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무대에서 우울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던 배우가 오늘은 황당하고 웃기는 막춤을 추고 있다. 대체 저 사람의 정체는 뭐에 가까울까? 전혀 다른 캐릭터에 빙의되곤 하는 배우들이 말하는, 자신과 가장 닮은 뮤지컬 속 캐릭터. 어느 정도 예상과 `슛슛` 들어맞는지, 혹은 `훗훗` 빗나는지 들어보자.
더 멋진 캐릭터를 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컴퍼니>에서 연기했던 데이빗이 나와 가장 닮은 것 같다. <컴퍼니>의 이지나 연출님이 내게 출연 제의를 한 것은 데이빗과 내게 흡사한 부분이 있어서였을 게다. 많은 뮤지컬에 비범하고 강렬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데이빗은 그에 비하면 다분히 평범한 캐릭터이다.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성격, 확 저지르거나 나서지 못하는 면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 그 덕에 데이빗 연기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성심성의껏 생각을 해봤는데 진짜 없어요. 사실 다 조금씩 같은 점이 있지만 완전히 다른 면이 더 많잖아요. 제일 많이 닮았다고 할 만큼 비슷하다고 생각한 캐릭터는 없어요. 작품을 할때도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저의 계산을 가지고 하는 편이고… 진짜 없는데.(15분 쯤 옥신각신 하다가 약간 비슷한 면이라도 이야기하기로 합의) 일단 오스왈드. 저도 한번 웅크리면 그렇게 끝까지 들어가서 웅크리고 있는 편이에요. 좀 그런 식으로 집착을 하는 성격이라서. 네이슨은… 상당히 계획적인 아이인데, 저도 그렇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에요. 연기할 때 플랜을 잡는 것도 그 비슷한 일이죠. 연기라는 게 첫 번째는 상대가 있고, 말하고 듣고 반응하는 거니까 상대의 행동이나 반응에 대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계산하잖아요. 다음은 두디? 두디는 중학생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타를 배우려는 욕망. 저도 기타 배우고 싶었거든요. <로맨스, 로맨스>는 2막에 솔직한 대사들이 많아서 진짜… 제가 좋아했어요. 현실적인 대사가 많았죠. (조)정은이랑 실제로도 친구고 하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했던 것 같아요. <엣지스>요? <엣지스>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100퍼센트 다 저한테 있었던 일이에요. (그러므로 정답은 <엣지스>의 `최재웅` 역.)
나하고 가장 닮은 뮤지컬 속 캐릭터는 암네리스다. 요즘 <아이다>에 출연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암네리스는 나하고 정말 닮았다. 암네리스가 솔직하고 철이 없지 않나.(웃음) 1막에는 따로 연기할 필요 없이 나대로 신나게 놀면 된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나에게 와 닿았던 진짜 이유는 암네리스가 철없는 공주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통해 성숙해지고 진정한 여왕이 되는 것처럼 나 역시 지난해 많은 일을 겪고 한 단계 성숙해진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배우 생활을 시작해 그동안 참 철없이 굴었는데, 작년 한 해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감사하게 상도 받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내면적으로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다. 암네리스와 다른 하나는 난 사랑에 있어 지고지순한 편은 아니다. 싫으면 말라는 식이다.(웃음) 하지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세상에는 여러가지 사랑이 있구나,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다 값지구나, 하고 느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암네리스처럼 사랑하는 건 좀 힘들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이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적 면모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런데 평소 나의 성격과 행동으로 따져본다면 <형제는 용감했다>의 석봉과 비슷한 것 같다. 극중 석봉은 철없이 부모님께 떼만 쓰고 그러지 않나. 나도 좀 욱하는 성격인 데다가, 장손임을 무기 삼는 석봉처럼 얻을 것은 얻으려고 하고 책임은 안 지려고 할 때가 있다. 하하. 이런 얘기만 하면 안 좋은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연년생인 형과 나, 우리 집엔 아들만 둘인데 부모님과 살갑게 대화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어머니가 서운해 하시곤 한다. 아, 옆에 있는 김재범에게 의견을 물어봤더니 내가 <둘리>의 도우너 닮았단다. 워낙 장난을 많이 치는 데다가 뽀글뽀글 파마 머리에 코가 빨갛고 큰 게 비슷해 보이는지…. 어릴 때부터 도우너랑 풍선껌 캐릭터 덴버 닮았단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 외모는 여전한가보다.
유명한 캐릭터는 아닌데요, 제가 했던 작품 중에 <아킬라>의 주라는 캐릭터가 있어요. 그 캐릭터가 저랑 제일 닮은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창작 초연이다 보니까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했거든요. 닮은 점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여자라도 내면이 남성적인(웃음) 그런 면이요. 저는 오히려 큰일이 닥쳤을 때 침착하고 대범해지는 기질이 있어서 그런 면이 맞았던 것 같아요. 록 밴드 활동을 하다보니까 무대에서 센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게 되는 데 비해서, 보통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들은 부드럽고 여린 공주 아니면 섹시한 팜프 파탈로 양분이 되잖아요. 그런데 주라는 인물은 여성적이거나 섹시한 면을 부각시키지 않고 주체적이고 강인한 성격이었거든요. <아킬라>라는 작품이 원시 모계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주는 여족장의 후계자에요. 아,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거리를 두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한없이 여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점도 닮았어요.(웃음) 남자 주인공과 꽃밭에서 사랑의 듀엣을 부르는데 그때는 카리스마나 위엄을 다 내려놓거든요. 반면에 자기 눈앞에서 어머니가 살해를 당한 순간 이제부터 내가 족장이라는 인식을 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두 가지 면을 모두 보일 수 있는 것 같은 캐릭터라서 좋았어요. 저도 겉으로 보이는 면과 내면이 다르고,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와 평소가 많이 다른 사람이라서요.(웃음)
<김종욱 찾기>의 남자 주인공. 물론, 김종욱 말고 첫사랑을 찾아주는 남자 말이다. 일단 이름이 조강현으로 나랑 똑같고(이 역은 배역을 맡은 배우의 실명을 사랑한다), 좀 소심하고 찌질한 게 비슷하다. 남들이 나보고 그렇다는 게 아니고 스스로 좀 그렇게 느낀다. 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다. 박인배 형이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극 중에서 `아, 좀 쏴요`라는 여자 주인공의 말에, 지갑에 돈 없다고 할 때 나랑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건 박인배 씨의 이야기일 뿐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겁 많고, 한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것도 좀 닮았고. 분위기를 좀 바꿔서, 어른을 깍듯이 대하는 것, 그게 진짜 나하고 닮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어른 공경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아서 유독 심한 편인데 그 점이 나하고 참 닮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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