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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 신경과 피로 이루어진 두 남녀에 대한 보고서, 테레즈 라캥 [No.190]

글 |김주연 공연 칼럼니스트 2019-07-29 3,418

신경과 피로 이루어진 두 남녀에 대한 보고서

『테레즈 라캥』   

 

글에도 점성이 있다면,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은 한 줄 한 줄 진득한 땀과 피, 그리고 신경을 자극하는 언어들이 책을 읽는 내내 뇌를 휘어 감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성이자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수많은 예술에 영감을 전해 온 소설 『테레즈 라캥』을 소개한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에밀 졸라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나나』와 『목로주점』의 작가 등 그를 수식하는 문구는 수없이 많지만, 여전히 에밀 졸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드레퓌스 사건’일 것이다. 작가로서의 모든 명예와 신념을 걸고서 오직 펜 하나로 전 유럽의 지성과 양심을 일깨운 이 사건을 통해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 되었고, 그의 선언문 ‘나는 고발한다’는 그의 모든 저작들을 합친 것보다 더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글이 되었다. 

1894년, 프랑스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 유형을 선고받았다. 본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문서상의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군부는 신속히 판결을 내리고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들을 묵살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드레퓌스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후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군부는 이를 은폐하고, 심지어는 진범 에스테라지 소령에 대한 형식적인 심문과 재판을 통해 그를 무죄 석방하기까지 했다. 

재판 결과가 공개된 직후, 에밀 졸라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으로 <나는 고발한다>라는 선언문을 <로로르>지에 실었고, 이를 계기로 전 프랑스가 재심을 요구하는 드레퓌스파와 이에 반대하는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긴 투쟁 끝에 1899년 드레퓌스는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었고, 사건 12년 만인 1906년에 드디어 그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1789년 대혁명 이후 프랑스를 가장 뜨겁게,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분열시킨 이 사건에서 졸라의 단호한 판단과 용기는 분명 드레퓌스파의 승리를 이끈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인간의 비극에 현미경을 들이대다 

드레퓌스 사건이 해결된 것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일이었지만, 문학적으로도 심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고발한다>에서 졸라는 “전 세계 앞에서 나는 그가 무죄라고 맹세합니다. 나의 40년간의 역작과 그로 얻은 권위와 명성을 걸겠습니다. 그가 무죄가 아니라면 내 전 작품이 소멸되어도 좋습니다”고 선언했는데, 하마터면 우리는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와 걸작들을 한꺼번에 잃을 뻔했던 것이다.

당대의 비참한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한 사실주의 문학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자연주의 문학은 말 그대로 문학에 자연과학적 방식, 즉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도입한 사조를 의미한다. 졸라, 모파상, 공쿠르 형제를 중심으로 한 이들 자연주의 작가들은 현미경을 들이댄 듯 날카롭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의 비극을 그려내었으며, 특히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유전’과 ‘환경’의 요소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러한 자연주의 문학의 서막을 알린 작품이자 졸라에게 작가로서 명성을 알려준 첫 작품이 바로 『테레즈 라캥』이다. 

어린 시절 고모 집에 맡겨진 뒤, 병약한 사촌 카미유를 돌보다 그의 아내가 되어 하루하루 창백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테레즈는 어느 날 카미유의 친구이자 짐승 같은 남성성을 지닌 로랑을 만난 뒤 억눌러 온 욕망에 눈을 뜬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피해 밀회를 거듭하던 두 사람은 결국 카미유를 살해한 뒤 치밀한 작전으로 시어머니의 신뢰를 얻어 재혼에 성공하지만, 살해 이후 밀려오는 죄책감과 서로를 향한 환멸로 괴로워하다 결국 동반 자살로 죽음을 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너무나 인간적인 

『테레즈 라캥』의 서문에서 졸라는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길 원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이 소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각 장이 기묘한 생리학적 경우에 대한 연구임을 알게 될 것이다”(문학동네, 2003 발췌)라며 작가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심지어 그는 “나는 해부학자가 시체에 행하는 것과 같은 분석적인 작업을 살아 있는 두 육체에 행한 것뿐이다”라고 표현했는데, 확실히 테레즈와 로랑의 비극적 파멸을 찬찬히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에는 어떤 인간적인 공감이나 동정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거나 벌하려는 의도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살아왔고, 어떤 욕망에 사로잡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 건조한 음성으로 들려줄 뿐이다.  

그러나 이렇듯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고 나면 테레즈와 로랑이 단순히 피와 신경으로 이루어진 동물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욕망과 죄책감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들로 느껴지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졸라의 치밀하고 날카로운 분석력과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력에 힘입은 바 크다. 졸라는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듯 객관적으로 테레즈와 로랑을 관찰하고 그들의 파멸을 기록하려 했지만, 그 시선과 묘사가 너무나 생생하다 보니 결국 독자로서는 묵직한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두 인간을 바로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환경에 대한 묘사 역시 얼마나 촘촘하고 리얼한지, 『테레즈 라캥』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테레즈가 살고 있는 파리 뒷골목의 어둡고 눅눅한 공기와 음습한 하수구 냄새까지 배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작가로서 졸라의 재능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테레즈 라캥』은 그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주고 자연주의 문학의 서막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당대와 이후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인상주의 화가의 거장 중 하나인 드가는 테레즈와 로랑의 결혼 첫날밤을 묘사한 기묘한 그림 <실내(The Interior)>를 남겼고, 그동안 원작 소설을 각색한 연극과 영화도 여러 차례 제작되었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2013년에 개봉한 찰리 스트레이턴 감독, 엘리자베스 올슨, 오스카 아이삭 주연의 동명 영화(원제 )가 있으며, 박찬욱 감독 역시 <박쥐>(2009)의 영감을 『테레즈 라캥』으로부터 받았음을 밝힌 바 있다. 강량원 연출 및 극단 동의 대표작 중 하나인 <테레즈 라캥> 또한 미니멀한 무대와 절제된 언어, 그리고 배우 신체의 동물적인 감각을 최대한 살린 집요한 동작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피와 신경으로 이루어진, 그럼에도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두 남녀에 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졸라의 『테레즈 라캥』은 이렇듯 많은 예술가들의 해석을 거치며 더욱 생생하고 매력적인 형상을 끊임없이 창조해 내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0호 2019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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