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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비영리 단체와 상업 프로듀서의 아름다운 공생 [No.194]

글 |박병성 2019-11-23 5,947

비영리 단체와 상업 프로듀서의 아름다운 공생

 

초연을 디벨롭한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종합예술학교에 발표한 작품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개발한 후 상업 제작사인 아이엠컬쳐와 공동 제작한 것이다. 지금 공연 중인 <세종, 1446> 역시 여주시가 HJ컬쳐에 작품을 의뢰해 여주에서 올린 후, 공동 제작하여 상업 프로덕션으로 발전시킨 사례이다. 이처럼 지자체 또는 지역의 비영리 단체와 제작력이 있는 상업 프로덕션이 협업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해외의 인핸스먼트 제작 방식

브로드웨이에서 비영리 극장과 상업 프로덕션이 협업한 작품은 점점 더 비중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젠틀맨스 가이드 투 러브 앤 머더>, <펀 홈>, <해밀턴>, <디어 에반 한센>, <더 밴드 비즈트> 등 2000년부터 2016년까지 토니 어워즈 뮤지컬 수상작 중 절반 이상이 비영리 단체의 개발을 거쳐 브로드웨이에 오른 작품이다. 비영리 극단에서 제작한 작품을 브로드웨이의 상업 프로듀서가 확장시켜 성공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완성도 높은 록 뮤지컬로 꼽히는 <헤어>와 코러스 배우들의 실제 삶을 극에 녹여내 다큐멘터리 성격을 띤 컨셉 뮤지컬 <코러스 라인>은 상업 프로덕션에서 제작을 거절했지만 오프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비영리 극장인 퍼블릭 시어터가 이를 개발하여 작품성과 흥행을 동시에 이루어낸 사례다. 퍼블릭 시어터는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공연인 <해밀턴>을 개발하면서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애틀랜틱 시어터 컴퍼니, 라운드 어바웃 시어터 컴퍼니,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 맨해튼 시어터 클럽 등 제작력이 있는 비영리 공연 단체들이 브로드웨이를 든든히 받치고 있다. 웨스트엔드도 예외는 아니다. 일찍이 캐머런 매킨토시가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작품을 의뢰해 <레 미제라블>을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지역 제작 뮤지컬의 변화

국내에서도 1990년대부터 지자체나 비영리 단체들이 뮤지컬 제작의 주체로 참여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각 기념사업단이나 지자체에서 지역 역사와 인물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개발하였다. 1990년대 뮤지컬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기념 뮤지컬이 많이 제작되었다. 4.19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4월 하늘 어디에>(사단법인 4.19 제작), 백범 김구 선생 서거 50주년 기념 <못다한 사랑>(백범 김구 기념사업회 제작) 등이 그런 예다. 명성황후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에 오른 뮤지컬 <명성황후>처럼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이들 기념 뮤지컬은 초연이 종연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편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홍보하는 데 치중한 면이 많아 흥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청년 장준하>(장준하 기념사업단 제작), <영웅> 등 기념 뮤지컬이 없진 않지만 이보다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작품들이 늘어났다. 지역성을 소재로 하면서 보편성을 추구하는 지역 제작 뮤지컬이 등장한 것이다. 경기도 문화의전당의 수원성을 배경으로 하는 <화성에서 꿈꾸다>(2006)나, 성남아트센터의 <남한산성>(2009), 경상남도가 연희단거리패에 의뢰한 <이순신>(2009), 서울시가 서울뮤지컬단에 의뢰해 제작한 <피맛골연가>(2010), 종로구가 제작한 정순왕후를 주인공으로 한 <비애비>(2010), 전남 장성군이 60%를 투자하여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합작한 <홍길동>(2010) 등 지자체가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제작한 뮤지컬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이들 작품들은 대중성을 추구하긴 하지만 지역성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있어 상업 시장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지자체나 비영리 단체의 제작이라고 하더라도 대구시의 <투란도트>(2011)와 충무아트센터(중구문화재단)의 <프랑켄슈타인>(2014)처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소재를 확장시킨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자체 제작한 <에릭 사티>(2011)와 <더 넥스트 페이지>(2014), <전설의 리틀 농구단>(2018), 그리고 올해 선보인 <코스프레 파파>까지 지역 소재에 머물지 않고 상업 프로덕션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품을 꾸준히 개발하면서 지역의 제작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인핸스먼트 제작 방식의 필요성

브로드웨이에서 비영리 극장과 상업 프로듀서가 협업하여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인핸스먼트(Enhancement) 방식이 종종 거론된다. 인핸스먼트 방식은 상업 프로듀서가 작품 제작을 비영리 극장에 의뢰하여 개발하거나, 비영리 단체에서 개발한 작품을 더욱 확장시켜 초연 이후의 공연권을 확보하는 방식을 말한다. 인핸스먼트 방식으로 개발한 작품이 상업화되었을 때 비영리 단체는 공연 매출 중 일부를 로열티로 회수할 수 있고, 개발 단계부터 상업 프로덕션의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아 좀 더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상업 프로덕션으로서는 비영리 단체에서 개발된 검증된 작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도 인핸스먼트 방식은 열악한 창작뮤지컬 제작 시스템에 도움이 될 여지가 크다. 퍼블릭 시어터가 아니었다면 히피즘과 반전 운동 등 당시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사상를 담아내고 전라 노출을 한 <헤어>가 공연될 수 없었고, 애틀랜틱 시어터가 없었다면 청소년들의 성과 기성세대와의 대립을 파격적으로 실험했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브로드웨이에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비영리 단체와의 협업은 기존 시장에서는 리스크가 있는 소재나 형식을 시도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좀 더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최근 소극장 창작뮤지컬은 마니아적 작품들이 트렌드를 이루며 대중성이 옅어져가고 있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 같은 대중 취향의 작품이나, <세종, 1446>처럼 어느 정도 규모를 요구하는 사극 뮤지컬의 경우 비영리 극장이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상업 프로덕션이 자체 제작하기에는 시장 환경상 힘든 프로젝트였다. 지역의 비영리 극장을 거치면서 안정적인 개발 단계를 밟기도 한다.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파가니니>는 HJ컬쳐가 이 작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을 의뢰하면서 성사된 경우다. HJ컬쳐는 초연의 비용 부담을 덜고,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국내 뮤지컬계가 브로드웨이의 인핸스먼트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이르다. 일단 브로드웨이에서는 비영리 단체의 자체 제작력이 탁월하여 직접 제작을 주도하지만 국내의 경우 상업 프로덕션이 비영리 극장에서의 개발 단계부터 전적으로 주도하여 참여해야 한다. 자체 제작력을 지닌 비영리 극장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나 대전예술의전당 등 몇몇 곳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하다. 고무적인 것은 <전설의 리틀 농구단>, <파가니니>, <세종, 1446> 등 제작 대행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비영리 단체와 상업 프로덕션이 만나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경우 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아이엠컬쳐의 공동 제작에서 점점 안산 측의 비중을 줄여가다가 추후에는 아이엠컬쳐가 단독 제작을 진행하여 안산 측에 로열티를 제공하는 방식까지 사전 조율이 이뤄진 상태다.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인핸스먼트 방식으로 지역의 비영리 극장이 로열티를 받는 사례가 등장할 듯싶다. 

 

* 이 글은 학술 논문 <비영리 공연단체와 상업 프로듀서의 뮤지컬 창작, 제작, 파트너십 연구>(지혜원, 2018), 언론 기사 <맞춤형 뮤지컬 가뭄에 단비 될까>(강종훈, 연합뉴스 2010. 3. 21)를 참고하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4호 2019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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