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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킹콩>, 주인공이 노래하지 않는 이상한 뮤지컬 [No.183]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8-12-12 4,602

<킹콩>, 주인공이 노래하지 않는 이상한 뮤지컬

KINGKONG



 

시작부터 삐걱거린 대작 뮤지컬

지난 10월 31일, 오픈을 2주 정도 남긴 <킹콩>의 프로듀서들이 할로윈을 맞아 특별히 준비했던 낮 공연을 취소했다는 기사가 떴다. 프리뷰 기간에 작품을 조금씩 수정하는 것은 브로드웨이에서 일상적인 일이지만, 정식 오픈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공연을 취소하면서까지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은 불안한 조짐이다. 게다가 프로듀서들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작품은 2013년에 이미 브로드웨이에 올랐어야 했는데,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난 2018년에야 선보이게 된 이유는 그동안 여러 명의 작가와 작곡가가 교체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1월 8일 드디어 정식 오픈을 한 <킹콩>은 아니나 다를까, 작품의 아쉬움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관객들을 맞이했다. 
 

<킹콩>은 원시 부족 또는 킹콩을 연상시키는 드럼 소리가 강조된 짧은 멜로디가 울려 퍼지면서 시작된다. 1933년의 원작 영화 <킹콩>에 나왔을 법한 긴장감 넘치는 멜로디가 두어 번 흘러나오다 음악이 잦아들면, 무대 뒷면의 프로젝션을 통해 뉴욕의 고층 건물들이 마치 식물의 성장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쭉쭉 자라난다. 무대 위쪽에서는 인부 복장을 한 배우들이 크레인 줄을 타고 내려온다. 건축 현장을 연상시키는 드릴 소리를 추임새 삼은 멜로디와 노랫말은 무대를 가득 채우는 다양한 복장의 앙상블과 함께 관객들을 압도한다. 건축 현장을 드러내는 첫 장면의 멜로디는 20세기 초의 빅 밴드 스타일의 스윙 음악과 어우러진다. 이 가운데에서 주인공인 앤 대로가 고전적인 모양의 사각형 여행 가방을 들고 등장하는데, 그 전개 방향이 딱히 새롭지는 않다. 그는 아직 아무도 자기를 몰라도 앞으로 뉴욕의 여왕이 될 것이라는 당찬 다짐과 함께 오디션장으로 들어서지만, 오디션에서는 탈락하고야 만다. 우여곡절 끝에 가지고 있던 코트와 여행 가방까지 도둑맞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추운 몸을 녹인다. 음식을 주문하지 않을 거면 나가라는 종업원과 말다툼을 하는 와중에 그 옆에 앉아 있던 영화감독 칼 덴햄이 그녀를 도와주고 모험을 제안한다. 



 

내재적인 약점을 지닌 이야기

빠른 전개로 꽤 가쁘게 시작되는 뮤지컬 <킹콩>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창작진이 관객이 이 작품을 보러 오는 이유를 잘 잡아냈다는 의미이다. 또 한편으로는 ‘킹콩’이 가져다주는 규모나 유명세에 기대 그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킹콩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대체로 예상 가능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933년 영화로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이 의인화해서 만들어낸 괴물 아닌 괴물 ‘킹콩’이었다. 타자에 대한 식민주의적 관점, 구시대적인 성 역할, 저차원적인 인물 묘사 등처럼 시대에 뒤쳐져가는 <킹콩>의 내러티브가 계속 재생산되는 이유는 킹콩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탐험해 보는 데에 좋은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런 까닭에 킹콩은 늘 조연이 아닌 주연의 자리를 맡아 왔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져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은 인물들이 그들의 감정을 노래와 안무를 통해서 더 깊이, 더 세세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킹콩은 분명 조연이 아니며, 관객들 역시 스토리보다는 킹콩을 보러 온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킹콩>의 주인공 킹콩은 노래를 할 수도, 춤을 출 수도 없다. 이러한 문제점은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창작진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로젝트의 시작을 함께했던 극작가 크레이그 루커스가 호주 프리미어 공연 이후 어느 순간 팀을 떠나고,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프로젝트에 합류했지만 그도 곧 팀에서 하차했다. 크레이그 루커스를 대신해 투입된 극작가 마샤 노먼도 2016년 프로젝트에서 빠지면서 ‘노래하지 않는 주인공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이 이야기는 뮤지컬 속 인물의 내러티브를 전하는 데 대사와 안무, 그리고 노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연도 아닌 주인공이 노래나 안무를 하지 않는 뮤지컬이 있었던가.



 

이야기의 약점을 상쇄하는 스펙터클

<킹콩>이 정식으로 오픈하고 나서 업계의 리뷰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특히 <뉴욕 타임스>는 벤 브랜틀리와 제시 그린이 무자비하게 <킹콩>을 비난하는 대화를 리뷰로 게재했는데, 해당 리뷰는 필요 이상으로 까칠했다. 프로듀서들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톤으로 리뷰를 쓴 것에 정식으로 항의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적인 의견은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의 스펙터클은 꽤 볼만했다는 것이었다. 길게 느껴질 수 있는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그나마 덜 지루한 이유는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인형, 킹콩의 매력이었다. 물론 킹콩 이전에도 이런 볼거리는 있었다. 뮤지컬 <프로즌>의 울라프나 영국 내셔널 시어터의 연극 <워 호스>의 말 인형들은 정교한 제작 과정을 바탕으로 무대 위 퍼펫티어(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의 손을 거쳐 살아 있는 모습으로 브로드웨이를 거닐었다. 거대한 공룡 인형을 내세운 공연 ‘워킹 위드 다이너소어(Walking with Dinosaurs)’의 성공을 통해 그들이 만드는 대형 퍼펫의 가치를 인정받은 호주의 프로덕션 컴퍼니 글로벌 크리에이저스는 <킹콩>의 스펙터클한 부분을 완성했다. 6미터가 넘는 거대한 킹콩은 최대 10명의 퍼펫티어와 4명의 킹콩 표정 담당자들의 손길을 통해 배우와 교감했고, 이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킹콩의 움직임을 연출한 개빈 로빈스는 의식적인 움직임을 통해 몸의 운동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움직임을 완성하는 알렉산더 테크닉의 수료자다. 그는 리허설 동안 10명의 퍼펫티어의 움직임도 까다롭게 훈련을 시키며 킹콩을 빚어냈다. 이런 훈련 때문인지 검은 옷과 장갑을 끼고 움직이는 퍼펫티어들은 킹콩의 움직임에 대부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물론 그들이 완벽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퍼펫티어들의 움직임을 돕기 위해 박아둔 것 같은 킹콩 등의 은색 철심은 전체적으로 잿빛을 띠는 킹콩의 몸에 비해 너무 도드라진다. 그 철심을 타고 올라가는 퍼펫티어가 어쩔 수 없이 마치 로봇을 조작하기 위해 가슴팍이나 목덜미로 올라가는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킹콩의 움직임, 표정, 시선, 그리고 실시간으로 배우가 연기하는 킹콩의 목소리가 어우러졌을 때, 무대 위의 킹콩은 꽤 실감 나는 동물이었다. 
 

여기에 킹콩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무대 위 조명과 프로젝션이었다. 앤의 일행이 스컬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킹콩과 처음 대면하는 장면을 예를 들 수 있겠다. 이때 킹콩의 전신이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킹콩의 날카로운 이빨이 희끗희끗 드러난다. 이렇게 킹콩의 이미지를 두려운 존재로 그려내며, 관객들이 무대 위의 배우들과 비슷한 감정을 지니고 이야기에 동행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그리고 킹콩이 앤을 한 손에 쥐고 그를 향해 달려드는 칼과 그 일행의 공격을 피해 달리는 장면에서는 킹콩을 비추는 조명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꽤 어둡다. 대신 무대 뒤 스크린에 어지럽게 밝은 빛의 사선이 속도감 있게 지나간다. 사실 그 사선 자체는 현실감이 떨어지긴 하는데, 그 사선과 음향 효과가 킹콩의 움직임에 생명력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뉴욕에 잡혀 온 킹콩이 뉴욕 거리에서 도망을 치는 장면에서도 배경의 건물들이 속도감 있게 지나가는데, 심지어 배경과 퍼펫티어의 알맞은 합은 슬로 모션과 같은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1막에서 킹콩이 처음 등장하면 관객들이 정말 놀라서 웅성대고, 그 첫 시퀀스가 끝나면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것만 봐도 킹콩의 움직임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큰 인상을 남기는지 알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무대 장치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앤 일행이 배를 타고 스컬 아일랜드로 출항해 바다 위에 있는 장면이었다. 뉴욕의 항구를 떠나면 무대 상수의 바닥이 조금 올라와서 마치 뱃머리처럼 무대에 경사가 생기고, 여기에 위아래로 넘실대는 프로젝션이 더해지면 배를 타고 파도에 따라 좌우로 움직이는 배우들을 통해 배가 정말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킹콩의 여러 버전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킹콩이 앤을 데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 가슴을 치며 포효하고, 비행기와 싸우다가 결국 떨어지는 모습이다. 일단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무대 하수에 뒤가 살짝 비치는 스크린이 내려오고, 그 스크린 위로 유리창이 점점 내려가는(그래서 킹콩이 건물을 오르게 되는) 프로젝션을 투영했다. 그와 동시에 일단 크레인으로 킹콩을 공중에 들어 좌우로 살짝 움직이고, 그에 합을 맞춰 퍼펫티어들이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으로 킹콩이 빌딩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그려낸다. 그러다가 커튼이 내려와 걷히고 나면 킹콩은 이미 앤과 함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있다. 관객들은 킹콩 뒤의 벽에 나타나는 프로젝션과 음향 효과로 주위에 전투기가 배치된 것을 알게 되는데, 전투기들의 사격은 킹콩의 몸에 쏟아지듯 빗발치는 사선과 음향 효과로 연출된다. 그렇게 몇 차례 사격이 있고, 킹콩이 가슴을 치며 포효하지만, 곧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진다. 앤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작별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는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인 ‘Wonder’와 접목된다. 이때 마치 <미스 사이공>을 연상시키는 주홍빛 조명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데, 갑자기 뉴욕의 길거리에 내려온 앤이 앙상블과 함께 킹콩과의 경험을 통해 경이로움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두루뭉술하게 고무적인 내용으로 끝이 난다. 



 

시각적 볼거리만 남긴 무대

<킹콩>은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작품의 연출과 안무를 맡은 영국 출신 드류 맥오니는 <인 더 하이츠>의 안무를 맡아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우수안무가상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 외에도 안무의 비중이 높은 작품들의 연출과 안무를 맡아왔다. 이번 <킹콩>의 안무는 쉴 틈 없이 바쁘게 진행되는데, 이는 서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품인 것을 고려할 때 적절했다. 그러나 무대를 꽉 채우는 안무는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사족같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의 노래와 춤의 부재를 만회하려는 노력이었는지 모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군무 장면을 볼 때마다 왠지 숨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는 것은 꽤 불편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음악과 가사였다. 영화 음악을 주로 맡아 온 마리우스 드 브리스와 팝송을 주로 써온 호주 출신의 작곡·작사가 에디 퍼펙트의 음악은 진부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1막에서 앤이 등장하며 부르는 ‘Queen of the New York’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이미지를 제시한 것부터 2막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Wonder’에 이르기까지, 가사와 음악은 전체적인 연결고리가 부족했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가장 귓가에 맴돌았던 것이 킹콩의 포효였다는 점은 그 아쉬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1933년의 작품을 재탄생시키면서 이야기를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있긴 했다. 앤 대로를 여성주의적인 인물로 그리려 노력했는데, 그 탓인지 영화 제작자 칼 덴햄은 일차원적이면서 굉장히 이기적인 악역으로 드러났다. 앤 대로는 킹콩을 보고 공포의 비명을 지르는 인물이라기보다는 킹콩에 대항해서 그의 울음소리를 따라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닌 인물로 등장했다. 또 성공을 향한 욕망에 눈이 멀어 킹콩을 뉴욕으로 이끄는 덫을 놓는 데 중요한 역할이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킹콩의 탈출을 돕는 입체적인 인물로도 보인다. 그렇지만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의 진부함은 2018년 버전의 앤 대로의 새로움을 부각하는 데 장애물이었다. 킹콩을 제외하고 이 둘 외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는데, 에릭 로치펠트가 연기하는 럼피가 그 인물이다. 그는 앤 대로 역의 크리스티아나 핏츠나 칼 덴헴의 에릭 윌리엄 모리스보다 돋보였는데, 냉정하게 말하면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력 때문이었다.  
 

<킹콩>이 뮤지컬이 아닌 연극이나 음악극이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무려 3,500만 달러(약 359억)의 투자금을 받은 작품이 연극이나 음악극이었다면 투자금 회수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킹콩의 이야기를 고민해 보고 좀 더 효과적으로, 더 연극적으로 접근했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더 높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킹콩의 이야기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엔 위험 요소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2018년 브로드웨이로 돌아온 <킹콩>은 아무리 시각적으로 기억에 남을 작품이라고 해도, 모든 이야기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전달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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