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한류 스타를 앞세운 뮤지컬 한류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의 공연장에 가면, 꽤 많은 수의 외국인 관객들을 볼 수 있다. 이전에는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이색적인 공연으로 <난타>, <점프>, <판타-스틱> 등의 넌버벌 퍼포먼스를 찾았다면, 최근에는 드라마와 가요가 국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가 출연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부쩍 늘고 있다. 주말에 한국에 공연 보러 온다고 한국어로 트위터를 하는 일본 관객들을 보며 한류를 실감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김준수)가 출연한 <모차르트!>는 올해 초 3차에 걸쳐 진행한티켓 예매에서 11회 출연분 3만 3천 석의 티켓이 매진됐다. 이 사건은 한류 스타의 티켓 파워를 제대로 입증해준 예다. 여기엔 국내 팬의 영향도 컸지만, 일본 관객들이 한국을 찾아준 것이 주효했다. 특히 <모차르트!>가 일본에서 공연된 작품이었고 그곳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동방신기’의 멤버가 주연으로 발탁되어 많은 일본 관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신성우와 안재욱을 내세운 <잭 더 리퍼>(7월), 군인 이준기와 주지훈의 <생명의 항해>(8월), 그리고 지난달 초 ‘동방신기’의 리더 유노윤호가 출연한 <궁>(9월), 같은 달 개막한 신성우, 안재욱, 온유의 <락 오브 에이지> 등 일련의 대작 뮤지컬이 다수의 해외 팬을 보유한 한류 스타 배우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해외 관객 몰이에 나섰다. 이를 위해 한층 강화된 홍보 마케팅 진영을 꾸리고 있다. 주요 타깃은 이들의 일본 팬과 중국 팬이다.
관객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선(先) 홍보 마케팅
최근 해외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은 공연이 개막되기 전부터 한층 적극적이다. 캐스팅 단계에서 팬층을 조사하고 시장성을 검토한 기획사들은 해외 팬이 많은 해당 국가에 직접 홍보를 하는, 한층 적극적인 방법으로 관객을 유치하려고 노력 하고 있다.
<판타-스틱>의 경우 공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배우 송승헌을 홍보대사로 선정해 홍보 행사에 참여하게 하는 한편, 한국관광공사와 서울시 산하 ‘서울관광마케팅’과 해외 트레블 마트에 참가해 행사의 오프닝 공연을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관객을 유치하고 있다.
김준수, 임태경, 박건형, 박은태 등이 출연한 <모차르트!>는 2009년 초 공연 준비 단계부터 한국관광공사, 일본 산케이 신문과 함께 ‘한국 뮤지컬 관광 투어’를 기획하였다. 2010년 2월 13일과 14일 양일간 100명의 관광객이 참여한 이 투어는 공연 관람뿐 아니라 뮤지컬 연습실까지 방문하는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공연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문화 관광 상품으로 기획된 예였다. 또한,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의 출연으로 해외 팬들의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던 <궁> 역시 기존의 드라마 <궁>의 성공과 한국관광공사의 후원으로 일본 내 한류 스타 행사의 주최로 유명한 프라우 인터내셔널을 통해 항공기, 숙박, 공연 관람 등이 포함된 두 가지 종류의 관광 패키지 상품을 6~7회에 걸쳐 판매하고 있다. 이 결과 유노윤호의 첫 무대였던 9월 9일 공연의 경우, 전체 객석 800석 대부분이 일본인 관객으로 가득 찼고, 이후 유노윤호의 공연에는 전체 객석의 절반 이상은 일본인 관객이 차지한다고 제작사 그룹 에이트는 밝혔다.
이런 적극적인 마케팅은 주로 대극장 뮤지컬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한 달간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던 <잭 더 리퍼>는 일본에서 안재욱, 신성우의 인지도와, 한국관광공사의 후원 아래 일본 내 스팟 광고 및 포스터 부착 등의 적극적 홍보가 맞물려, 공연 시일이 비교적 짧았고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공연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관객이 전체 관객의 30%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9월, 이 두 스타가 <잭 더 리퍼>에 이어 동반 출연한 <락 오브 에이지>는 <잭 더 리퍼>를 관람한 일본 팬들의 연속 관람을 유도하여, 일본의 예매 사이트 중 하나인 티켓피아에서 예매 페이지를 오픈한 결과 전체 예매 티켓의 50%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제작사 관계자는 밝혔다. 한편, 소극장 공연으로는 국내에서도 한바탕 예매 전쟁을 치른 <쓰릴 미>가 해외 팬의 순례 코스가 되고 있다. 뮤지컬 해븐 관계자는 일본에서 음반 활동으로 인지도를 갖춘 이지훈과 오종혁의 공연에 대해 기획사로 문의하거나 극장에 직접 찾아와 티켓을 구매하는 팬들이 많았고, 특히 꽤 다수의 일본 팬이 마니아들을 위해 판매하고 있는 5회 관람용 묶음 티켓인 ‘쓰릴 유’ 티켓을 구매했다고 전했다.
문화 관광 상품을 이용한 적극적인 선 홍보 덕에 많은 외국인 관객이 공연장을 찾아옴에 따라, 기획사들은 이들의 편의를 위해 <판타-스틱>이나 <난타>의 경우 홈페이지를 3~4개의 언어로 운영하고, 기획사에 영어, 중국어, 일어를 전담하는 일반 직원 또는 콜센터 직원을 두거나, <궁>이나 <잭 더 리퍼>에서는 공연장 내 일본어 자막 서비스, 공연장 내 안내 문구를 3~4개 국어로 준비한다든지, OST에 한국어 가사와 일어, 영어 가사를 함께 수록하여 판매하는 등 다양한 관객 서비스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2006년에 한동안 바람이 일었던 한국 공연의 해외 공연 진출도 조금씩 다시 고개를 드는 추세다. 올해 해외 시장의 문을 먼저 두드리는 작품은 2008년 초연한 후 프로듀서의 부재로 한동안 공연되지 못했던 창작뮤지컬 <카페인>이다. 드라마 <경성스캔들>, <쾌도 홍길동> 등으로 일본 내 많은 팬을 보유한 강지환은 제작 프로듀서를 맡는 동시에 10월 16일부터 11월 7일까지 도쿄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될 <카페인>에 전회 단독 출연을 결정하면서 화제를 낳았다. 9월 중순에 이미 23회 공연 2만여 석이 모두 매진되었다고 제작사 에스에이치 크리에이티브 웍스는 밝혔다.
이외에도 체코 원작에 한국 스태프가 참여하여 제작된 뮤지컬 <햄릿>의 2009년 월드 버전이 2012년 일본 토호의 시어터 크리에 오를 예정이며, 2009년 스위스에서 초연하고 2010년에 국내에서 공연된 <몬테 크리스토>의 한국 버전 역시 일본 공연을 협의 중이라 한다.
한류 스타 중심의 마케팅, 어디로 가야 할까
2005~2006년 한창 뮤지컬 시장이 팽창하던 시기에도 <지킬 앤 하이드>, <갬블러>, <마리아 마리아>, <명성황후> 등 국내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 활발했지만, 당시는 주연급 배우에 대한 명성보다는 콘텐츠와 기획력에 무게를 더 두었다. 한편, 최근의 해외 진출은 캐스트 기획과 해외 관객을 위시한 마케팅 경향으로 볼 때 대단히 한류 스타 중심적이다. 이는 인적, 기술적 인프라가 미처 구축되기 이전에 뮤지컬 시장이 급격하게 커져서 관객을 확실히 끌어올 수 있는 스타 캐스팅에 힘을 쏟다보니 한류 스타에 까지 이른 것이다.
한류 스타를 캐스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매혹적이다. 작품의 인지도를 빠른 시간 내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류 스타를 보러 왔던 관객이 해당 작품이나 한국 뮤지컬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시너지 효과는 좋은 작품과 실력 있는 스타의 만남에서 기대할 수 있다. 함량 미달의 작품으로 한류 스타를 통한 홍보에만 치중한다면 한류 스타나 제작사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앞으로 한류 스타 중심의 캐스팅과 마케팅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스타’의 작품은 스타가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지고, ‘작품’ 안의 스타는 작품과 함께 영속성을 갖기 마련이다. 스타의 인기에 기대어 비슷비슷한 작품을 수출해서 반짝 인기를 얻었던 한류 드라마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좋은 배우들은 갖췄으니, 다양한 콘텐츠와 작품의 질로 토양을 넓고 깊이 다지는 게 장기적인 한류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닐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5호 201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