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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CULTURE REVIEW]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잘 짜인 코미디지만 왠지 아쉬운 [No.183]

글 |박병성 사진제공 |신시컴퍼니 2018-12-23 4,475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잘 짜인 코미디지만 왠지 아쉬운  




11월의 어느 토요일 세종M씨어터 로비, 창밖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길게 천막을 치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과 길가에서 태극기를 들고 집회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친다. “저기, 혹시 개 한 마리 못 보셨나요? 요만한 불독인데요. 윈스톤이라고.” 복잡한 심경으로 창밖을 바라보다 개를 잃어버린 사람의 다급한 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공연장에서 개를 잃어버리다니, 목줄도 안 한 것인가, 근데 공연장에 개를 데려와도 되나, 별별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개를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2막에 등장해야 하는데 큰일났네.” 아하! 입가에 살짝 미소가 흐르고 이들의 놀이(Play)에 동참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객석에 들어서자 놀이는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관객들에게 개의 행방을 묻고 다니는 스태프들과 무대 세트를 수선 중인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닫히지 않는 문을 고치려고 하는 스태프는 벽난로 위 선반이 떨어지자 수습해 보지만 손이 부족하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 도움을 청하고 어쩔 수 없이 끌려 나간 관객은 엉망진창인 무대를 수습하는 데 손을 보탠다. 계속 열리는 문을 막고 떨어지려는 선반을 들고 있느라 관객은 들어오지도 계속 머물지도 못하고 난처하다. 객석에서는 연신 웃음이 터진다. 자 이제 작품은 자신이 코미디임을 소개했고 관객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정통 슬랩스틱 코미디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The Play That Goes Wrong)>은 충분한 웃음 예열을 하고 시작한다. 작품은 콘리 대학 드라마 연구회에서 올리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연극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을 올리는 과정을 극중극으로 보여준다. 공연 전 닫히지 않아 문제였던 문은 스태프가 정말 제대로 고쳐놓았는지 절대 열리지 않아 배우가 등장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른다. 배우들의 대응도 가지가지다. 등장하지 못한 배우는 무대 뒤에서 등장했다 치고 대화를 하는가 하면, 또 다른 배우는 무대 세트 옆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등장한다. 대본을 다 외우지 못한 배우는 적어놓은 단어를 잘못 읽어 실수하기 일쑤다. 이 정도는 애교다. 시체를 옮기는 도구가 망가져 홀로 남겨진 시체는 지렁이처럼 기어서 퇴장하고, 소품들이 뒤섞여 열쇠를 들고 꽃병에 메모를 하는가 하면, 문에 맞아 기절한 여배우를 대신해 스태프가 긴급 투입되고, 이제 막 연기에 재미를 붙인 스태프와 정신을 차린 여배우가 배역을 놓고 다툼을 벌인다. 프로 레슬링을 방불케하는 다툼이 무대 세트 너머로 간간이 보인다. 저러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겠다 싶을 찰나 스태프가 여배우를 때려눕히고 역할을 차지한다. 그것도 잠시 그녀 역시 문에 맞아 기절하고 여배우 캐릭터와는 전혀 닮지 않은, 무대를 수습하던 음향감독이 여배우 역을 맡게 된다. 무너지던 무대를 간신히 수습하면서 진행하던 공연은 마지막에 무대 세트의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무너지면서 연극의 제목처럼 ‘점점 잘못되어 가는 연극’의 막을 내린다. 작품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용은 도울 뿐 작품은 극중극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을 만들어가는 배우와 스태프 들의 사투에 가까운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잘 짜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은 잘 만든 정통 슬랩스틱 코미디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내에서 이런 작품은 좀체 보기 힘들다. 코미디에 로맨스가 붙거나 아니면 드라마가 붙지 않은 순도 100% 코미디를 무대에서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이와 유사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패러디로 웃음을 주었던 뮤지컬 <스팸어랏>이나 꽤 괜찮은 드라마가 있었던 <프로듀서스> 역시 국내 시장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이상한 시나리오를 쓰고 지킬 앤 하이드처럼 감정 기복이 심했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B급 코미디 캐릭터 그녀(전지현 분)는 작품 말미에 산 저편에 올라 “견우야~ 미안해, 나도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봐”라며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도 엽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녀의 드라마가 없었다면 꽤나 서운했을 것이다. 우리 관객에게 무대는 그저 즐겁게 웃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 곳이다. 공연의 양대 산맥인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호평받았던 공연을 레플리카 형식으로 올렸지만 순도 100% 코미디는 우리 관객의 정서에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웃음을 만들어가는 방법은 아쉽다. 잘 짜인 코미디의 경우 배우들이 숙련될수록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비교적 공연 초기에 본 영향도 없지 않겠지만 너무나도 잘 짠 듯한 극 전개는 상황 자체는 웃기지만 웃음에 브레이크를 건다. 배우들이 극 상황에 인물로 들어가서 상황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짜인 기획 아래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장면이 많았다. 즉, 극 중 배우가 난감한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주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다는 인상이 짙었다. 전자의 경우라면 관객이 극 중 인물에 충분히 동화되어 난처한 상황에 공감하면서 웃음짓지만 후자의 경우는 상황 자체가 재밌을 뿐 공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이런 것이다. 1막에서 소품이 바뀌면서 꽃병에 열쇠로 메모하고 위스키 대신 빙초산을 마시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인터미션을 거친 2막에서는 적어도 소품의 위치 정도는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2막이 시작해도 소품보다 더 큰 무대 세트를 수선하지 못해 애먹고 있긴 했지만 1막의 큰 실수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웃긴 상황을 지속하려는 목적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배우와 스태프 들이 그렇게 엉망이 되어 가는 공연을 어떻게든 마무리하려는 목적이나 이유가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지겨운 클리셰일지 모르겠지만 “Show must go on”이라는 연극 정신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배우나 스태프에게 그저 코미디를 하고 있을 뿐 극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나 정신이 보이지 않았다. “극이 엉망진창이다”는 말이 그대로 공연 중에 들리는 실수를 했던 음향감독은 극을 완성시키려는 사람인지 망치려는 사람인지 의문스러웠다. 음향 실수를 하고도 뻔뻔하게 코믹한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반감이 들었던 것은 직업병이었을까. 극 중 배우들의 캐릭터가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연기의 완성도를 떠나 상황 파악을 못하고 순수하게 관객의 반응에 기뻐하는 맥스와 대본을 다 외우지 못해 말실수를 하는 데니스 정도가 어떤 인물인지 느껴졌을 뿐 대부분의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을 연기하고 있지만 많은 장면에서 어떤 인물이 그 상황에 빠져 있는지 모호했다. 




연극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즐겼으며 장면 장면에서 큰 웃음이 터졌고 심지어 필자도 몇몇 장면에서는 크게 웃었지만 마냥 즐겁게만 관람할 수는 없었다. 코미디의 최종 목표는 즐거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진정성의 요구가 지나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한 웃음은 잘 짜인 코믹한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 놓인 인물에 공감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믿는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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