인터파크판매분과 시장추정치
새로운 시장 확대 가능성
그렇다면 3천5백억 원이 한국 뮤지컬 시장의 최고치일까? 당분간 큰 변수가 없는 한 4천억 원대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정체될 것이다. 변수는 있다. 아직까지도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영역이 지역 시장이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뮤지컬 시장 역시 지나치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대구 뮤지컬 시장이 지역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데 부산, 광주, 대전, 인천 등 각 광역시 시장이 대구 정도까지 성장한다면 전체 뮤지컬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대별로 보면 뮤지컬 관객층은 20~30대 여성에 집중되어 있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20~30대가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과, <마틸다>, <라이온 킹> 등 패밀리 뮤지컬의 인기로 가족 관객들이 증가해 연령층을 넓힌다면 전체 시장이 성장할 여지가 있다.
국내 콘텐츠 산업이 영화나 음반, 드라마, 게임 등 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 국산 콘텐츠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전환되었을 때 큰 성장을 이루었다. 대형 창작뮤지컬 중에 킬러 콘텐츠가 연속적으로 등장해 투자가 이어진다면 시장이 좀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내수 시장으로 유지되는 시장 환경상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을 창작뮤지컬 시장이 대체하는 식으로 전개될 전망이 높다. 그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창작뮤지컬 위주의 시장으로 전환되고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까지 확대된다면 한국 뮤지컬 시장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과잉 경쟁으로 키워놓은 시장이 정상적인 괘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 시장과 중장년층, 가족 관객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안정된 발전을 유지한 상태에서 우수한 창작뮤지컬들이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한다면 한국 뮤지컬 시장은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