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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4차 산업혁명과 공연의 진화 [No.187]

글 |박병성 2019-04-12 6,318

4차 산업혁명과 공연의 진화




피터 플래허티의 발표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가 공연에까지 번진 지도 오래다. 3차 혁명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가 지배하는 세상으로의 변화였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3D 프린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시키는 세상으로의 발전이다. 컴퓨터가 체스는 이겨도 바둑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알파고가 무참히 무너뜨리는 광경을 목격했고, 수백 개 드론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확인했으며, 포켓몬고를 통해 증강현실을 생생하게 공부했다. 일상뿐만 아니라 공연에서도 최첨단 기술이 도입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로봇이 출연하는 연극, AI 작곡가와 인간이 경쟁하는 공연, 홀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영상 기술의 도입 등 이미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보수적인 장르라는 공연에도 조심스럽게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공연 예술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가 몇 차례 열렸다. 그중 지난 2월 15일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열렸던 컨퍼런스 ‘4ir Performing Arts Conference & Stage’에서 발제자로 나온 피터 플래허티(Peter Flaherty) 교수의 발표를 흥미롭게 들었다. 



 

공연 예술과 4차 산업혁명의 만남

4차 산업혁명과 공연에 대한 발표를 듣다 보면 영상 예술이나 시각 예술에서는 어느 정도 변화가 느껴지지만 공연 예술 측면에서 미진한 느낌을 받는다. 필자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고 충분한 사례를 알지 못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공연의 일회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은 현장에서 발생했다 소멸하는 장르이다. 현장에서의 라이브한 경험이 공연의 핵심이고 매력이다. 아직까지 4차 혁명의 기술로 공연의 현재성을 극복해서 구현해 낸 사례를 접하기 힘들다. 앞서 말한 컨퍼런스에서 두 번째 발제자로 VR 인터랙티브 뮤지컬 영화를 제작한 컴퍼니 숨의 고충길 대표가 나섰다. 연극 <혜경궁 홍씨>와 360 VR로 촬영한 뮤지컬 <햄릿>의 사례가 흥미로웠지만 이것은 공연을 영상화한 영상물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공연이 아니다. 시각 예술에서 2차원의 미술품을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통해 만지고 경험하게 하면서 시각 예술의 본질을 넘어서는 것과 달리 공연 예술에서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대표라고 하는 기술이 공연의 도구로 사용될 뿐, 그것이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자리하지 못한다. 로봇이 등장하는 연극 <사요나라>에서는 극 중 캐릭터인 로봇을 진짜 로봇이 연기했을 뿐 기술을 통해 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고 볼 순 없다. 뮤지컬의 배경으로 이용되는 영상이나 홀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피터 플래허티 교수의 발제가 흥미로웠던 것은 사례 위주의 발표를 넘어 기술과 공연 예술이 만나 확장되는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개념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미리 촬영된 영상과 라이브 영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자신의 <수퍼비전(Supervision)>을 보여주며 이것이 무대에 영화를 투사한 것인지, 아니면 영상이 포함된 공연인지를 묻는다. 그는 영상 기술의 발전을 통한 가상현실과 실재의 결합으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그의 작업을 공연 예술 영역에 포함시킨다. 자신의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요소들로 현장성(Liveness), 몰입(Immersion), 참여(Participation)를 중요하게 언급하며 왜 자신의 작업이 공연 예술 분야에 속할 수 있는지를 점검한다. 

<수퍼비전(Supervision)>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을 공연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 <더 서러것(The Surrogate)>는 관객이 특수 안경을 쓰고 조이스틱을 이용해 집 안의 비밀 통로를 돌아다니며 그 집 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보게 된다. 그들은 엿보고 있는 관객을 의식하며 말을 걸기도 하고 반응한다. 관객은 조이스틱을 이용해 그들이 있는 방을 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을 돌아다닐 수도 있다. 지금은 특수 안경과 조이스틱을 이용해야 해서 조정이 불편하지만 기술이 발전해 안경이 간소화되고 조이스틱이 마치 신체 일부처럼 편해진다면 관객은 마치 영상 속에 들어간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렉티브한 반응을 통해 관객이 경험한 작품은 혼자만의 유일한 경험이 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공연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완전한 교감이라 볼 수 없고 이미 만들어진 영상을 선택적으로 볼 수 있다는 면에서 공연 예술보다 진화된 미디어 아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을 더 지지하든 피터 교수의 논의는 공연 예술보다는 영상 예술에 적용되었을 때 더 효과적이다. 물론 피터 교수가 강조하는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이 공연에 몰입감을 증가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어쨌든 현실을 모방한 것으로 현실을 능가하기는 힘들다. 마이클 잭슨의 홀로그램이 마이클 잭슨 자체를 능가할 수는 없다. 연극은 연극적인 방식만으로도 현장에서 실재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현장성을 주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충분히 몰입감을 주며, 이머시브 공연이나 마당극 같은 연극적 방식을 통해 관객을 극 속에 참여시킨다. 피터 교수의 논의는 영상이 연극적 핵심 요소인 현장성, 몰입, 참여를 통해 공연 예술적 차원의 경험을 하게 해주기 때문에 영상 예술의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공연 예술의 관점에서 그의 이러한 주장이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강조하는 현장감, 몰입, 참여 방식을 공연 예술에서는 이미 아날로그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이러한 특징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상호작용적이고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

그의 발표에서 또 하나 흥미를 끈 것은 새로운 서사에 대한 이야기다. 관객들의 참여와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의 서사는 기존 방식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관객들의 끊임없는 참여로 이루어지는 작품에서는 선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적이고 비선형적인 이야기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관람자의 선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이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같은 대수롭지 않은 선택지를 두고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변하고 상영 시간도 바뀌게 된다. 관객이 게임처럼 즐기는 이 영화는 일반 영화처럼 선형적이고 유기적인 서사를 취하기는 힘들다. 인터렉티브한 이머시브 공연인 <슬립 노 모어>도 마찬가지다. 5층짜리 호텔에서 벌어지는 『맥베스』 이야기를 관객들이 전시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관람하는 이 작품은 관객의 선택에 따라 그가 관람한 작품의 서사가 달라진다. 이런 작품에서 이야기는 선형적으로 흐를 수 없다. 피터 교수는 비선형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이야기를 신체적인 방식으로 조직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는 그의 미디어 아트를 떠올리면 좀 더 이해가 된다. <더 서러것(The Surrogate)>에서 관객은 도구의 도움으로 영상 속 현실에 참여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특수 안경이나 조이스틱을 도구로 반응하게 된다. 마치 우리 손이 인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작품과 상호 교감하며 진행하는 것은 뇌가 아니라 몸이다. 참여자의 몸 자체가 이야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신호등이고 몸이 이야기의 진행자가 된다. 피터 교수의 발표는 4차 산업혁명과 공연 예술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여전히 말끔한 혜안을 주지는 못하지만 이전의 논의에서는 한 걸음 나아간 예술 이론적 차원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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