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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퇴근길 현상, 무엇이 문제인가 [No.191]

글 |배경희 2019-08-13 14,333

퇴근길 과열 현상 

배우와 관객, 제작사가 말하다

 

퇴근길 사진, 퇴근길 후기, 퇴근길 논란. 매일 밤 공연 종료 후 공연 팬들의 SNS에 자주 올라오는 이슈 중 하나는 그날 공연의 퇴근길 이야기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현장에서 찍은 배우 사진과 참여 후기를 나누는 것이지만, 때론 퇴근길에 참여한 일부 관객의 태도를 두고 가열찬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퇴근길의 진행자와 참여자가 되는 배우와 관객,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제작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퇴근길 현상, 무엇이 문제인가                                      

 

공연을 재미있게 관람한 관객이 자신에게 감동을 준 배우를 기다렸다가 사인을 받는 모습은 어느 나라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어느 시점에 갑작스레 생겨난 최신 트렌드도 아니다. 그런데 왜 국내 공연계에서는 최근 들어 부쩍 퇴근길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특수한 성질을 띠는 보편적 현상

지난 6월, 공연 마니아 사이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한 관객의 무례한 언행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배우가 앞으로 퇴근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소식이 트위터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당 사건은 즉각 인터넷 법정에 올라 퇴근길에 대한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고, 이미 끊임없이 반복되는 퇴근길 논란에 피로도가 누적된 일부 마니아들은 퇴근길 폐지에 목소리를 높였다. “배우와 관객, 또는 관객과 관객 사이에 지켜야 할 선을 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퇴근길은 없어져야 한다.”

공연 종료 후 극장 밖으로 퇴근하는 배우와 극장 주변에서 이를 기다린 관객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만남(공식 행사의 일환이 아니므로)을 지칭하는 퇴근길. 평일 밤 10시 전후 극장 밀집 지역인 대학로 거리를 걷다보면 기다란 퇴근길 줄을 쉽게 목격할 수 있듯 국내 공연계에서 퇴근길이 하나의 팬덤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매일 밤 퇴근길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이SNS상에서 이슈로 재생산되면서 일각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채 각종 구설수를 만드는 퇴근길은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퇴근길 논란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퇴근길은 국내 공연계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퇴근길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극장가에도 당연히 존재한다. 당장 인터넷을 켜고 구글에 ‘Stage Door(출연자 출입구)’ 두 단어만 검색해 봐도 ‘스테이지 도어 베테랑’들이 친절하게 극장별 출입구 위치를 정리해 놓은 정보가 줄줄이 나올 정도. 물론 그들이 퇴근길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당연히’라고 강조해 쓴 이유는 재미있게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 해당 공연에 출연한 배우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퇴근길의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특수한 성격을 띤다는 데 있다. 

 

무엇을 위한 퇴근길인가

해외의 경우 퇴근길이 배우의 자발적인 의지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5~10분 이내에 간단히 이루어지는 반면,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퇴근길을 진행하는 배우도, 이에 참여하는 관객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퇴근길을 소비한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말 그대로 배우들이 퇴근하는 길에 자신을 기다려준 관객들 중 (운이 좋은) 몇몇에게 팬 서비스 차원에서 사인을 해주거나 사진을 찍어주는 게 퇴근길의 전부라면, 현재 대학로에서 진행되는 대다수의 퇴근길은 “온라인상에 관련 내용이 사전 공지되고 현장에서 이를 진행해 줄 누군가의 수고가 필요”하며, “공연 종료 후 의무적으로 진행해야 되는 공연의 필수 코스”처럼 굳어지고 있다. 배우와 관객, 관계자 모든 집단에서 “대학로 공연의 티켓 값은 공연뿐 아니라 퇴근길 서비스가 포함된 가격이다”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 퇴근길 참여 인원이 늘어나자 팬클럽 차원에서 이를 관리하기 위해 배우별 ‘퇴근길 규칙’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퇴근길은 암묵적인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식 행사 같은 성격이 강해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관객들이 생각하는 퇴근길은 ‘수당 없는 야근’이라는 세 단어로 설명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당신이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거래처 고객이 붙잡는다면 어떻겠는가. 퇴근길은 공연이 끝나고 피곤함을 느낄 배우에게 팬 서비스라는 명목 아래 또 한 번 연기를 시키는 일종의 갑질이다.”

공연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이 같은 퇴근길 과열 현상을 더욱 우려하는 이유는 장르의 성격이 다른 공연 예술계에 아이돌 팬덤 문화가 그대로 유입돼 퇴근길 자체가 점차 배우와 관객의 매개체인 ‘작품’이 사라진 배우 개인의 팬미팅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퇴근길이 과열되면서 퇴근길에 가기 위해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등장했고, 실제 퇴근길을 통해 배우의 인기가 올라가는 사례를 종종 봤다. 하지만 배우가 능력을 펼쳐야 할 곳은 무대 아닐까. 퇴근길은 배우가 공연을 보러 온 관객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관객은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에게 감사를 전하는 자리일 뿐이다. 의미가 변질되는 퇴근길은 배우와 관객 양쪽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위험한 비즈니스일지도 모른다.” 아이돌 팬덤 문화처럼 변해가는 퇴근길 분위기에 우려를 표한 관객 설문 응답자의 이 같은 발언은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퇴근길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물론 모든 퇴근길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퇴근길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뒤이어 나올 배우들의 퇴근길 설문 조사 내용에서 주목할 대목은 배우들은 퇴근길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일각의 우려와 달리 퇴근길을 공연을 보러 와준 관객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또한 퇴근길에서 관객들이 보여주는 응원은 배우 자신에게 힘이 된다고 했다. “공연 후 배우를 기다렸다가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퇴근길을 관객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일부 관객들의 논리가 현재 한국 뮤지컬 시장의 퇴근길 문화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퇴근길 문화는 얼마든지 긍정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배우와 관객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존중해 준다면 말이다.” 이는 어느 배우의 개인 의견이지만, 퇴근길 논란에 대해 고민해 본 다수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일부 퇴근길에 문제가 있으니 퇴근길은 전면 폐지돼야 한다 같은 평면적인 관점으로는 현재의 문제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문제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국내 공연계의 퇴근길이 무엇이 문제인지 냉정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한 배우가 설문 조사에 남긴 메시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무대 위에서 열과 성의를 다해 공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배우의 첫 번째 의무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퇴근길을 위해 공연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여러 동료들과 몇 달 동안 연습해 만든 캐릭터나 작품이 퇴근길에서 배우와 관객이 나눈 대화로 인해 바뀌어버린다면 과연 이게 맞는 일일까? 퇴근길은 팬 서비스이다. 말 그대로 배우 개인의 자유로 이뤄지는 서비스일 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제작사가 배우를 캐스팅할 때 배우의 자질이나 실력이 아니라 퇴근길 같은 부가적인 요소가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낀다. 배우와 관객이 각자의 위치에서 공연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이다.” 또 다른 한 배우는 이러한 당부를 남겼다.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 공연의 특수성은 무대 위의 배우와 객석 위의 관객이 공연 중 나누는 교감이 전부입니다.” 배우가 예술가로 남고자 할 때, 배우를 예술가로 존중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공연이 예술로 존재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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