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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더 셰어 쇼>, 대체 불가한 아이콘의 삶 [No.184]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9-01-21 4,825

 

<더 셰어 쇼>, 대체 불가한 아이콘의 삶

The Cher Show

 


 

무대에서 태어난 전설의 아이콘

내가 셰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90년 말의 히트곡 ‘Believe’때문이었다. 긴 머리, 늘씬한 몸과는 다르게 중성적이고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다른 여가수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굵은 목소리로 시원하게 내뻗는 그녀의 발성은 당시 획기적이었던 오토튠이 만들어낸 기계음과 합쳐져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Believe’가 수록된 앨범이 무려 셰어의 22번째 음반이며, 그녀가 이미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엔터테이너라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약 30년이 지난 지금, 셰어는 일흔이 넘은 나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가수로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 팔레스 호텔에서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3년간 200회 가까운 콘서트를 열었고, 2018년부터는 2년간 미국뿐 아니라 런던 등에서 순회공연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여름에는 영화 <맘마미아! 2>에서 소피의 할머니로 등장했고, 아바(ABBA)의 노래를 그녀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리메이크한 앨범을 발매했다. 그리고 지난 해엔 매년 미국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사람 중 다섯 명을 선정해 공을 기리는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다. 
 

50년 넘게 현재진행형인 셰어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은 시작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로 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을 이용해 가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브로드웨이에 소개하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2005년 <저지 보이스>와 2013년 <뷰티풀>은 상업성과 작품성 양쪽에서도 꽤 성공적이었다. <저지 보이스>가 포시즌스의 리드 싱어 프랭키 밸리의 사랑, 그룹의 결합과 해체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뷰티풀>은 가수이자 작곡가인 캐롤 킹이 그녀의 색깔을 찾아가게 되는 삶의 이야기들을 그녀의 노래로 풀어냈다. 물론 <더 셰어 쇼>도 과거 셰어가 불렀던 노래들을 재구성했다. 숫기 없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소녀 셰릴린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의상만큼이나 시원한 가창력을 뽐내며, 솔직하고 직설적인 이미지의 셰어로 변신한다. 작품은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모습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뷰티풀>과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셰어는 싱어송라이터인 캐롤 킹과는 다르게 퍼포머로서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접근을 해야만 했다.



 

세 명이 연기하는 한 명의 셰어

<더 셰어 쇼>에는 세 명의 셰어가 등장한다. 첫 무대를 여는 인물은 성인 셰어를 상징하는 스타다. 막이 오르면 LP판을 연상시키는 둥근 패널 위로 셰어 쇼의 휘황찬란한 로고가 투영된다. 그 뒤로 전구가 달린 구형의 아치가 내려오면, 무대 위로 선원 복장의 남성 앙상블들이 한 명씩 등장한다. 이어 셰어의 히트곡 ‘If I Could Turn Back Time’의 전주가 흐르면서, 몸매가 드러난 화려한 검은 의상을 입은 스타가 등장한다. 선원들과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다가 곧 노래를 멈추고 관객에게 말을 건다. 마치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브로드웨이에 오기 전 시카고 공연 당시 ‘버라이어티 쇼’의 틀을 가지고 있었던 공연을 닮았다. 물론 뉴욕으로 오면서 이런 형식은 사라졌지만 벽을 허물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나, 1970년대 셰어가 진행한 버라이어티 쇼의 제목을 작품명으로 그대로 사용한 것은 과거를 상기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스타는 첫 대사로 선원들이랑 같이 춤을 추는 것은 이미 너무 구시대적이며, 이제 여성이 날개를 달았으니 오늘은 좀 다르게 해보겠다고 밝힌다. 퇴장하는 남성 앙상블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바로 여성 앙상블이다. 이들이 ‘If I Could Turn Back Time’을 같이 부르고 나면, 그제야 본격적으로 <더 셰어 쇼>가 시작된다.
 

다 자란 여자가 몸에 달라붙는 반짝이 의상을 ‘왜’ 입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묻는 스타는 아마도 자신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 때문이라며 자문자답을 한다. 이어 자신은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서,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특별 손님인 어린 셰어 ‘베이브’와 소녀 셰어 ‘레이디’를 무대 위로 부른다. 이들은 등장부터 서로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이는 셰어가 지닌 자신감을 잘 드러낸다. 그렇게 셋은 시간 여행을 떠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셰어의 인생을 시간 순으로 펼쳐낸다. 열두 살의 셰릴린이 엄마에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받은 상처를 말하자, 엄마는 오히려 특별한 사람이라며 달랜다. 이어 신데렐라 영화를 보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소니 보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듀엣을 결성해 셰어라는 이름으로 성공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또 파산했다가 소니와 셰어의 코미디 쇼의 MC로 재기하고, 소니와 헤어지고 독립을 한 이후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배우로서도 인정받는 과정이 이어진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니의 죽음 이후 셰어가 ‘Believe’와 댄스, 팝 장르의 음악으로 성공하는 모습에 이어 지금까지 이른다. 



 

‘엔터테이너’ 셰어를 위해

굳이 첫 장면을 자세하게 적은 이유는 <더 셰어 쇼>의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세 명의 인물은 셰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해 그녀의 내적 대화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소니를 처음 만날 때 베이브가 쭈뼛거리고 있으면 레이디가 나서서 소니에게 말을 건다. 또 레이디가 소니와 헤어질 것을 고민할 때에도 베이브가 두 사람의 다정했던 시간을 상기시키며, 소니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중첩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쉽다. 세 사람의 대화가 단순한 설명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관객은 셰어가 겪는 고민을 함께 느낄 수는 없다. 이로 인해 셰어가 혼자 겪었을 고민의 깊이는 현저하게 얕아진다. 
 

<더 셰어 쇼>의 대본은 <저지 보이스>의 대본을 맡았던 릭 엘리스가 썼다. <저지 보이스>가 쇼 뮤지컬에 가까웠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여러모로 많은 변화가 있던 사회적 상황 안에서 셰어가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퍼포머로서 각각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들을 다뤄야만 했다. 그러나 릭 엘리스는 이런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작품을 쓴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등장인물의 간략한 대사가 익숙한 노래로 이어지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보편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셰어의 결혼, 출산, 헤어짐, 아티스트로 매니저였던 소니와 겪는 갈등 등 무거운 소재들을 묵직하게 다뤄주었다면, 셰어를 향한 공감대가 높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셰어가 <더 셰어 쇼>의 프로듀싱에 직접 참여해서 의사 결정에 관여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보여주고 싶은 자신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셰어의 삶 속에서 가장 아프지만 가장 자랑스러운 손가락인 그녀의 아들, 채즈 보노(셰어와 소니의 딸로 태어났으나 성전환 수술을 받아 남성으로 살고 있다)를 비롯해서 자녀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 또 그녀가 직접 작곡한 노래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는 한 곡도 포함되지 않았다. 셰어는 미국 게이 문화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고, 무대에서도 그녀의 열렬한 게이 팬들을 언급하기는 하지만(예를 들면 무대 위에서 “신사, 숙녀, 그리고 화려한 신사분들” 하고 인사한다) 게이 문화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셰어가 창작 과정에 얼마나 깊이 참여했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더 셰어 쇼>는 그녀가 지금까지 겪은 어려움을 물리치고 연예계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전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자신에게 보내는 나름의 공로상 같은 느낌이다. 마치 열심히 살아온 인생을 향한 찬사랄까. 게다가 프로듀서로서 상업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서 풀어내기 어려운 채즈에 대한 이야기,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자작곡 그리고 게이들의 아이콘이란 평가에 대해서 더 깊게 다루기 곤란했는지 모른다. 보수적인 관객들이 보기에도 불편하지 않아야 하니까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왜 <더 셰어 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셰어만큼 멋지지 않은지 조금 이해된다. 셰어가 독보적인 것은 자신감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용기와 열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자이자 인간으로서 당당했고, 성공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대 위 셰어의 이야기는 단순히 현재의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대체해 <더 셰어 쇼>를 겉으로는 반짝거리지만, 속으로는 뻔한 이야기로 만들었다.

 

아쉬움을 달래는 의상 그리고 배우

두 시간 반 정도 셰어의 일대기를 듣다 보면 그저 그런 위인전을 읽은 기분이 든다. 앞서 말한 이유로 셰어의 매력이 줄어들었는데, 이야기 전개도 그렇다. 극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은 소니와 헤어진 장면인데, 이 갈등도 짧은 대사에 노래를 더하며 풀어내 전체적으로 극적 긴장감은 높지 않다. 
 

공연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밥 맥키가 디자인한 셰어의 의상이다. 셰어가 당시 대중문화사에서 큰 인상을 남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말도 안 되게 화려한 의상이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의상을 디자인한 사람이 밥 맥키라는 것을 생각하면, 프로덕션에서 그를 의상디자이너로 고용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특히, 1막 중간쯤 소니와 셰어가 함께 코미디 쇼를 진행하며 성공 가도를 달릴 때, 당시 기준으로 퇴폐적인 복장에 대해서 제재가 들어온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셰어는 1979년 리메이크한 블루스의 고전 ‘Ain’t Nobody’s Business If I Do’를 부르면서 당시 그녀가 입었던 의상들을 앙상블과 함께 선보인다. 이 장면은 퀵 체인지도 인상적이지만, 열댓 벌의 의상들이 그것 그대로 셰어라는 인물의 다양한 매력을 더하는 요소로 사용돼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더 깊고 폭넓게 셰어를 그려내 준다.
 

이번 작품을 통해 브로드웨이에 처음 데뷔한 미카엘라 다이아몬드의 베이브와 브로드웨이의 신인 틸 윅스의 레이디는 스테파니 블록의 스타와 함께 셰어의 목소리와 창법, 움직임을 어색함 없이 잘 소화했다. 또한 스테파니 블록, 틸 윅스, 그리고 미카엘라 다이아몬드는 각각 다른 나이의 셰어를 연기하면서 목소리 톤, 움직임, 그리고 태도에 이르기까지 셰어의 다양한 모습을 잘 그려준다. 특히 미카엘라 다이아몬드는 이제 막 대학교 입학을 앞둔 스무 살이 안 된 신예로 셰어의 시원시원한 창법을 거침없이 연기한다. 1막에서는 숫기 없는 어린 시절의 셰어를 연기하지만, 2막에서는 ‘The Beat Goes On’을 부르면서 황금색 찰랑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셰어가 가수로서 성공하고 배우로서 인정받기까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기적으로는 ‘스타’인 셰어지만, 미카엘라가 노래하고 연기하는 이 장면은 유명해지고 싶었던 어린 소녀 셰어가 엔터테이너 셰어와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카엘라 다이아몬드는 이런 뉘앙스를 목소리와 눈빛, 몸짓으로 돋보이게 표현해 줬다. 크리스토퍼 개틀리의 안무는 전체적으로 특별하지 않지만, 이 장면에서는 어깨와 손목의 움직임으로 간결한 동작들을 주로 사용해 인상을 남긴다. 이로 인해 어린 셰어를 연기한 미카엘라는 수줍지만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뿐만 아니라 자로드 스펙터는 <저지 보이스>와 <뷰티풀>에 출연했던 배우로, 이번에 소니 역할을 맡아 특유의 콧소리와 높은 목소리를 바탕으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연기했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셰어의 콘서트를 한번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딱 붙는 살색 타이즈에 반짝이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셰어의 카리스마를 직접 보면 어떨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의 가치관에 셰어를 맞춰서 더 멋진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않더라도, 셰어는 그 자체로 멋있는 인물이다. 뮤지컬 역시 이 부분을 좀 더 있는 그대로 그려냈더라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셰어는 늘 그래왔듯이 이 뮤지컬의 성패에 관계없이 지금처럼 그녀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볼만한 <더 셰어 쇼>가 아닌가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4호 2019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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