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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커튼콜 [No.75]

글 |배경희 2009-12-14 5,772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커튼콜

 

 

콘서트가 끝나도 관객들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다. 본 공연을 끝낸 아티스트들이 다시 등장해 좀더 집약적이고 폭발적인 앙코르 무대를 보여주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앙코르 공연마저 끝났을 때 비로소 아쉬워하기 시작한다.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면 으레 신나고 흥겨운 무언가가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제작자들은 이런 기대에 부응해서 특별한 커튼콜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작품들조차 커튼콜 무대에서는 종전까지만 해도 비운의 주인공이었던 배우들이 방긋 방긋 웃으며 신나게 노래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것은 뮤지컬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브로드웨이에도, 웨스트엔드에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커튼콜 풍경이다. 

 

 

지난 9월, 오리지널 캐스트 아담 파스칼과 앤소니 랩이 출연한 <렌트> 브로드웨이 투어팀의 내한 공연은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한 공연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평소대로 신나는 커튼콜을 기대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관객들이 아무리 뜨거운 박수를 보내도 앙코르 곡 하나 부르지 않고 인사만 ‘쌩’ 하고 (적어도 우리 눈에는) 퇴장해버렸다. ‘정말 이대로 끝이야?’, ‘설마’가 ‘진짜’로 확인되자, 관객들의 아쉬움은 ‘브로드웨이팀은 인정이 없다’는 원망으로 번져갔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뮤지컬 커튼콜 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올해 큰 관심을 모았던 브로드웨이 화제작 <스프링 어웨이크닝>도 공연 개막 후 ‘마무리가 다소 심심하다’는 관객 설문 결과를 반영해 원작에는 없는 커튼콜을 만들었다. 제작사 측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이러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커튼콜 곡으로 선택된,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는 폭발적인 곡 ‘Totally Fucked’는 열광적인 분위기로 이끌었고, 관객들의 반응은 물론 뜨거웠다. 극에서 죽음을 맞이한 벤들라와 모리츠가 살아 돌아와 방방 뛰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브로드웨이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겠지만, 우리 관객들은 극과 커튼콜은 분리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뮤지컬을 가볍게 즐기러 오고, 흥겹게 극장을 나가기를 원해서, 제작자는 이러한 관객들의 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국내 뮤지컬에서 는 인사만 하고 들어가는 공연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커튼콜은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 대표곡 한 곡을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메들리로 열창해주는 커튼콜까지 생겨나고 있으며 ‘최소한의 예의’를 넘어서 급기야 ‘공연의 꽃’, ‘흥행의 히든카드’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작은 콘서트로 커튼콜을 꾸민 <라디오 스타>, 공연장에서 공연을 끝내고 야외무대로 이동해 이색 커튼콜을 펼친 <젊음의 행진>이나, 메인 테마곡인 ‘Over the Rainbow’의 가사를 자막으로 제공해 온 가족이 함께 따라 부르게 한 <오즈의 마법사> 등 커튼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라디오 스타>의 초연 연출을 맡았던 김규종 연출은 “<라디오 스타>는 서정적으로 끝나야 하는 작품이라서, 커튼콜을 넣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커튼콜을 준비하긴 했지만 공연이 시작한 첫 주에는 특별한 커튼콜 없이 진행했다가, 관객들의 반응을 고려해 일주일 후부터 커튼콜을 선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의 서정성이 방해받지 않았고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공연’이라고 할 만한 우리의 커튼콜 문화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어떤 이는 마당극과 같이 ‘뒷풀이’로 흥겹게 끝을 맺는 우리 전통 양식에 잠재적으로 길들여진 관객들이 깔끔하게 극을 맺는 서구식 방식에 아쉬움을 갖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2004년 <맘마미아>나, <노트르담 드 파리>와 <로미오 앤 줄리엣> 같은 프랑스 뮤지컬의 특별한 커튼콜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쇼팩의 송한샘 대표는 “2004년 <맘마미아> 초연 당시 아줌마 관객들이 전원 기립해서 커튼콜을 즐기는 광경을 보면서, 기획자들은 ‘역시 뮤지컬의 끝은 이래야 해’라는 생각을 했다”며 “한국 관객들은 같이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공연 내용이 어땠든 커튼콜이 재밌으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뮤지컬은 ‘커튼콜’ 하면 떠오를 정도로, 커튼콜 때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나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사진을 찍는 등 그 어느 공연보다도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하지만 이러한 커튼콜 방식이 프랑스 공연계의 일반적인 관행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제작된 대형 프랑스 뮤지컬의 경우 젊은 팬층이 형성되고 팬덤 문화가 생겨나면서 특별한 커튼콜 방식이 만들어졌다. 최근 국내에 대형 프랑스 뮤지컬이 소개되면서 이러한 커튼콜 문화도 함께 유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유달리 커튼콜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오페레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 뮤지컬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단기간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클래식한 양식의 영향이 아닌 콘서트적인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 뮤지컬이 배우 중심의 오락문화로 정착이 돼서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엔딩 장면을 만들려는 크리에이터의 고민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우리나라 관객은 보는 것뿐 아니라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과열된 커튼콜 문화에 대해 성숙하지 않은 문화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 한국 관객의 성향에 맞게 발전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상반된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특수한 현상으로 여겨지는 커튼콜 문화는 쉽게 시비를 따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지한 드라마의 경우 여운의 감정을 가지고 극장을 떠나게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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