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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배트 아웃 오브 헬> [No.178]

글 |남윤호 배우 사진 |Specular 2018-07-26 4,856

?<배트 아웃 오브 헬>  

?Bat Out Of Hell 

디스토피아 속 로맨스

 


 

새로운 주크박스 뮤지컬


“미트 로프 뮤지컬, 천둥처럼 히트송을 질주하다.” 현재 런던 도미니언 극장에서 상연 중인 <배트 아웃 오브 헬>에 대한 가디언지의 리뷰이다(참고로 제목의 ‘배트’는 박쥐를 뜻하는 ‘Bat’다). 이번 달 역시 리뷰로 쓸 작품 선정이 쉽진 않았지만, 홍보 효과 때문일까. 거리 곳곳에 붙어 있는 강렬한 포스터가 호기심을 자극했고, 내가 자주 지나쳐 다니는 토튼햄 코트 로드 역 바로 옆에 위치한 도미니언 극장에서 공연된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도미니언 극장은 퀸의 음악으로 만든 <위 윌 록 유>가 12년 동안 공연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배트 아웃 오브 헬>의 공연 포스터는 여러 버전으로 제작됐는데, 그중 남녀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허공을 질주하는 듯한 버전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미트 로프의 동명 앨범 커버와 같은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미트 로프를 알고 있다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작품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프로듀서 겸 배우로 활동한 마빈 리 어데이 일명 ‘미트 로프’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물론 록 음악 팬들에게 사랑받은 음악을 뮤지컬 넘버로 쓴 작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말한 퀸의 <위 윌 록 유>나 ABBA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맘마미아!>, 그리고 그린데이의 동명 앨범을 뮤지컬로 만든 <아메리칸 이디엇> 등, <배트 아웃 오브 헬>도 이와 같은 선상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으로 나뉘어 있다. 옵시디언으로 이름이 바뀐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적인 맨해튼을 배경으로, 팔코라는 인물의 독재 아래서 살아가는 일반인들과 DNA 변형으로 열여덟 살이 되면 더 이상 늙지 않는 돌연변이 레지스탕스 조직 ‘더 로스트’가 그들이다. 주된 플롯은 더 로스트의 리더 스트랫이 팔코의 외동딸인 레이븐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인데, 그 안에는 음모와 배신 등 전형적인 로맨스물의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마치 영화 <매드 맥스>와 <블레이드 러너>에 <로미오와 줄리엣>과 <피터 팬>의 줄거리가 더해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할까. 그럼 지금부터 조금 더 자세하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오디션장에서 시작된 인연, 미트 로프와 짐 스타인먼
 

미트 로프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이 뮤지컬은 미트 로프의  3부작 앨범인 「배트 아웃 오브 헬」을 바탕으로 한다. 뮤지컬 제목과 같은 「Bat Out of Hell」은 시리즈 중 첫 번째 앨범으로 1977년에 발표됐으며, 이후 1993년에 두 번째 앨범인 「Bat Out of Hell II: Back into Hell」이, 2006년에 「Bat Out of Hell III: The Monster Is Loose」가 발매됐다. 첫 번째 앨범은 무려 5천만 장이 팔리는 어마어마한 판매 기록을 세웠는데, 이 앨범의 수록곡인 ‘배트 아웃 오브 헬’은 실연당한 후 오토바이 사고로 죽게 되는 십 대 소년의 비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처럼 노래에 이미 드라마가 존재해서 앨범의 작곡가 겸 작사가이자 뮤지컬의 대본을 맡은 짐 스타인먼이 미트 로프와 함께 훗날 뮤지컬 작업을 염두에 두고 곡 작업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트 로프와 짐 스타인먼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미트 로프가 배우로 한창 무대에 서고 있던 1970년대 초반, <모어 댄 유 디저브(More Than You Deserve)>라는 뮤지컬의 오디션장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미트 로프는 배우로서 오디션을 보러 갔고, 짐 스타인먼은 작곡가로서 그 장소에 있었다. 이렇게 만난 둘은 1972년부터 「배트 아웃 오브 헬」의 앨범 작업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 약 5년 후인 1977년에 완성된 앨범이 발매된다. 그 시기에 미트 로프는 꾸준히 뮤지션으로서 또 배우로서 활동을 펼쳤는데, 그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록키 호러 쇼>가 아닐까 싶다. 무대 버전에선 에디와 에버렛 스콧 박사 역을 같이 연기했지만, 뮤지컬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제작된 영화 <록키 호러 픽처 쇼>(1975)에서는 에디 역만 맡게 된다. 영화는 지금도 찾아볼 수 있으니 미트 로프의 에디가 궁금하다면 꼭 찾아보길 추천한다. 
 

<배트 아웃 오브 헬>에 대한 짐 스타인먼의 초기 아이디어는 로큰롤을 바탕으로 하는 피터 팬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것이었다. 원 제목은 <네버랜드>였다고 하는데, 실제 작품으로 탄생하진 못했지만 당시 작업했던 곡들에 미트 로프의 목소리가 입혀지면서 현재의 <배트 아웃 오브 헬>이 탄생한 셈이다. 오페라 가수를 연상시키는 미트 로프의 과장된 보컬 스타일이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던 짐 스타인먼의 드라마틱한 음악을 소화하기에 제격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혹자는 미트 로프를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미트 로프에 비하면 퀸의 프레디 머큐리 보컬은 잔잔해 보인다고. 짐 스타인먼은 이런 농담을 했다고도 한다. “만약 목소리가 큰 160Kg의 거구가 바그너스러운 10분짜리 폭발적인 노래를 부르는 시장이 있다면 그 시장은 우리 차지다.”



 

피터 팬 또는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의 의도는 피터 팬과 웬디의 관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조금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극장에 들어서면 객석 의자 위에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신문 ‘옵시디언 타임스’가 올려져 있다. 공연에서 설명되지 않는 인물들의 상황과 옵시디언이라 불리는 디스토피아 맨해튼의 상황을 정리해서 관객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한 친절한 의도로 보였다. 이 신문의 기사들엔 ‘과학자들도 설명해 내기 힘든 유전자의 변형’ 같은 글들이 쓰여 있다. 무대 위엔 커다란 오토바이 한 대와 노이즈 화면만 나오는 버려진 텔레비전들, 부서진 기타, 폐타이어 등과 같은 소품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공연은 스트랫의 독백이 노래로 연결되면서 시작된다. 미트 로프의 음악들이 그러하듯 폭발적인 에너지의 음악들로 가득 차 있고, 무대의 활용 때문인지 영상 또한 많이 사용한다. 무대 왼쪽으로는 마치 하수도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터널 형태의 출입구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기타 줄을 연상시키는 조명과 함께 고층 빌딩을 형상화한 세트가 들어서 있다. 이 세트는 2층짜리로 2층엔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세트가 있다. 배우들이 이 방 안에서 연기할 때는 라이브로 영상을 찍으며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를 큰 화면으로 보여준다. 무대는 스트랫이 리더로 있는 더 로스트의 숨겨진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팔코의 거실 또는 다이닝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무대 전환은 다른 대형 뮤지컬에서도 그러하듯 매끄럽게 진행되는데, 참신하다기보다는 ‘아, 저렇게도 쓰는구나’ 정도의 인상을 준다. 
 

흥미로웠던 것은 무대 위에서 사용되던 오토바이들과 자동차이다. 오토바이는 더 로스트의 멤버들과 스트랫이 타고 다니는데 얼핏 보면 진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교한 무대 장치의 일부분으로서 아주 영리하게 활용됐다. 너무 자주 등장했다면 조악했을 수도 있을 장치들이지만 적절하게 쓰고 빠지니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극 중 악역인 팔코와 그의 아내 슬론이 자신들의 젊은 시절 사랑을 노래할 때, 식탁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식탁보를 치우니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캐딜락으로 변하는 것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참신했다. 노래 후반부에는 그 장면을 지켜보던 그들의 딸 레이븐이 차를 무대 한쪽으로 밀어버리면서 마치 늪에 빠진 듯, 차가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이어서 막간 유머로 오케스트라 피트에 있던 연주자들이 망가진 악기들을 들고 나오며 배우들에게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가장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장면은 1막 마지막, 스트랫이 작품의 테마와도 같은 노래 ‘배트 아웃 오브 헬’을 부르며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 사고가 나는 모습이다. 슬로 모션으로 사고를 묘사하는데, 이때 스트랫이 타고 있던 바이크가 해체되며 공중으로 날아간다. 이 장면은 실제로 꽤나 신선했다. 어느 정도 무대와 무대 장치에 대한 그림은 그려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엔 이러한 분위기와 무대 장치들이 왜 선택되었고 또한 배경이 왜 디스토피아인지 의아했지만, 미트 로프의 예전 그 시절 뮤직비디오들을 보고 나니 이해가 됐다. 마치 그 뮤직비디오들을 무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제목 ‘지옥에서 나온 박쥐(배트 아웃 오브 헬)’나 포스터의 느낌으로는 마치 몬스터들 또한 나올 것 같지만 박쥐들은 공연 끝에 슬쩍 지나가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가사를 보면 ‘마치 지옥에서 나온 박쥐처럼’이라며 표현한 것이기에 사실 진짜 박쥐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더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해 보겠다. 나 자신이 배우이다 보니 아무래도 공연을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안 볼 수가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나 춤 실력은 어느 하나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특히 원래도 파워풀한 미트 로프의 음악을 두 시간이 넘도록 관객들과 호흡하며 부른다는 것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연기적인 면에서 나로서는 조금 과장된 부분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들이 없지 않았다. 과장된 연기는 이 글을 쓰며 나름의 리서치로 찾아본 미트 로프의 영상들을 보며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스트랫을 연기한 배우 앤드루 폴렉이 미트 로프의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창법 등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공부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미트 로프의 영상을 찾아본다면 그의 눈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배우로서는 원작자가 그런 강하고 거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견줄 수 있는 에너지를 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로맨스가 깔려 있는 작품이다 보니 몇몇 장면 또는 대사들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방지할 정도로 연기가 섬세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로서는 사실 걸리는 부분들이 꽤나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미트 로프 음악의 팬이라면 마치 록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아무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던 것 같다.



 

함께 즐기는 공연이라는 의미


사실 공연 초반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연기 부분에서 조금 실망하다 보니 이 작품을 리뷰로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2막 후반부를 향해 가면서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을 볼 때, 그것도 그저 한두 명이 아닌 대다수의 관객들이 흥이 넘치게 즐기는 것을 보고는 아차 싶었다. 공연이라는 것이 예술을 논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다뤄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같이 숨 쉬며 공연 자체를 즐겁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어느 순간 잊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공연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어쩌면 가장 좋은 작품은 창작자들도 관객들도 다 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공연이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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