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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어린이 공연의 세계② - <두들팝> 붓 끝에서 피어나는 상상력 [No.212]

글 |이솔희 사진 |브러쉬씨어터 2022-09-23 1,012

<두들팝>
붓 끝에서 피어나는 상상력

 

Brush up your inner child(당신 안의 어린 아이를 깨워라). 이는 브러쉬씨어터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이 한 문장에서 추측할 수 있듯 브러쉬씨어터는 어린이 뮤지컬을 주로 선보이는 단체이다. 국내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작품 활동을 펼치는 과감한 행보를 이어온지 어느덧 5년. 국경을 넘어 해외 관객과 교감하고 있는 이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데에 필요한 준비물은 딱 하나, 공연과 함께하는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다.

 

 

# 내 얼굴을 그려줘
동그라미가 그려진 작은 화이트 보드와 보드 마카를 들고 등장한 우기와 부기. 두 주인공은 객석 곳곳을 돌아 다니며 아이들을 찾아가고, 아이들은 직접 눈, 코, 입을 그리며 개성 넘치는 얼굴을 탄생시킨다. 완성된 얼굴 그림은 공연의 오브제로 사용된다.

 

 

# Good Bye to the Sea
그리워하던 거북이와 다시 만난 우기와 부기. 두 사람이 거북이를 바다로 다시 돌려 보내주자 파도가 밀려와 우기와 부기를 바닷속으로 데려간다. 바닷속 친구들과 함께 수영하는 우기와 부기의 모습을 아기자기한 영상으로 구현해낸다.

 

 

# Doodle with Marine Lives
거대한 그림판에 가득 채워진 그림을 지워가면서 바닷속 친구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우기와 부기. 까맣게 지워져 가던 그림들은 우기와 부기의 손끝에서 거북이로, 고래로, 오징어로 변신한다. 점점 지워지는 그림들이 어떤 형태로 재탄생될지 예측하는 재미가 있는 장면이다.

 


언어를 넘어선 교감


브러쉬씨어터의 대표작 <두들팝>은 사라진 거북이를 찾아 바다로 떠나는 우기와 부기의 모험담이다. 배우가 무대에 설치된 그림판에 그림을 그리면 그 위로 영상이 겹쳐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단체는 이를 드로잉 아트와 프로젝션 맵핑 기술이 어우러진 ‘미디어 드로잉쇼’라 명명한다. <두들팝>은 브러쉬씨어터의 이길준 대표가 ‘배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창작 과정부터 배우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완성된 대본을 바탕으로 연습에 들어가는 대신 배우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며 공연의 틀을 잡아간 것이다. 대본도 음악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이를 영상으로 구현한다’는 콘셉트 하나만을 유지한 채 조금씩 살을 붙여가는 과정에서 자칫 방향성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가치를 가슴에 품고 달려 나간 덕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바로 ‘배우들이 놀이하듯이 즐겁게 연기할 것’,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렇게 <두들팝>의 첫 번째 버전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딱 한 달이었다.


창작 과정만큼이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먼저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두들팝>은 2018년 세계적인 예술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올렸다. 첫 공연 날 극장을 찾은 관객은 단 세 명뿐이었지만, 영국 유명 일간지 가디언이 선정한 최고의 어린이 공연 베스트 6에 이름을 올리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 후 세계 각지의 초청을 받아 전세계를 뛰어다닌 <두들팝>이 거쳐간 도시만 30여 개에 이른다. 글로벌 시장에서 <두들팝>의 최대 강점은 넌버벌(비언어) 공연이라는 것이다. 무대 위 배우는 몸짓과 표정, 간단한 단어와 음성 상징어로 인물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확장시키는 생생한 영상, 흥겨움을 더하는 라이브 음악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장면이 배우들이 직접 그리는 그림을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그림판과 펜 하나, 영상을 송출할 수 있는 프로젝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어 기동성이 뛰어나다. 또한 공연장의 규모에 따라 관객과의 소통 방식, 이야기 전개 방식에 변화를 가할 수 있어 국가별 공연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도 세계 시장 진출을 용이하게 했다.

 

 

그림책으로 재탄생한 <드래곤 하이>


브러쉬씨어터의 또 다른 대표작인 <드래곤 하이>는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주인공 하이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용의 나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공연은 특이하게도 그림책으로 재탄생했는데, 공연을 원작으로 한 그림책은 흔치 않기에 브러쉬씨어터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는 자사의 콘텐츠를 원소스 멀티유즈 하려는 이길준 대표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브러쉬씨어터는 <드래곤 하이>의 그림책이 공연의 부속 콘텐츠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콘텐츠로 소비되길 바랐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에게 그림책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 장면을 그대로 구현하지 않고 이야기를 압축해 그림에 담았다. 단, 공연의 정체성은 유지될 수 있도록 그림체에 작품의 감성을 담고자 노력했다. <드래곤 하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 하이의 뭉클한 성장기를 다루는 작품인 만큼, 순수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림체를 적용했다.

 


세계를 향한 끝없는 도전
브러쉬씨어터 이길준 대표


브러쉬씨어터의 행보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도전’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넌버벌 공연으로 시작해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한 이머시브 콘텐츠, 실제 로봇이 등장하는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브러쉬씨어터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연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 가는 길마다 새로운 발자국을 내는 이들의 도전은 또 어떤 결과물을 탄생 시킬까.

 

브러쉬씨어터는 어떻게 출발한 단체인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대학로 극단 하땅세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이후 공연 기획, 연출 등의 업무를 맡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14년 하땅세의 아동극인 ‘붓바람(Brush)’으로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 참여하면서 어린이 공연의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후 다양한 해외 공연 페스티벌과 아트마켓에 참여하며 해외 공연 업계의 흐름을 몸에 익혔고, 국내에서 새로운 공연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2017년 극단 브러쉬씨어터를 정식으로 창단했다.

 

드로잉과 스크린 아트를 결합한 <두들팝>, 대형 스크린 활용이 돋보이는 <드래곤 하이>, 배우들이 직접 폴리 사운드(다양한 소도구와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음향 효과)를 만드는 <리틀 뮤지션>, 프로젝션 맵핑을 도입한 이머시브 공연 <아무것도 없는 왕국>까지. 브러쉬씨어터는 특색 넘치는 작품을 꾸준히 제작 중이다. 작품을 구상할 때 어디서 영감을 받나.
우리의 대표작인 <두들팝>을 제작할 때 가장 큰 영감이 되어준 건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파도야 놀자』였다. 이수지 작가는 최근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파도야 놀자』는 상상력을 정말 많이 자극한다. 그 책을 본 후 기다란 스크린에 파도가 치고, 그 앞에 아이 한 명만 등장하는 작품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디어가 발전돼서 지금의 <두들팝>이 됐다. 그리고 다소 의외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성수동처럼 요즘 뜨는 지역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영감을 받는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카페들은 그 어떤 단체보다 브랜딩을 잘한다.

 

브러쉬씨어터만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연 예술 단체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별성을 지니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강점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 제작에 주력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러쉬씨어터의 작품들은 퀄리티 높은 음향과 영상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현재 공연을 준비 중인 실감형 콘텐츠에서는 몰입형 사운드와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공연장을 하나의 세계로 구현해 관객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예정이다.

 

브러쉬씨어터는 창단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의 몸집이 점차 커지면서 마주하게 되는 고민도 있을 텐데.
우리 극단은 단원제로 운영되어 배우는 물론 연출가, 디자이너 등 30여 명의 직원이 소속되어 있다. 단원제는 협업에 용이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코로나19처럼 공연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도 인건비를 계속 지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위험 부담이 따른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충분한 예산 확보를 위한 투자 유치에 힘쓰고 있다.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프로젝트라면 꾸준히 참여하려고 한다. 2019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스타트업콘×넥스트 콘텐츠 콘퍼런스’의 피칭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았고, 2020년에는 문화예술 기업의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투자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개최된 대회인 ‘임팩트 투자 유치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스타트업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시리즈 투자 유치에도 주목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공연 단체는 외부에서 투자 받기가 쉽지 않다. 브러쉬씨어터가 공연계 투자 유치의 롤모델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다. 공연 단체들의 기반이 단단해야 실험적이고 만듦새가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

 

IP(지식재산권) 사업 확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들었다.
외부에 브러쉬씨어터를 소개할 때 ‘공연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IP 사업을 펼치는 단체’라고 설명한다. 어린이 공연은 동화책이나 영상 콘텐츠를 원작으로 하는 2차 저작물이 많지만, 브러쉬씨어터는 대부분의 공연을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앞서 그림책을 발간한 <드래곤 하이>에 이어 <두들팝>과 <리틀 뮤지션>도 그림책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 콘텐츠를 교육 활동으로 만드는 것도 기획 중이다. 현재 <두들팝>은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이 배우들과 직접 그리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스페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그 규모를 키워 아이들이 직접 무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두들 캠프’ 등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작품과 연계된 IP 사업을 확장할수록 작품이 지닌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공연은 공연장에 도착해서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을 나서는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관객들이 이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연장이라는 공간에 특별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브러쉬씨어터만의 전용관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치 작품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도록 공연장 전체를 꾸미고, 공연을 관람하지 않는 관객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 대중들이 공연 장르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면 공연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공연장 인근 지역의 관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공연장은 딱딱하고, 경직된 공간이라는 편견을 타파해야 공연 예술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후 어떤 공연을 선보일 계획인가.
OTT의 발달로 집에서도 편하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에 공연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최근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한 화두다. 그 결과 공연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객들에게 공연만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이머시브 공연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정식 공연을 준비 중인 실감형 콘텐츠는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활용해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주뿐만 아니라 꿈, 바다를 주제로 한 실감형 콘텐츠도 준비 중이다. 또 실제 로봇이 무대에 등장하는 뮤지컬도 개발 중이다. 영국의 로봇 기업 엔지니어드 아츠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주인공으로 할 예정이다. 눈을 깜빡이거나 섬세하게 표정을 짓는 등 사람과 정말 유사한 로봇이다. 다만 관객분들이 불쾌한 골짜기(인간과 매우 유사한 모습의 로봇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를 경험하지 않도록 로봇의 외관을 유지하되 행동이나 감정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유사함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본 작업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로봇이 알츠하이머를 앓는 할머니 곁에 등장해 할아버지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내용이다. 엔지니어드 아츠 사와 계약을 마쳤고, 2023년 가을에 작품을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2호 2022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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