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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사랑과 거짓말 [No.78]

글 |김영주 2010-03-29 5,789


<로맨스 로맨스> 사랑과 거짓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도 제일이며
심지어 사람이 사는 동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까지 말하지만,
알다시피 사랑이 늘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 사랑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거나,
스스로 룰을 만드는 게임이기도 하다.

 

 

 

로맨스에 필요한 거짓말
<로맨스 로맨스>의 알프레드와 조세핀은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화려하게 살아가는 청춘 남녀이다. 부유한 청년 귀족과 아름다운 고급 창부로 신분이 갈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같은 물에서 노는 물고기고, 한 동네에서 위선적인 삶과 사랑을 해결해야 하는 인간들이다. 빼어난 용모와 매력을 가진 두 사람의 주위에는 사랑을 갈구하는 이성들이 넘쳐나고, 팔짱을 낄 연인이 쉼 없이 바뀔지언정 옆 자리가 공석인 적은 없다. 하지만 이 부족할 것 없는 삶이 권태롭고, 넘쳐나는 사랑에도 식상해지자 알프레드와 조세핀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승부수를 띄운다. 그리고 마치 ‘오페레타처럼’ 똑같은 방식의 위장을 선택한 그들이, 서로의 거짓말에 속으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짓일 뿐만 아니라, 날짐슴과 길짐승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식물들까지 예외가 없다. 구애를 하기 위해 깃털을 한껏 부풀린 새나, 벌과 나비의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는 꽃을 생각해보라. 인간들의 위장도 보통은 그런 식이다.
하지만 소문난 한량 알프레드는 그와 반대로 낡은 옷과 모자를 걸치고 가난한 무명 시인인 양 한다. 그와 사랑에 빠진 조세핀은 1,000실링짜리 가운이 가득한 옷장 구석에서 찾아낸 유행 지난 소박한 옷을 찾아 입고 재봉사 처녀 행세를 하고 있다. 결국 똑같은 인간들끼리 서로를 귀신같이 알아봤다고 할 만한 상황인데, 사실 그들이 사랑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꿈꾸는 판타지를 직접 연기하는 사람에게는 속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시인’ 알프레드와 ‘재봉사’ 조세핀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인 가난한 이들에게 느껴지는 생활의 군내, 거칠고 억센 생존투쟁의 흔적 따위는 없었을 테니 더욱 사랑하기 좋은 상대가 아니었겠는가.
현기증 나게 화려한 로코코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는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베르사이유 궁전의 한쪽에 ‘왕비의 촌락’이라는 작은 마을을 만들었다. 시골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소읍을 소유하는 것이 유행했던 18세기 귀족들의 취향이 반영된 이 왕궁 안의 마을은 십여 채의 농가와 호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왕비는 이곳에서 농가의 아낙처럼 차려입고 우유를 짜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유희’를 즐겼다. 오늘날 도시인들의 주말농장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산해진미를 매일 맛보는 사람이 하루쯤 소박한 잡곡밥과 된장국에 입맛이 당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알프레드와 조세핀이 ‘모험’에 뛰어든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변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가 단 한 번의 다툼도 없이 완벽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상대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아내 프시케에게 ‘의심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함께 머물 수 없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남의 마음은커녕 제 마음도 믿기 힘들다. 알프레드와 조세핀은 서로를 믿었다기보다는 상대가 자기 거짓말에 속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불만도 갖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관계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다.

 


‘결핍’을 갖지 못한 사람들
<로맨스 로맨스>는 알프레드가 나폴리에 있는 친구 테오에게, 조세핀이 파리에 있는 헬렌에게 보내는 편지를 독백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귀족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서간문학을 연상시키는데, 당사자들의 에세이나 시대상을 반영한 서간체소설들은 지금까지 풍부하게 남겨져서 당시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한 꺼풀만 벗겨보면 온갖 악행과 음모가 우글거리는 귀족 사회에서 자신들의 신분적 특권을 과시하기 위해 복잡하고 화려한 매너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인간의 본능인 자기고백의 욕구를 해소할 기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위험한 관계>를 위시로 한 당대의 연애소설에는 은 스푼을 물고 금 접시를 쥐고 태어나서 노동을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이 잉여인간들이 삶의 긴장과 환희를 스릴 있는 연애관계에서 찾으려고 드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보이지 않는 펜싱 검을 들고 선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는 남녀 간의 심리전은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은 지배욕과 권력욕, 허영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귀족 사회에서 진심과 진실한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은 볏짐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들거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중국 음식을 찾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너무 많은 것을 가졌고, 그것들이 다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봉건사회의 귀족들, 시쳇말로 쏘 쿨한 그들 사이에서 사람의 마음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다는 것은 촌스럽고 어리석은 행위가 된다. 결국 알프레드와 조세핀이 가난한 서민으로 가장한 결정적인 이유는, 그래야만 ‘사랑’이라는 것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알프레드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명성, 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사랑받고 싶었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신분을 감춘 왕자님’이라는 식의 동화 같은 연애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은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여성들만이 아니다. 날 때부터 이미 모든 것을 가진 남자들 역시 오직 자기 자신의 모습만으로 사랑받기를 꿈꿔본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랑밖에 줄 것이 없는 가난한 여인을 더 나은 삶으로 구원해내는 ‘왕자님’이 되는 것은 남자의 입장에서 꽤 만족스러운 일이니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8호 201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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